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전쟁 억제력 강화’ 메시지를 또다시 던지며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등 전략무기 개발을 계속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전략무기 개발에 박차를 가해 오는 11월 미국 대선 이후 재개될 것으로 전망되는 북·미 비핵화 협상에서 우위를 점하겠다는 전략이다. 다만 김 위원장은 ‘핵’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고 한·미를 직접 겨냥한 메시지도 내놓지 않는 등 신중한 모습을 보였다.
김 위원장은 지난 18일 노동당 중앙군사위원회 제7기 제5차 확대 및 비공개 회의를 주재하고 전쟁 억제력 강화, 중요 군수생산계획 등을 논의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19일 전했다. 김 위원장이 별도 비공개 회의를 연 사실이 보도된 것은 집권 이후 처음이다. 다만 구체적인 회의 내용은 보도되지 않았다.
김 위원장이 ‘전쟁 억제력 강화’ 표현을 또 한번 꺼내든 것은 SLBM과 초대형 방사포 등 전략무기 개발을 멈추지 않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김 위원장은 지난 5월 노동당 중앙군사위 제7기 제4차 확대회의에서 ‘핵전쟁 억제력’을 한층 강화하는 새로운 방침을 제시한 바 있다. 미 대선 전 북·미 협상 재개는 사실상 어렵다고 보고 그동안 ‘몸값’을 올려놓겠다는 의도다. 조선중앙통신은 김 위원장이 “핵심적인 중요 군수생산계획지표들을 심의하고 승인했다”고 전했다.
다만 김 위원장은 이번에 비공개 회의 형식과 ‘전쟁 억제력’이라는 절제된 표현을 사용하며 미국을 자극하지 않겠다는 의도를 드러냈다. 임을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미국을 자극하지 않으면서도 일정한 수준의 압박은 주겠다는 의도”라고 분석했다. 실제로 김 위원장의 여동생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은 지난 10일 발표한 담화문에서 미국을 향해 “우리를 다치지만 말고 건드리지 않으면 모든 것이 편하게 흘러갈 것”이라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최근 미·중 갈등으로 높아진 동북아 지역에서의 군사적 긴장감과 다음달로 예정된 한·미 연합군사훈련에 대한 대응책 마련도 주문했을 것으로 관측된다. 조선중앙통신은 한반도 주변에 조성된 군사정세와 잠재적인 군사적 위협에 대비하기 위해 회의가 열렸다고 설명했다. 홍민 통일연구원 북한연구실장은 “한·미 연합군사훈련이 계획대로 열릴 경우 (북한군의) 하계훈련을 어떻게 진행해야 할지, 축소돼 진행되면 어떻게 할지 등에 관해 논의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 위원장이 지난달 보류를 결정한 북한군 총참모부의 ‘대남 군사행동 계획’에 관한 추가 내용도 공개되지 않았다. 새로 꾸려진 우리 정부 외교안보라인의 대북 정책 방향 등을 우선 지켜본 뒤 행동에 나서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손재호 기자 sayh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