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숙현 선수 사망 사건 이후 체육계의 고질병인 신체적 폭력 및 성폭력 문제에 대한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이번 일을 계기로 체육계에 만연한 사회적·경제적 폭력에 대한 조사와 방지책도 반드시 마련돼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개인종목 선수이자 코치로 활동하고 있는 A씨는 16일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체육계에는 선수 겸 코치에게 근로자로서의 정당한 대우나 임금을 주지 않는 ‘경제적 폭행’이 만연해 있다”고 하소연했다.
A씨는 같은 종목 선배인 B씨가 운영하는 학원에서 수년간 코치로 일했는데, 지난해 갑작스런 해고 통보를 받았다. 학부모들이 학원에 불만을 제기하는데 중간에서 제대로 관리를 하지 못했다는 이유였다. B씨는 “네가 원생들 빼가려고 학부모를 선동한 것 아니냐”며 몰아세우기도 했다. A씨는 이 학원에서 4년 넘게 일했는데 돌아온 것은 “4대 보험도 가입하지 않았고, 퇴직금도 없다”는 B씨의 일방적 해고 통보 뿐이었다.
A씨는 B씨로부터 ‘사회적 폭행’도 당했다. A씨가 학원을 그만두자 B씨는 “A의 여자관계가 문란하고, 내가 실제 여자랑 이상한 짓 하는 걸 봤다”고 소문을 낸 것이다. 이 때문인지 다른 학원으로 이직하려던 A씨의 시도는 번번이 좌절됐다.
A씨는 최근 B씨를 명예훼손 및 허위사실 유포 혐의로 고소했지만 이내 취하했다. A씨는 “체육계에서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은 기업의 스폰서도 받고, 경영자와도 잘 알고 발이 넓다”며 “체육계 넘어까지 영향력을 발휘하는 사람을 상대로 문제를 제기를 하는 게 쉽지 않다”고 호소했다. 이어 “괜히 시끄러운 일에 연루되면 나만 손해 볼 것 같아 그냥 덮기로 했다”며 한숨을 쉬었다.
‘체육계 권력자’가 두려워 부당한 대우에도 제대로 항의할 수 없는 체육인도 적지 않다. 한 프로축구단 선수 C씨는 선배의 폭언과 폭행에 시달리다 구단에 정신적 고통을 호소했지만 구단은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고 한다. 견디다 못한 C씨가 정식으로 소송을 진행하려 하자 그제서야 구단주가 나서 사과를 했다. 하지만 구단주는 “우리 사과를 받지 않고, 계속 문제를 제기하면 네 미래는 없어진다”며 그를 압박하기도 했다. 결국 C씨는 구단과 동료부터 가해지는 무언의 압력에 구단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
김진우 법무법인 주원 변호사는 “스포츠 관련 소송을 진행하다 보면 물리적 폭행 못지않게 사회·경제적 폭행이 매우 심각하다는 걸 깨닫게 된다”며 “상명하복·수직적 관계가 문제를 만들고 폐쇄적 문화가 이를 은폐한다”고 지적했다.
김 변호사는 “스포츠관련 소송 상담 중 보통 30~40%는 갑작스레 보류한다”며 “직접적으로 회유나 협박을 받거나 체육계에서 낙인·퇴출이 두려워 자발적으로 취하하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번 논란을 계기로 피해자들이 자신들의 피해 사실을 외부에 알릴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강보현 기자 bob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