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건표 교수의 연극이야기] 97, 대구연극제 창작 패러다임의 변화

입력 2020-07-20 13:24 수정 2020-07-20 13:36

코로나19의 강풍(強風)으로 공연계도 연기와 취소로 인한 타격이 크다. 대구 발(發) 신천지의 코로나 확전으로 대구지역 공연계도 숨죽인 채 대명동공연거리는 한산했다. 대구연극제는 1984년 극단 황토 <귀향>을 출발로 올해 37회로 대상수상작은 대한민국연극제 본선에 출전하는 것이 ‘대구연극제’ 전통이 됐다. 매년 3~4월에 개최되었던 대구연극제는 올해 코로나19로 인해 몇 차례 연기검토를 하면서 대구연극협회(이홍기 대구연극협회장, 대구연극제, 6.26~ 28까지)는 극단 <이송희 레퍼토리>(환타스틱 패밀리, 김지안 작, 연출, 엑터스토리 소극장), 극단 <처용>(떠돌이 소, 안건우 작, 성석배 연출, 우전소극장), 극단 <한울림> (맛있는 새, 닭, 이지영 작 연출)이 세 작품을 올해 대구연극제 출품작으로 선정했다. 이중 극단 한울림(맛있는 새, 닭)이 1개 단체로는 대구연극제 역사상 6관왕(대상, 희곡상, 연출상, 최우수연기상, 우수연기상 2명)을 수상했고 신인연기상은 김이수(떠돌이 소, 후배 역)에게 돌아갔다.


|30~40대 연극인그룹 ‘대구연극의 창작 패러다임 변화’

대구지역은 전국에서 유일하게 활발하게 활동하는 극단이 37개 단체가 될 정도로 연극과 창작열기가 뜨거운 도시다. 정회원 극단 20여개 단체, 일반회원 극단 17개 극단이 소극장 밀집 지역인 대명동공연거리를 중심으로 연극문화가 생산적으로 형성되어 소극장페스티발, 호러연극제, 실험극페스티발, 로드페스티발, 대구연극제 등 크고 작은 연극공연문화가 상시적으로 열린다. 대구 극단들의 생산적인 공연문화는 대구지역극단 50% 이상이 1개 극단 1개 소극장을 유지 하고 있을 정도로 대명공연문화거리는 서울 대학로 다음으로 지자체 유일하게 ‘공연창작지구’를 형성하고 있고 대구 국립극단 유치전에도 팔을 걷어 붙이고 있다. 그만큼 6,25 전쟁당시 국립극단과 인연이 깊은 도시이고 연극, 뮤지컬, 오페라, 공연문화 지원정책도 다양해 원로와 중견 그룹이 연극문화와 토양을 유지하고 있다. 30~40대 대구연극인 그룹들이 생산적인 창작활동을 쏟아내면서 대구의 공연문화의 패러다임도 변화되고 있다는 것이 이번 대구연극제의 수확이자 변화의 신호다.

그 징후의 특징으로는 기존 희곡과 지역작가의 창작극을 수용해 공연하던 중견그룹 환경에서 대구지역 연극공연문화를 새롭게 형성하고 있는 30~40대 작가와 연출들의 대거 등장이다. 50~60대 중견 연출그룹인 이상원, 정철원, 김재만, 이국희, 이홍기, 김미정, 김재만, 성석배에서 안희철, 안건우, 윤정인(뮤지컬) 등이 희곡을 창작하고 연출을 선두에서 직접 주도 하면서 공연문화를 형성하고 있다. 이번 37회 대구연극제 출품작 세 편 모두 30~40대 대구연극인들이 창작하고 연출을 한 작품들로 채워졌다는 것은 공연 창작 환경이 ‘수용의 문화’에서 기존 창작 질서를 변화하려는 ‘실험과 도전의 창작문화’로 대구연극 생산의 패러다임이 변화되고 있다는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번 대구연극제에 출품한 세 작품 모두가 대구 발 순수창작극으로 채워졌다는 것은 대구연극제 37년 만에 형성된 역동적인 사건이라 할 수 있다. 출품작 편수로는 적고 작·연출로 무대를 바라보는 도전과 실험의 모색은 강하다 할 수 있다. 수상작품의 범위와 별개로 이러한 현상은 대구연극의 미래가 역동적인 창작환경으로 변화되고 있다는 긍정적 징후다.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독거노인과 인공지능로봇(AI)을 연결해 시대를 무겁고도 유쾌하게 바라보고 보고 있는 <환타스틱 패밀리>, 닭들의 세계를 우화적으로 연결해 치열한 생존과 평화, 구원과 인간애를 다루고 있는 우화 <맛있는 새, 닭>, 작가 이중섭의 이야기를 극중 인물의 삶과 중첩시켜 고단한 연극인들의 삶을 동일화된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는 <떠돌이 소> 등 관통하고 있는 주제도 다양하다. AI 시대의 독거노인과 인간애, 그리고 가족사(史), 고뇌와 삶, 전쟁과 인간의 파멸의 역사, 먹방 시대에 치킨 패스트푸드점과 ‘치맥’ 체인점 들이 넘쳐나는 사회환경에서 닭들을 바라보는 인간의 시선 등을 작품으로 포개 넣고 무대로 구현하려는 의도는 거칠고 극적환경으로 정제되지 않은 측면도 있지만 세 작품 모두 기대 이상의 작품들이었다.


