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미 국방부에 주한미군 철수를 압박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18일(현지시간) 보도했다. 트럼프 행정부 들어 계속 흘러나오는 주한미군 감축설은 한국 정부에 방위비 분담금 인상을 압박하기 위한 카드라는 분석이 현재로선 우세하다. 다만 해외 주둔 미군의 재배치를 추진하고 있는 트럼프 행정부가 주한미군 규모를 재검토할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WSJ은 “몇 달 전 우리는 트럼프 대통령이 아프가니스탄, 독일, 한국에서 미군을 철수시키도록 미 국방부를 밀어붙이고(pushing)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전했다. WSJ은 미 국방부가 지난 3월 주한미군 감축 옵션을 백악관에 제시했다고 보도한 직후 사설을 통해 이같이 주장했다.
WSJ는 “우리는 아프가니스탄에 집중하라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그것은 오판이었다”며 “트럼프 대통령은 이미 주독미군 감축을 지시했고 이제 한국에 대해서도 같은 일을 할 수 있다는 기사를 보고 있다”고 덧붙였다.
해외 주둔 미군의 재배치는 마크 에스퍼 미 국방장관의 역점 과제 중 하나다. 에스퍼 장관은 지난 17일 배포한 국가국방전략(NDS) 자료에서 몇 개월 내에 주한미군이 속한 인도·태평양사령부 등 몇몇 전투사령부의 미군 재배치 문제를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아프리카·남부·유럽사령부에선 이미 검토·조정이 진행 중이고, 인도·태평양 및 북부·수송사령부는 몇 달 내에 검토를 시작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미 국방부 역시 “우리는 전 세계 군사 태세를 일상적으로 검토하고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해외 주둔 미군 재배치는 일상적으로 검토되는 사안으로 주한미군 재배치도 포함된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WSJ 보도 이후 미국에선 주한미군 감축 반대 목소리가 잇따라 나왔다. 애덤 스미스 미 하원 군사위원장은 “우리는 주한미군이 한국군과 협력해 북한의 전쟁 개시를 막아왔다고 믿는다”며 “우리는 이런 관계를 유지하고 싶고 그렇게 하는 데 전념하고 있다”고 말했다고 미국의소리(VOA) 방송이 보도했다.
공화당의 벤 새스 상원의원은 “이러한 전략적 무능은 지미 카터 전 대통령 수준으로 취약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미 의회는 행정부가 독단적으로 주한미군 감축 결정을 할 수 없도록 제동 장치를 두고 있다. 주한미군을 현 수준인 2만8500명 미만으로 감축하기 전 의회 승인을 거치도록 한 것이다. 미 의회는 지난해 이러한 조항이 담긴 2020회계연도 국방수권법(NDAA)을 통과시켰고, 올해에도 같은 내용의 법안 처리를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이 밀어붙이면 막을 방법이 없다는 분석도 나온다. 현행 NDAA는 미 국방장관이 ‘미국과 동맹의 안보를 중대하게 침해하지 않을 것’ ‘동맹과 적절히 협의할 것’이라는 두 조건을 입증하면 해외주둔 미군을 감축할 수 있도록 했기 때문이다.
우리 군 당국은 정확한 진의 파악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군 관계자는 19일 “현재 미군이 우리 측에 감축 관련 언급을 하거나 협의 중인 사안은 없다”고 말했다. 군 당국은 미국 측의 구체적인 입장 표명을 기다리고 있지만 이 문제가 이달 중에 열릴 한·미 국방장관 회의에서 다뤄질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국내 전문가들도 주한미군 조정 논의는 예정된 수순이라는 관측을 내놓고 있다. 박원곤 한동대 교수는 “중국을 견제하는 방향으로 미군의 해외 주둔 전력이 재배치될 가능성이 높다”며 “인도·태평양사령부에 소속된 주한미군을 조정하는 문제는 미 대선 이후 본격적으로 논의될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워싱턴=하윤해 특파원, 문동성 기자 justic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