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볼lab] 최후 입고, 짠내 나는 하루…‘스벅 레디백’ 영접기

입력 2020-07-18 07:00
16일 오후 경기 화성의 한 스타벅스 매장 앞에서 시민들이 '서머 레디백'을 손에 넣기 위해 줄을 서고 있다(왼쪽). 9시간이 넘는 기다림 끝에 레디백을 받을 수 있었다. 사진=최민우 기자

17일 새벽 4시쯤 화성시 진안동의 한 스타벅스 매장 앞. 나는 여자친구와 함께 요가 매트를 깔고 앉아 있었다. 벌써 6시간째. 오직 하나 스타벅스 ‘서머 래디백’을 손에 얻겠다는 일념 하나로 추위·모기·잠 3종 세트와 한밤 노숙 사투를 벌이는 중이었다. 내 뒤로는 12명의 ‘스벅 난민’들이 진을 치고 있었다.

전날인 16일 저녁 나는 비장하게 집 근처에 있는 스타벅스 매장을 찾았다. “오늘 레디백 들어왔나요?” 한 직원에게 다가가 슬쩍 물었다. 레디백 마지막 입고일은 16일 또는 17일이다. 이날 들어왔다면 다음날은 들어오지 않는다.

“어제 들어왔는데 오늘은 입고된 게 없네요. 내일도 들어올지는 확실하게 말씀을 드릴 수가 없어요.” 오늘 레디백이 입고 되지 않았다는 직원의 말에 기대감이 커졌다. 아, 오늘이다. 이게 나의 마지막 기회다. 심장이 뛰었다.

16일 오후 경기 화성의 한 스타벅스 매장 앞에서 밤샘 대기하기 위해 매트, 겉옷, 보조배터리, 간식 등 준비물을 챙겨나왔다. 사진=최민우 기자

16일 오후 9시40분 : 1번이 되다

매장 앞에서 밤새 대기하기 위해 집으로 돌아가 매트, 겉옷, 보조배터리, 간식 등 준비물을 챙겨서 나왔다.

도착하니 오후 9시40분. 매장 안에 있는 사람들, 밖에서 담배를 피우는 사람들 전부가 경쟁자로 보였다. 매장 마감 시간인 오후 10시 매장 앞에 요가 매트를 깔고 앉았다. 대기 1번이다. 함께한 여자친구가 2번을 차지했다.

오후 10시20분쯤 한 직원이 “벌써 줄을 섰어요? 물건(레디백) 들어왔으니 받을 수 있을 거예요”라고 말했다. 쓰레기를 버리러 나온 다른 직원에게도 물었더니 “레디백이 안 들어왔다”고 했다. 다만 “내일이면…” 이라고 말을 흐렸다. 상반된 대답에 약간 혼란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16일 오후 경기 화성의 한 스타벅스 매장 앞에서 배송기사가 물류를 배달하고 있다. 사진=최민우 기자

16일 오후 11시 : 모든 것이 레디백으로 보였다

오후 11시 스타벅스 로고의 불이 꺼졌다. 진짜 기다림의 시간이 시작됐다.

5분 뒤 화물차 한 대가 도착했다. 반가운 마음에 연신 사진을 찍었다. “수하물 중에 레디백이 있냐”고 묻자 배송기사는 “부자재를 싣고 왔다. 레디백은 우리도 배송하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이어 “3일 전부터는 선배송 시스템으로 바뀌어 레디백이 어디에, 얼마나 들어가는지 알 수가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레디백이 담긴 박스는 녹색에 큰 박스라고 귀띔을 해줬다. 레디백이 없다고 했지만, 계속 수하물에 눈이 간다. 이 모습을 본 배송기사가 웃었다. “다른 분들도 그래요.”

오후 11시20분쯤 마지막 점원이 가게의 문을 닫았다. 점원은 “(레디백) 물량이 많이 들어왔다. 원래 새벽 시간에 들어오는데 선배송이라 오늘은 저녁에 들어왔다. 그린도 이게 마지막”이라며 “기다리시면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물량이 많다는 말을 듣고 ‘좀 더 늦게 줄을 설 걸’이라는 후회가 밀려들었다.