|이중섭을 지나 인공지능 시대의 독거노인의 삶과 닭들의 우화적 세계까지 ‘달라진 대구연극제 창작 세 편’


△인공지능로봇과 독거노인의 가족사 <환타스틱 패밀리>

<환타스틱 패밀리>(극단 이송희 레퍼토리, 김지안 작 연출)는 고향이 평양인 극중 인물 맹 노인(이송희 분)의 가족사와 전쟁의 상혼과 내면으로 거세 할 수 없는 응고된 맹 노인의 기억을 퍼즐 식으로 담아내고 있다. 인구고령화로 늘어난 한국사회 독거노인 문제에 배우가 재현하는 AI(인공지능 로봇)을 등장시킨 것이다. 로봇을 통해 6,25 전쟁을 지나오며 부인과도 사별하고 포개진 노인의 가족사와 혈전된 내면을 인공지능로봇을 통해 치유의 가능성을 바라보게 한다. 이 작품은 죽음의 파멸로 몰고 가는 세대간 갈등과 전쟁의 역사를 지나온 맹 노인의 가족사를 다루는 연극이다. 연극이 생동감을 유지하는 것은 실버타운에서 홀로 살아가는 맹 노인을 위해 아들이 보내준 인공지능 로봇을 등장시키면서부터 극은 탄력적으로 전개 된다. 죽음이 다가오고 있는 독거노인과의 사랑과 소통, 공감을 통해 응고된 가족사의 기억을 극중 장면으로 다듬고 내면으로 혈전된 노인의 상처의 연대기에 위안을 줄 수 있는 것은 인공지능로봇이다. 인간과 가족을 통해 치유될 수 없었던 공감과 소통 그리고 혈전된 사랑이 비로소 로봇을 통해 전류가 이어진다.<환타스틱 패밀리>는 맹 노인이 살아온 응고된 파편적 시간의 연대기를 유람하며 세대간의 갈등과 화해와 용서, 사랑과 공감을 투영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작가와 연출 의도에도 불구하고 극이 방향타를 잃기 시작한 것은 이야기를 혼재적으로 중첩시키면서다. 전쟁의 역사와 아픈 가족사의 맹 노인의 이야기, 인간애(愛)를 느낄 수 있는 인공지능로봇과 응고된 맹 노인이 살아온 시대의 상처와 내면의 치유, 아들의 갈등과 노인의 죽음 등 맹노인을 통해 많은 것을 포개놓아 메시지가 또렷히 전달되지 못했다.


실버타운에서 홀로 살아가며 죽음을 앞두고 있는 맹 노인의 가족사를 다루려는 시선에서 인공지능로봇을 통한 노인의 치유를 시도하고 극의 마지막 장면에서 아들이 친자가 아님이 밝혀진다. 노인의 아픈 기억의 상처를 보듬고 독거노인을 사랑으로 돌보는 공감의 전류를 흘려보낸 인공지능 로봇이 극의 마지막에는 아들이 조종하는 살인로봇으로 극적 반전을 이루면서 연출적 시선이 모호해졌다. 맹 노인을 중심으로 실버타운 주변에 살아가는 강펀치(권경훈 분)와 빨간 내복(김재권 분), 통장(김하나 분)의 반복적인 극중 장면의 개입도 맹 노인의 삶과 그 가족사의 기억을 들추어내는 데는 정제되지 않았고, 주변인물의 반복적인 등장과 시선은 과하다. 쓸쓸한 노년의 인생을 살아가는 아픔과 가족사의 상처를 치유해 줄 수 있는 위안의 대상이 인공지능 로봇이였다는 설정으로 사회적인 독거노인 문제와 4차 산업혁명시대 인공로봇을 연결해 노년의 내면을 사랑으로 공감하고 치유하는 설정으로 이야기를 좁혔더라면 작품을 바라보는 공감의 온도는 컸을 것이다. 주변 인물들의 연기는 과하고 아들이 친자식이 아니라는 마지막 설정과 노인의 죽음은 설득의 동력이 약해 <환타스틱 패밀리>를 바라보는 시대적 공감은 작을 수 밖에 없다. 무대로 담아내려는 것이 많다.


