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바 ‘검언유착’ 의혹과 관련해 오보를 인정한 KBS를 두고 비판이 거세지고 있다. 기본적인 사실관계 확인도 하지 않은 기사를 내보낸 KBS가 수신료를 올릴 자격이 되느냐는 지적이 나오는 형국이다.
KBS는 지난 19일 한동훈 검사장(현 법무연수원 연구위원)과 이동재(35·구속) 전 채널A 기자의 공모 정황이 확인됐다는 전날 자사 보도에 대해 사과했다.
KBS는 18일 ‘유시민-총선 관련 대화가 스모킹건…수사 부정적이던 윤석열도 타격’이라는 제목의 보도를 했다. 이 전 기자와 한 검사장이 4월 총선을 앞두고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의 신라젠 주가 조작 연루 의혹을 제기하자고 공모했다는 정황이 확인됐다는 게 주요 취지였다. KBS는 이 전 기자가 지난 2월 13일 동료 기자들과 함께 한 검사장을 부산고검에서 만나 나눈 대화 녹취록 내용을 취재했다고 부연했다.
KBS는 “이 전 기자는 총선에서 야당이 승리하면 윤석열 총장에게 힘이 실린다는 등의 유시민 이사장 관련 취재 필요성을 언급했고, 한 검사장은 돕겠다는 의미의 말과 함께 독려성 언급도 했다는 것”이라고 보도했다. KBS는 보도 후 앵커 클로징 멘트를 통해 “언론의 자유를 특권으로 오해한 적은 없는지, 언론 소비자들은 언론인들에 묻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러나 19일 이 전 기자 측이 대화 녹취록 중 신라젠 관련 부분을 모두 공개하면서 KBS 보도는 사실상 오보로 드러났다. 이 전 기자 측은 “녹취록에는 총선, 검찰총장, 야당 등은 물론 힘이 실린다, 돕겠다, 독려한다 등 비슷한 대화조차 없다”고 했다.
녹취록에 따르면 한 검사장은 “유시민씨가 어디에서 뭘 했는지 나는 전혀 모른다”며 “그 사람 (이제) 정치인도 아니지 않으냐”라고 했다. 이 전 기자는 재차 “유시민은 한 월말쯤에 어디 출국하겠죠”라고 했지만 한 검사장은 “관심 없다. 그 사람 밑천 드러난 지 오래됐잖냐”고 했다. 여권 일각에서 한 검사장과 이 전 기자가 유시민 이사장 등 여권인사를 타깃으로 공모했다는 주장과 정면으로 배치되는 부분이다.
KBS는 보도 하루 만인 19일 사실상 오보를 인정했다. KBS는 “KBS 취재진은 다양한 취재원들을 상대로 한 취재를 종합해 당시 상황을 재구성했지만, 기사 일부에서 정확히 확인되지 않은 사실이 단정적으로 표현된 점 사과드린다”고 했다. 앵커 멘트를 통해서도 “KBS는 공영방송으로서 권력과 자본으로부터 독립된 진실보도를 추구하고 있다”며 “정파적 이해관계에 좌우돼 사실과 다른 내용을 보도하거나, 인과관계를 왜곡해서는 안된다는 것이 취재진의 공통된 믿음”이라고 강조했다.
법조계와 언론계에선 KBS 기사를 두고 “한 검사장이나 이 전 기자 측의 해명을 듣지도 않은 설익은 기사”라는 비판이 나왔다. 19일 방송된 KBS ‘저널리즘 토크쇼 J’는 자사의 오보에 대한 사과 대신 법조 기자단의 폐해를 강조하는 데 그쳤다.
야권 등에서는 기본이 안 된 기사를 내보내는 KBS가 수신료를 올리는 게 과연 맞느냐는 비판이 커지고 있다. 앞서 양승동 KBS 사장은 지난 1일 경영혁신안을 발표하며 수신료 인상 계획을 밝혔다. 양 사장은 “KBS가 명실상부한 국가기간방송이자 공영방송이 되려면 수신료 비중이 전체 재원의 70%이상이 되어야 한다”고 했다. KBS는 올 하반기에 수신료 인상을 위한 추진단이 출범할 예정이며 KBS의 현재 수신료 비중은 45%라고 밝혔다.
KBS는 수신료 인상의 원인으로 경영난을 꼽고 있다. 근데 경영난의 가장 큰 원인은 높은 인건비다. KBS 직원 중 1억원 이상 연봉자는 2018년 기준으로 무려 51.9%에 달했다. KBS 전체 직원은 5300여명인데 이 가운데 절반이 억대 연봉을 받고 있는 것이다. KBS는 ‘86아시안게임’ ‘88서울올림픽’ ‘종일방송 시행’등 국가 행사 및 정책에 맞춰 1980년대 중반부터 1990년대 중반까지 대규모 인력을 채용했다. 이때 채용된 직원들의 근속연수가 길어 인건비 지출이 크다는 게 KBS의 설명이다.
현재 KBS 수신료는 사실상 강제로 징수되고 있다. 지난 국회에 KBS 수신료를 분리 징수하기 위한 법안들이 여럿 제출됐지만 통과되지 못했다.
이를 두고 KBS가 수신료를 올리기 이전에 스스로 방송의 질을 돌아봐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익명을 요구한 한 서울지역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사태 가운데 KBS뿐 아니라 모든 언론사와 기업이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 국민 주머니를 털어서 이를 타개하겠다는 발상”이라며 “오보를 줄이고 국민에게 도움이 되는 보도와 방송을 통해 KBS에 대한 시청자의 신뢰를 되찾는 게 수신료 인상보다 우선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세환 기자 foryo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