달팽이
손성일
달팽이가 느린 건 집이 있어서예요.
집을 사려고 바삐 뛰지 않아도 되니까요.
느리게 움직이면 보이지 않던 게 보인다고 해요.
폐지의 무게로 헉헉거리는
할머니의 활기찬 호흡과
햇빛에 반사되어 찬란한 빛을 뿜어대는
노동자의 굵직한 땀방울
그리고 저 너머의 금이 간
아파트 베란다 건조대에서
자신을 보며 방긋 인사하는 형형색색의
빨래가 꽃 무리처럼 아름답다고 해요.
그러면 꺽꺽거리는
감동의 울음소리가 나오고
그제야 살아있는 느낌이 든다고 해요.
이제 집으로 돌아가네요.
보글보글 톡톡, 보글보글 톡톡
구수한 된장국소리 따르는 달팽이를
별 등 켜는 아이가 하나, 둘 불을 밝히며 따라가요.
그 모습, 소독차 쫓아가는 아이 같아요.
(사)한국장애예술인협회(방귀희 회장)에서 실시하는 구상솟대문학상과 이원형어워드 2020년 수상자를 발표했다.
구상솟대문학상 2020수상자는 동시작가 손성일씨다. 손시인은 뇌병변장애로 『아동문예』 문학상 당선, KBS창작동요제 노랫말 예선 통과 등 꾸준한 작품 활동을 해왔다.
수상작은 ‘달팽이’라는 제목의 시다.
구상솟대문학상심사위원회 심사위원장인 맹문재 안양대학교 교수는 “이 작품은 달팽이의 속성을 통해 느림의 미학을 설득력 있게 형상화했다”며 “손성일 시인의 ‘달팽이’는 속도 경쟁으로 말미암아 상실되고 있는 우리의 삶의 가치를 다시금 깨닫게 해주고 있다. 작품의 마지막 연에 등장시킨 ‘소독차’는 우리 사회의 모순과 병폐를 치유하고자 하는 의도로 읽혀져 시인의 주제의식이 견고하다는 것을 거듭 확인시켜주고 있다”고 극찬했다.
또한 이원형어워드 2020 수상자는 동양화가 최지현씨다. 최작가는 경수손상으로 인한 전신마비장애로 개인전과 단체전에 활발히 참여하면서 현재 홍익대학교 미술대학원 동양화전공 석사과정에 재학중이다.
최지현 작가는 “수상작 ‘세상을 향한 몸부림의 탈출구’는 병원에서 환자라는 나약한 존재로 외로운 싸움을 할 수밖에 없었던 경험으로 작업구상을 했다”며 “육신에 갇힌 혼(魂)이라는 무의식의 흐름을 형상화했다”고 작품을 소개했다.
이원형어워드심사위원회 김영빈 화백은 “최지현 작가는 서양의 마블링 기법과 유사한 일본의 스미나가시 기법을 이용해 독창적인 느낌의 흑백의 한국화를 만들어 냈다”며 “현대 회화의 특성이 잘 드러난 작품”이라는 심사평을 내놓았다.
구상솟대문학상 상금은 300만 원으로 故구상 원로시인께서 솟대문학상 발전기금으로 2억 원을 기탁함에 따라 마련되었고, 이원형어워드 상금 100만 원은 캐나다 거주 조각가 이원형 화백이 고국 장애미술인의 창작활동 활성화를 위하여 매년 보내주고 있다.
(사)한국장애예술인협회의 2020 구상솟대문학상과 이원형어워드 시상식은 오는 9월 19일 장애예술인의 작은 축제인 스토리 두잉
정창교 기자 jcgy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