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 이제서야 박원순 ‘피해호소인’을 ‘피해자’로 부르기로

입력 2020-07-17 12:59
더불어민주당 이해찬 대표가 15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발언을 듣고 있다. 연합뉴스

더불어민주당은 17일 고(故) 박원순 전 서울시장을 성추행 혐의로 고소한 전직 비서를 부르는 호칭을 ‘피해자’로 통일키로 했다.

허윤정 대변인은 이날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피해자로 호칭을 통일하기로 했나’는 질문에 “오늘 최고위원회의에서 그렇게 논의됐다”고 밝혔다. 진성준 전략기획위원장은 최고위에서 여성가족부가 전날 ‘고소인을 법상 피해자로 본다’는 입장을 냈다고 보고했다. 이후 당 차원에서 정부에서도 그렇게 방침을 정했으니 당도 따르자는 공감대를 이룬 것으로 전해졌다. 다만 이해창 대표는 회의에서 이에 대해 별다른 언급을 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10일 오후 서울시 종로구 서울대학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고 박원순 서울시장 빈소를 찾은 관계자들이 조문하고 있다. 연합뉴스

앞서 정치권에서는 전직 비서에 대한 ‘피해호소인’ 호칭 사용을 두고 논란이 일었다. 서울시 뿐 아니라 청와대와 정부, 여당까지 피해호소인이라는 용어를 사용해왔다.

박원순 사건의 피해자는 법률적으로는 고소인이 맞다. 형사소송법에 따르면 수사기관에 처벌을 요청한 이를 고소인으로 본다. 다만 박 전 시장이 사망해 경찰은 ‘공소권 없음’으로 사건을 검찰에 넘길 방침이다. 수사받을 대상이 사라진 것이다. 따라서 여권에선 피해자를 고소인으로 명명하기 어렵다는 입장이었다. 민주당 측은 박 전 시장의 혐의가 명확하지 않은 이상 해당 직원을 피해자라고 부르기 부담스럽다는 의견을 내왔다.

피해호소인이라는 단어는 법률사전에 등장하는 공식 용어가 아니다. 피해를 주장하고 있는 사람을 줄여 피해 호소인이라는 조어를 사용한 전례가 없는 것은 아니다. 다만 이번 경우처럼 정부나 정당 등에서 마치 합의라도 한 듯 같은 의미로 사용하는 것은 처음이다.

13일 서울 은평구 한국여성의전화 교육관에서 열린 '서울시장에 의한 위력 성추행 사건 기자회견'에서 김재련 법무법인 온-세상 대표변호사가 박원순 시장이 고소인에게 보낸 것이라며 비밀대화방 초대문자를 공개하고 있다. 연합뉴스

일각에선 ‘피해호소인’ 용어가 적절하지 않다는 지적이 나왔다. 공식용어도 아닌데다가 형식적 증거를 갖춰서 문제를 제기하기 보다는 다소 막연하게 피해를 주장한다는 의미로 들릴 수 있다는 것이다. 결국 피해호소인이라는 단어에는 피해자 측의 일방적 주장이라는 뉘앙스가 담겨 있다.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는 지난 14일 자신의 페이스북에서 “피해 호소 여성이 무슨 뜻이냐. 또다시 그 빌어먹을 무죄 추정의 원칙인가”라며 “피해자라는 말을 놔두고 피해 호소 여성이라는 생소한 신조어를 만들어 쓰는 것은, 성추행 사실을 인정할 의사가 없다는 얘기”라고 꼬집었다.

박세환 기자 foryo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