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진돗개들, 목걸이에 경찰 계급장이 달렸네요?”
“네, 파출소에 데려온 경관들이 순경 계급장을 달아줬어요.”
이번 사연의 주인공은 경기 포천경찰서 포천파출소의 명예 경찰견, 3살 왕방이와 2살 왕순이입니다. 두 믹스 진돗개는 각각 생후 2개월 무렵 인근 폐공장 부지 등에서 발견됐습니다. 이후 민원을 받은 파출소 경관의 손에 구조돼 지역 주민과 경찰들의 사랑을 받으며 건강하게 성장했습니다.
보통 진돗개 하면 강인한 충견의 모습이 떠오르죠. 그런데 얘들아, 너희 진돗개 맞니? 왕순이는 넉살이 대단합니다. 취재기자에게 다가와 이리 킁킁, 저리 킁킁거리더니 토실토실한 등판을 철퍼덕, 기자에게 기댑니다. 친해지고 싶은 사람에게 이런다네요? 인터뷰 중에는 옆에 누워 드르렁 코를 골았답니다.
파출소 선배인 왕방이는 그런 막내를 지그시 바라봅니다. 왕방이는 어린 왕순이에게 배변, 식사, 소통 등 모든 예절을 알려준 언니 같은 존재입니다. 왕순이가 다른 개나 어린이에게 너무 짓궂게 굴면 왕방이가 끼어들어 점잖게 타이른다고 해요. 제보자는 “둘을 보면 자매처럼 사이가 좋아서 무척 기분이 좋다”며 흐뭇해합니다.
하지만 두 반려견의 집은 어디있냐고 묻자, 제보자의 표정이 금세 어두워집니다. 두 반려견은 지난 6월 22일 시끄럽다는 민원이 빗발친다는 이유로 포천파출소 앞마당에서 쫓겨났습니다. 주택가 한복판에 위치해 민원인이 밤낮없이 오가는 파출소 특성상 개를 두기 곤란하다며 향후 거처도 마련해주지 않고 내쫓은 것이죠.
황당했던 제보자는 두 견공을 회사 사무실로 데려왔고, 보다 못한 이웃 주민이 국민신문고에 ‘파출소에서 왕방이와 왕순이를 지금처럼 잘 보살펴달라’는 내용의 민원을 제기합니다. 하지만 포천경찰서로부터 “현재 두 동물의 행복을 위해 그동안 자식처럼 키워왔던 동네 주민에게 인계하여 보호·관리하고 있다”는 황당한 답변을 받습니다. 포천경찰서가 밝힌 동네 주민이란 바로 제보자입니다. 또 유기될 상황에서 개들을 급히 데려왔는데 경찰서 측은 무슨 절차라도 거친 듯 “인계”했다고 표현한 겁니다.
왕방이 왕순이에게는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정확한 상황파악을 위해 국민일보는 왕방이와 왕순이를 처음 구조해온 포천파출소 전임자 B, C경관과 왕방이, 왕순이를 홀로 돌보는 인근 주민 A씨의 삼자대면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경찰 임무 아니지만 구조한 것” vs “구조했으면 끝까지 책임져라”
최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파출소와 경찰이 왕방이와 왕순이를 유기했다’는 제목의 글이 올라와 2000건 넘는 서명을 받았습니다. 청원글 내용입니다.
“왕방이는 지난 2018년 4월 포천파출소에 근무하던 B경관이 데려왔고 이듬해 2월에는 C경관이 왕순이를 데려왔습니다. 경관들은 다른 곳에 전출 갈 때 개들을 두고 갔습니다. 사실상 파출소에 개를 유기한 겁니다. 왕방이와 왕순이에게 사료를 사 먹이고, 동물등록하고 병원도 데려간 것은 그동안 주민 A씨의 몫이었습니다. 그런데 지난 6월, 짖음으로 인한 민원이 많으니 개를 치우라는 포천경찰서의 지시가 있었다면서 포천파출소 측은 개들을 내쫓았고, 현재 개들은 주민 A씨가 돌보고 있습니다. 안타깝고 슬픕니다. 이런 무책임한 경찰들이 내 나라를 지켜준다는 사실이….”
여기서 말하는 주민 A씨는 제보자를 가리킵니다. 그는 B, C경관이 개를 돌볼 의무, 입양할 의무를 본인에게 떠넘겼다고 호소합니다. 제보자는 “차선책은 개들을 파출소에서 임시보호 하면서 입양자를 찾는 것인데 파출소 측은 개들을 더 둘 수 없다고 못을 박은 상황”이라고 분노합니다.
이에 B,C경관은 “우리는 개를 돌보는데 서툴다. 마침 능숙한 A씨(제보자)에게 소유권을 넘긴 것”이라고 해명합니다. 본인들은 유기견을 구조할 의무가 없지만 사정이 딱해서 파출소로 데려왔다는 주장이죠.
어느 쪽 의견이 맞는 것일까요? 동물구조단체 전문가의 조언을 구했습니다.
입양 보내는 노력이 없다면, 구조가 아닙니다
동물보호단체 카라의 김현지 정책팀장은 “입양처를 찾지 않으면서 개를 데리고 있는 상황은 임시보호라고 볼 수 없다”고 진단합니다. 유기된 개가 파출소에 들어온 지 3년 넘도록 돌봄·입양 대책을 마련하지 않았으니 사실상 방치 행위라는 지적입니다.
경관들의 입장도 이해는 갑니다. 당장 도움이 필요한 아기 강아지들을 외면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유기동물을 구조하려면 많은 것을 책임져야 합니다. 구조-임시보호-입양 추진. 이 세 가지를 모두 고민하지 않는 동물구조는 또 다른 유기, 방치 문제를 낳습니다.
유기견의 구조 이후를 책임지지 않았으므로 B, C경관은 결과적으로 왕방이, 왕순이를 파출소에 방치한 겁니다. 김 팀장은 “입양처를 찾아주면서 잠깐 파출소에서 임시 보호하는 모양새였다면 굉장한 미담이었을 것”이라고 안타까워합니다.
이날 B, C경관도 “지속적으로 돌볼 사람이 없는 관공서에 동물을 오래 둬선 안 됐다”며 잘못을 인정하고 3년간 개들을 돌본 제보자에게 사과했습니다.
왕방이와 왕순이의 가족을 찾습니다
파출소에서의 3년을 뒤로 하고, 이제 왕방이와 왕순이는 진짜 가족을 만나야 합니다. 제보자는 “둘은 어릴 적부터 떨어진 적 없는 핏줄 같은 사이”라며 “두 마리가 함께 뛰놀 수 있는 마당이 있는 집으로 입양가면 좋겠다”고 설명합니다.
왕순이는 2019년 1월 태어난 진돗개-리트리버 믹스견입니다. 왕방이는 2019년 2월생으로 진돗개 믹스견이죠. 두 마리 모두 중성화 암컷이며 앓고 있는 질병 없이 건강합니다. 100% 실외배변을 하므로 실내를 더럽히지 않아요.
동네 주민들의 사랑을 받으며 자란 견공답게 어린이 및 다른 동물에게 상냥하며 손, 엎드려, 하이파이브, 기다려 등 기초행동에 능숙하답니다. 사랑스러운 왕방이와 왕순이를 함께 입양하길 원하시는 분들의 신청을 기다립니다.
(입양신청 메일: tellme@kmib.co.kr)
[개st하우스]는 인간과 동물의 행복한 공존을 담는 공간입니다.
즐겁고 감동적인 동물 이야기가 고플 때마다 찾아오세요.
이성훈 기자 tellm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