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 주둔 미군 ‘재배치’ 재검토 일환
미 국방부 “어떤 결정 이뤄지지 않아”
미국 상·하원, 주한미군 감축 반대
미국 국방부가 백악관에 주한미군을 감축하는 옵션을 제시했다고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이 17일(현지시간) 미군 관리들을 인용해 보도했다.
이에 따라 트럼프 대통령이 독일 주둔 미군의 감축을 결정한 데 이어 주한미군 감축을 밀어붙일 수 있다는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그러나 미국 상·하원이 현재 2만 8500명 규모인 주한미군을 감축하는 것을 제한하는 법안들을 추진하고 있어 주한미군 감축이 현실화되지 않을 것이라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WSJ은 ‘트럼프 행정부가 주한미군 감축을 저울질하고 있다’는 제목의 기사에서 이번 감축 계획이 감축안이 한·미 방위비 분담금 현상이 교착 상태에서 빠져 있는 상황에서 나왔다고 지적했다. WSJ은 주한미군 감축 계획이 한국의 방위비 분담액에 대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불만 때문에 추진되고 있다는 점을 명확히 했다.
문 대통령, 5년 유효기간 역제안…트럼프, 거부
WSJ은 문재인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이 상대방의 제안을 각각 거절했다고 보도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한·미 방위비 협상을 5년 단위로 하는 ‘역제안’을 제시했으나 트럼프 대통령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또 1년 단위 협상을 제안하면서 13억 달러(1조 5665억원)를 한국에 요구한 것도 문 대통령이 거부했다고 WSJ이 전했다.
WSJ은 이번 주한미군 감축안이 전 세계에 주둔한 미군에 대한 광범위한 재검토의 일환으로 이뤄졌다고 보도했다. 전 세계 미군을 어떻게 재배치하고, 잠재적으로 주둔 규모를 축소할 것인지에 대한 큰 틀의 논의 속에서 주한미군 감축 문제가 다뤄졌다는 설명이다. 현재 주한미군 주둔 규모는 2만 8500명이다.
WSJ은 그러나 트럼프 행정부가 주한미군을 줄이는 비상계획에 대한 설명을 거부했으며 주한미군에 대한 어떤 결정도 이뤄지지 않았다고 밝혔다고 전했다.
한·미는 2019년 한국이 주한미군 주둔비용으로 1조 389억원(당시 환율로 9억 2600만 달러)을 부담한다는 내용으로 방위비 분담금 협정을 타결했다. 이는 전년보다 8.2% 인상된 금액이었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은 올해 한국에 50억 달러(6조원)를 요구하면서 5배나 인상을 주장했다.
이에 문재인 대통령은 50억 달러 이상을 5년에 나눠 내겠다는 역제안을 했다고 WSJ은 소식통을 인용해 주장했다.
첫 해에는 전년 대비 13.6% 인상을 하고, 2년에서 5년까지는 그 전년도의 7%씩을 매해 인상한다는 방안을 제시했다. 이렇게 될 경우 한국은 마지막 5년째에는 13억 달러(1조 5665억원)를 지불할 계획이었다.
트럼프, 1년 유효기간 13억 달러 제시…문 대통령, 거부
한국은 지난 3월, 문재인 대통령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진단 도구를 보내달라는 트럼프 대통령의 부탁을 받아들였을 때 한국 정부의 역제안이 타결될 가능성이 큰 것으로 전망했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은 1년 유효기간의 협상을 요구하면서 13억 달러를 요구했다고 WSJ은 보도했다. 이는 5년 유효기간 협상이 타결될 경우 마지막 5년 차에 한국이 지불하겠다고 제안했던 액수다. 그러나 문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의 제안을 거부했다고 WSJ은 전했다.
한 백악관 고위 당국자는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을 포함한 전 세계의 동맹국들이 더 많이 기여할 수 있고, 더 많이 기여해야 한다는 기대를 분명히 밝히고 있다”고 말했다.
백악관은 지난해 가을, 미 국방부에 중동과 아프리카·유럽·아시아 등을 포함해 전 세계에 배치된 미군의 철수를 위한 예비적 옵션을 제시할 것을 지시했다고 WSJ은 전했다. 이에 미 국방부는 지난해 12월 중국과 러시아와의 경쟁을 위한 전략과 미군의 순환배치 중요성 등을 반영한 광범위한 아이디어를 제출했다.
이런 움직임 속에 미 국방부는 지난 3월 한국에 대한 일부 옵션을 포함해 여러 옵션을 가다듬어 백악관에 제시했다고 WSJ은 전했다.
미국 의회, 주한미군 감축 반대…미 국방부는 ‘침묵’
그러나 미국 의회가 반대하고 있어 주한미군 감축이 현실화되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도 제기된다. 미국 하원 군사위원회는 이달 북한의 위협이 줄어들었고, 주한미군 감축이 미국 안보에 위협이 되지 않는다고 미국 국방장관이 입증하지 못할 경우 주한미군을 현재 2만 8500명 규모에서 더 이상 줄일 수 없도록 규정한 법률안을 통과시켰다. 미국 상원 군사위원횡도 비슷한 조치를 준비하고 있다고 WSJ은 지적했다.
그러나 미국 국방부는 아직 구체적인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미 국방부의 한 관리는 “한국에서의 미군 태세를 바꿀 어떤 결정도 이뤄지지 않았다”면서 “검토 결과와 상관없이, 우리(미군)는 한반도에서의 어떤 위협에도 대처할 수 있는 능력을 유지할 것이라고 확신한다”고 WSJ에 말했다.
워싱턴=하윤해 특파원 justic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