|이중섭과 연극인의 삶, 동일화된 시선의 통증 <떠돌이 소> ‘닭들의 우아한 우화(寓話)와 인간애’<맛있는 새, 닭>

<떠돌이 소>(극단 처용, 안건우 작 성석배 연출)는 이중섭의 이야기와 연극을 업(業)으로 살아가는 작가 동윤(이우람 분)과 연극인의 삶을 중첩시키면 오늘날 살아가는 예술가의 삶과 그 의미가 어떻게 전달되고 있는지, 이중섭의 시대와 현재 창작의 통증이 무엇이 달라졌는지 묻고 있는 연극이다. 연극은 창작현실의 삶에 통증을 느끼며 살아가는 작가(동윤)의 시선과 내면, 그리고 연극인들의 삶을 동일화된 시선으로 바라본다. 극중 인물 동윤은 연극인으로 살아가며 고단한 삶을 마주할 때 마다 평전을 읽고 이중섭을 떠올리며 삶의 궤적을 자신과 동일화된 삶속으로 포개 놓으며 중섭의 삶은 무대로 파편적으로 소환된다. 무대는 작가가 희곡으로 써내려가는 이중섭의 이야기와 연극인(예술가)들이 살아가는 현재의 공간과 이중섭의 삶, 연극인들이 연극을 올리기 위해 삶의 사투를 버리며 현재를 살아가는 중첩된 공간으로 변화된다.


무대 뒤편에는 소극장 임에도 샤막(Shark-tooh Curtain)을 이용해 이중섭의 과거와 연극인들이 현재를 살아가는 공간으로 과거-현재로 재현된다. 연극 <떠돌이 소>는 창작의 고통과 통증을 이겨내며 연극인으로 살아가는 연극인들의 삶과 이중섭의 삶을 올려놓고 예술가의 치열한 사투와 삶의 둘레를 동일화된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는데 아쉬운 점은, 극중 인물(동윤)이 이중섭의 삶의 퀘적을 동일하게 그리는 분신(分身)으로 이중섭의 삶에 개입해 두 극중인물이 동일화된 내면으로 형상화 되지 못한 점이다. 극증인물 동윤이 연극을 하기 위해 이중섭 이야기를 창작하고 그려내려는 것인지, 작가의 삶과 아픔을 이중섭과 동일화된 내면의 시선으로 그려내는 것인지, 이중섭의 평전을 읽는 동윤의 작가적 상상에서 재현되어 희곡을 쓰는 시간의 흐름에서 무대로 재현되는 이중섭 이야기인지가 명확하지 않다.

또한 소극장 무대의 한계성도 있지만 이중섭 삶의 이야기와, 동윤을 중심으로 한 극단 단원들의 현재 삶의 시간이 재현되는 공간(샤막)의 불명확성이다. 현재의 삶(동윤과 연극인)-동윤과 이중섭의 동일한 자아-작가의 서술적 기억(이중섭이야기)-이중섭의 삶과 가족-이중섭과 연극인의 동일화 된 삶(과거, 현재) 등이 분리되지 못해 이중섭과 동윤을 과거와 현재의 시간에서도 동일화된 자아로 바라보고 전달하려는 의도가 희석(稀釋)됐다. 그러나 극단 처용의 <떠돌이 소>는 공간의 활용과 무대 미학적 측면에서 잘 구현된 작품이라 점, 원작 텍스트의 여백들을 연출시선으로 채워 무대를 밀도 있게 그려내고 있다는 점과 배우들의 고른 연기들이 작품의 완성도를 높여주고 있다. 그러나 연극적인 미학에서 벗어나 도전적이고 실험적인 과감한 시도와 동윤과 이중섭의 삶을 동일화된 자아의 시선으로 중첩시켜 <떠돌이 소>를 무대로 끌고 가는 동력을 발견하기에는 어려웠다.