노상 밤샘은 쉽지 않았다. 길거리 흡연족들 때문에 담배 연기가 코를 찔렀다. 대로변에 앉아 자동차 매연 냄새을 몇시간째 맡았더니 머리는 지끈거렸다. 술에 취한 사람들이 지나가면 행여 시비가 붙을까 걱정이 됐다. 나를 신기하게 보는 사람들의 시선도 끝내 적응이 되지 않았다. 어떤 이들은 나를 보고 ‘레디백 때문에 서 있는 거냐’고 수근거렸다.

17일 오전 5시쯤 경기 화성의 한 스타벅스 매장 앞에 20여명의 시민들이 '서머 레디백'을 구하기 위해 줄을 서고 있다. 사진=최민우 기자

17일 오전 0시48분: 스벅 난민들이 몰려들다

새벽 0시48분 검은색 티셔츠와 반바지, 슬리퍼를 신은 한 남성이 다가오더니 대뜸 “들어왔어요?”라고 물었다. “레디백이요? 들어왔다고 하네요”라고 답했다. 남성의 손가락이 바빠진다.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어 상황을 전달하며 매장 주변을 서성인다. 곧이어 파란색 체크무늬 반바지를 입은 남성이 간이 의자 2개를 들고 왔다. 두 사람은 의자에 앉아 묵묵히 휴대폰을 바라봤다. 드디어 첫 동지가 생겼다.

“끼이익~” 오전 1시30분쯤 소형차 한 대가 급하게 매장 앞에 멈춰선다. 한 남성이 운전석에 내리더니 레디백 입고 여부를 묻는다. 레디백을 찾아 이곳저곳 매장을 돌아다닌 모양이다. “레디백이 입고됐지만, 수량은 모른다”고 하자 차를 몰고 어디론가 사라졌다. 대기줄을 보고 다른 매장으로 간 걸까. 나와 여자친구, 두명의 남성까지 대기자는 4명인 상태였다. ‘다시 돌아올까’라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지만, 그는 끝내 오지 않았다.

30여분 뒤 한 여성이 매장을 찾아왔다. 그는 대기 1번인 나를 보고 놀란 표정이었다. “왜 이렇게 빨리 왔어요?” 레디백 교환 마지막 날이라 서둘렀다는 말에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프리퀀시 이벤트에 처음으로 참여했다”며 “처음에는 서머 체어를 받을 생각이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주변에서 하도 레디백 소리를 하길래 왔다”며 “중고 거래 사이트에서도 서머 체어 2개가 레디백 1개와 교환된다더라”고도 말했다.

17일 오전 6시 반쯤 경기 화성의 한 스타벅스 매장 앞에 '서머 레디백'을 구하려는 사람들의 줄이 주차장까지 길게 늘어져 있다. 사진=최민우 기자

17일 오전 2시20분 : 인간띠가 생겼다

오전 2시20분쯤 문뜩 “이게 뭐 하는 짓인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갖고 싶긴 한데 이만큼이었던가. 회의와 의문이 밀려들었다. 춥고, 배고프고, 졸린 나는 ‘스벅 난민’이었다.

잠시 후, 머리가 희끗희끗한 중년의 남성이 간이 의자를 들고 왔다. 그는 “한 명, 두 명, 세 명…” 대기 중인 인원을 세더니 자리를 잡았다. 6번째 대기자였다. “가방이 6개나 있는지 모르겠네.” 그의 불안 섞인 속삭임을 듣는 순간, 모든 회의와 의심이 한순간에 사라졌다. 대신 뿌듯함이 밀려들었다. 역시 일찍 오길 잘했어.

밤이 깊은 오전 2시46분 부부로 보이는 두 남녀가 줄을 선다. 여성이 매장 안을 살펴보지만 어떤 박스에 레디백이 들어 있는지는 알 수가 없다. 오전 3시쯤 매트에 앉은 채로 잠을 청해 본다. 손등과 발목 그리고 목, 등까지 모기에게 한 상을 차려줬다. 긴 소매 옷을 입었지만, 소용이 없다. 모기들의 틈새 공략에 졸다 깨다를 반복했다.

