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故) 박원순 전 서울시장 성추행 의혹에 대한 경찰 수사가 초기부터 여러 난관에 부딪히고 있다. 서울시 관계자들은 제기된 의혹에 부인으로 일관하거나 명확한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고, ‘스모킹건’이 될 박 전 시장의 휴대전화를 들여다 보는 일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서울시에서 자체적으로 추진한다는 민관합동조사단은 아직 출범조차 하지 못했다.
19일 국민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수사의 핵심은 서울시 관계자들이 피해자 A씨가 고소장을 접수하기 전 수 차례 피해 호소를 방조 및 묵인했는지 여부다.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 수사와 박 전 시장 사망의 경위를 파악하는 것도 경찰에 주어진 과제다. 태스크포스(TF)를 꾸려 수사에 나선 서울지방경찰청은 우선 서울시 관계자들을 차례로 조사할 방침이다. 박 전 시장에게 지난 8일 오후 ‘불미스런 일이 있냐’고 물은 것으로 알려진 임순영(55) 젠더특보는 이번 주 참고인 자격으로 경찰 조사에 출석하기로 합의했다.
A씨가 비서로 근무했을 당시 서울시장 비서실 및 인사업무를 맡았던 관계자들도 차례로 소환될 것으로 보인다. 전날에는 서울시장 비서실 관계자 1명이 참고인 조사를 받았다. 경찰 관계자는 “기능과 직급에 상관없이 필요한 모든 사람을 소환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들이 수사에 적극적으로 협조할지는 미지수다. 서울시 관계자들은 피해자가 공식적으로 피해 사실을 알린 적이 없다는 입장만 되풀이하고 있다. 또 고소장이 접수된 직후 박 전 시장이 피소 사실을 확인했다는 피해자 측 주장에 대해서도 명확한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
결정적 단서인 박 전 시장의 휴대전화를 들여다보는 일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법원은 지난 17일 박 전 시장 명의의 휴대전화 3대에 대한 통신영장을 기각했다. 경찰은 다시 영장을 신청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신청한 영장은 박 전 시장의 사망사건과 관련됐지만 성추행 의혹 조사 등으로 신청 취지를 바꿀 수 있다는 것이다. 이와 별개로 경찰은 사망지점에서 발견한 아이폰 1대를 경찰청 포렌식 부서에 넘겨 분석을 시작할 계획이다. 그러나 잠금해제 작업에만 수개월이 소요될 것으로 보여 수사의 발목을 잡을 수도 있다.
20일 청문회를 앞두고 있는 김창룡 경찰청장 후보자는 국회 행정안전위원회에 제출한 서면질의에 “법과 원칙에 따라 수사를 진행할 계획이며 진실규명 조사에도 협조하겠다”고 답했다.
서울시는 ‘서울시 직원 성희롱·성추행 진상규명 합동조사단’에 피해자 지원 단체인 한국성폭력상담소와 한국여성의전화의 참여를 요청하고 있다. 지난 16일 이들 단체는 “서울시의 진상규명 의지가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로 합동조사단에 참여하지 않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서울시는 객관성, 공정성을 확보하기 위해 조사위원 9명 전원을 외부전문가로 구성하겠다고 밝혔다. 여성권익 전문가 3명은 피해자 지원단체 등 여성단체에서, 인권전문가 3명은 국가인권위원회에서, 법률 전문가 3명은 한국여성변호사협회 등의 추천을 받을 계획이다.
또 시장 권한대행 명의로 전 직원에게 조사단에 협조할 것을 명령하고, 정당한 사유 없이 비협조할 경우 명령불이행으로 징계조치할 계획이다. 퇴직한 조사대상자가 정당한 사유 없이 불응할 경우 경찰 조사를 의뢰하도록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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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윤태 오주환 송경모 기자 trul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