<맛 있는 새, 닭>(극단 한울림, 이지영 작 연출)은 기계화된 종족번식을 통해 인간의 입맛만을 위해 태어나고 존재하는 닭들의 우화적 이야기다. 닭들이 외치는 것은 자유로운 삶과 평화다. 무대는 자유로운 닭 농장(마을)이다. 품종이 계량화 된 새 암탉 한 마리가 농장으로 들어오고 이 암탉은 그동안 인간 손길에서 죽음의 사투를 벌이고 인간의 입맛을 위해서 존재 했던 닭들에게 딴죽을 건다. 한마디로 인간의 입을 위해, 치맥을 위해, 대한민국 치킨 먹방을 위해 후라이드로, 양념간장으로 하루 수 천만 마리가 사라지는 대한민국 치킨사회를 향해 닭들은 인간보다도 더 짠한 닭들의 동료애를 보여주고 닭들도 자유와 평화를 즐길 수 있는 권리를 주장한다. 배우들의 앙상블도 뛰어나고 연기 활력이 넘친다. 닭들의 우화의 세계를 무대로 그려내면서 시종일관 웃음을 쏟아내게 만들고 극중 장면은 정제되어 있고 닭 연기로 의인화된 배우들의 공간의 움직임은 돋보인다. 대한민국 통닭 세계를 통해 바라보는 사회적 시선은 살아있고 거칠지만 도전적이고 시선이 발칙하게 느껴지는 연극이다.

먹방 한국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닭들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세계, 인간들을 위해 태생부터 치킨으로 분류되어 태어날 수밖에 없는 닭들의 운명에 닭 농장으로 온 영계(김현지 분)가 ‘당당한 닭들의 권리’를 주장하고 기존 닭들한테 딴죽을 걸면서 <맛있는 새, 닭>은 진지함과 웃음사이를 질주하고 무대를 경쾌한 속도를 내고 달린다. 때로는 닭들의 삶과 죽음사이로 사랑의 전류가 인간보다 더 인간다운 시선들로 채워지고 인간입맛을 구원하고 있는 이들한테 찾아온 것은 AI(조류 인플렌자)다. 인간보다 더 인간다운 닭들은 집단 폐사가 되고 무대는 닭들의 무덤이 된다. 마지막 대사다. “인간들은 우리들을 기억할까?” 이 연극은 거칠면서도 배우들은 활력이 넘친다. 연기의 앙상블을 이루고 있고 재미와 감동도 있다. 이 치킨 먹방 대한민국 사회에 던지는 잔잔한 메시지도 있다. 한번 연극으로 돌진해 보자는 단단함도 베여 있다. 거칠지만 웃음의 타이밍을 놓치지 않는다. 가공된 설정의 웃음이 아니라 배우들의 진지한 템포와 동력으로 흘려보내는 천연조미료다. 장닭(천정락 분)과 먹계(김정연 분)은 극의 흐름이 소동극처럼 소극(笑劇)으로 번지지 않도록 무게와 균형을 잘 이어주고 있고 꼬꼬(정선현 분)은 인간애가 흐를 수 있는 닭의 의인화된 연기를 정서적으로 잘 살려냈다. 수탉(석민호)과 색계(황현아), 새닭(김수인), 영계(김현지)도 연기의 경계를 이탈하지 않으면서도 각자 의인화된 닭들의 극중 캐릭터를 잘 살려냈다. 배우들의 앙상블로 <맛있는 새, 닭>의 이지영 작, 연출은 앞으로 대구연극의 새로운 모험과 실험적인 탐색을 이끌어 갈 것으로 기대되고 <환타스틱 패밀리>의 김지안도 작가적 역량과 연출적 성장을 할 수 있는 기대감으로 제 37회 대구연극제를 통한 큰 수확이었다. 안건우 작가도 다양한 소재의 창작희곡을 지속적으로 생산해 주길 바란다.


▶ 극단 한울림은

대구를 기반으로 활동하고 있는 극단 한울림은 정철원(연출, 대표)를 중심으로 ‘행위와 가치 그리고 나눔’이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1997년도에 창단됐다. 창단 이념인 ‘나눔’의 가치를 가장 최고의 목표에 두고 실천 중이며 2005년에는 극단이 사회적 기업으로 인정을 받았다. 극단 <한울림>은 연극과 뮤지컬, 오페라를 비롯해 교육까지 다양한 장르와 공연범위를 이어가고 있고 지역 콘텐츠 개발을 위해 지역문화예술 프로젝트를 펼치고 있다. 특히 정철원 연출은 대명동을 중심으로 하는 소극장 대명공연거리, 소극장 연극페스티발을 정착시키고 지역의 생산적인 문화로 형성시키는데 상당한 기여를 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극단 <한울림>은 지역성을 극복하고 전문화된 극단으로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공연예술단체가 되고자 하는 목표로 가지고 있다. 정철원 연출이 제 6대 대구시립극단 예술 감독으로 선임됨에 따라 올해 대구연극제에서 대상을 받은 <맛있는 새, 닭> 작가, 연출인 이지영씨가 극단 한울림 신임대표로 선임됐다. 극단 한울림은 서구문화회관 상주단체로 올해 다양한 레파토리를 선보이고 있다.








대경대학교 연극영화과 교수(연극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