9, 10… 32번 어느새 줄이 길어졌다. 고개를 들어보니 레디백을 갖기 위한 인간띠가 매장을 감싸 안았다. 차량을 몰고 여러 매장을 돌아다니다 마지막으로 이곳을 찾은 사람도 있었다. 한 여성은 레디백을 갖기 위해 새벽부터 택시를 타고 매장들을 순회했다고 했다.

17일 오전 5시 : 해가 떴다

오전 5시쯤 동이 텄다. 밝아오는 하늘처럼 내 마음도 환해지기 시작했다. 밤샘 대기에 끝이 보인다. 하지만 이때부터가 제일 힘든 시간이었다. 함께 밤을 샌 사람들의 얼굴에 피곤함이 가득하다. 레디백이 들어왔을까 초조함은 극에 달해가지만 매장 문은 굳건히 닫힌 채 꿈쩍도 하지 않았다. 오전 5시30분. 직원들이 한두 명씩 출근을 하기 시작했다. 유리문 너머로 출근한 직원들은 지난밤 들어온 물건을 확인하느라 분주한 모습이다.

개장 시간 10분 전인 오전 6시50분. 드디어 문이 열렸다. 직원 안내에 따라 매장에 들어서 준비된 자리에 앉았다. 대기번호 1번인 나는 가슴 졸일 일은 없었다. 물건이 있는 한 나는 무조건 1순위니까. 하지만 그래도 가슴이 두근댔다.


17일 오전 7시 : 레디백을 손에 넣다

“1번 손님, 계산대로 와서 레디백 받아가세요”

올해 10월말 예정된 신혼여행에서 쓸 커플템을 얻기 위해 시작됐던 ‘레디백 구하기 대작전’이 마침내 승리로 끝났다. 이날 총 28개의 레디백(그린)이 들어왔다. 말 그대로 ‘대방출’이었다. 직원은 평소 레디백이 10개 내외로 들어온다며 놀라워했다. 간발의 차이로 레디백을 놓친 10여명의 사람들은 아쉬움을 감추지 못했다. 이들은 레디백 대신 서머 체어를 가져갔다.

지난 6월 30일, 7월 3일 새벽 4~5시쯤 레디백을 받아보려고 매장에 갔다가 헛걸음 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매장에 갈때마다 번번이 물량이 떨어졌다, 입고가 안됐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하지만 이날은 가장 먼저 레디백을 받았다. 삼세번 도전 끝에 성공할 수 있었다. 9시간 넘게 노상에서 시간을 보낸 우리의 모습은 ‘웃퍼’ 보였지만.

행여 상처라도 날까 애지중지하며 레디백을 살펴본다. 조심스럽게 포장지를 벗기고, 녹색 빛깔에 작고 앙증 맞은 레디백을 어루만진다. 그간의 노력이 보상 받는 순간이었다. 애증의 대상이었던 레디백은 이제 완소템이 됐다.

조기품절과 중고거래 등장으로 이벤트 초기부터 열풍을 일으킨 ‘서머 레디백’은 17일부로 더는 매장에서 구매가 어려워졌다. ‘2020 여름 e-프리퀀시 이벤트’는 오는 22일까지 며칠 더 남았지만 물량이 더이상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10시간 노숙 후 풀린 눈으로 출근을 준비하며 자꾸 웃음이 났다. 저기 저렇게 내 방에 ‘떡’ 하니 앉아있는 레디백이라니. 가방 하나에 이렇게 행복해질일인가, 싶긴 하다. 그래도 해보니 알겠다. 내돈 쓰고 극강 희열을 느껴보고 싶다면? 노숙 특템을 추천한다.

[해볼lab]은 ‘해볼까?’라는 말에 ‘실험실’이라는 뜻의 ‘lab’을 조합해 만든 단어입니다. 국민일보 기자들이 직접 체험해보고, 그 감상을 솔직히 담았습니다.

최민우 기자 cmwoo1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