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유정 의붓아들 살해 혐의 인정 안되면 ‘영구미제’로”

입력 2020-07-16 16:58
항소심서도 무기징역 선고받은 고유정. 연합뉴스

전남편을 잔혹하게 살해해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고유정(37)이 의붓아들 살해 혐의에 대해서는 항소심에서도 무죄 판결을 받아 그 배경에 이목이 쏠린다.

광주고법 제주재판부 형사1부(부장판사 재판장 왕정옥)는 15일 제주지법 201호에서 열린 항소심 선고공판에서 살인과 사체손괴·은닉 혐의로 구속기소된 고유정에게 1심과 같은 무기징역을 선고하면서 의붓아들 살해혐의는 무죄로 판단했다.

재판부는 “직접증거 없이 간접증거만으로 살인죄를 인정할 수 있을지가 문제가 된 이 사건에서는 범행 동기, 범행수단의 선택, 범행에 이르는 과정, 범행 전후 피고인의 태도 등 여러 간접사실로 봐 피고인이 범행한 것으로 보기에 충분할 만큼 압도적으로 우월한 증명이 있는지 신중하게 검토해야 한다”고 밝혔다.

앞서 검찰은 “고유정이 지난해 3월 2일 오전 4~6시쯤 충북 자택에서 잠을 자던 네 살 의붓아들의 등 뒤로 올라타 손으로 피해자의 얼굴이 침대 정면에 파묻히게 머리 방향을 돌리고 뒤통수 부위를 10분 가량 강하게 눌러 살해했다”고 기소했다.

검찰 측은 의도치 않게 다리 등에 의해 눌려 죽음을 당하는 포압사 가능성이 낮다는 법의학자들의 의견과 이 사건 전후 고유정의 증거 인멸 행위를 비롯한 의심스러운 행적 등 간접사실들을 종합해 고유정이 의붓아들을 고의 살해했다고 주장했다.

재판부는 검찰이 제시한 간접 증거의 증명력을 일일이 검토한 결과, 제3자의 출입이 없던 자택에서 사망한 의붓아들의 사인이 질식사라는 법의학자들의 공통된 의견에 따라 ‘포압사’ 또는 고유정이나 현남편의 고의적 행위에 의해 질식사가 발생했을 것으로 판단했다.

재판부는 의붓아들이 현남편의 신체에 눌려 질식사했을 가능성이 매우 낮다는 법의학자들의 의견을 인정하면서도 “다른 여러 사정이 함께 뒷받침되지 않는 한 감정 결과나 법의학자들의 의견만을 근거로 바로 고유정이 의붓아들을 살해했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고 봤다.

재판부는 또 법의학자들의 의견을 종합한 결과 의붓아들의 사망시각에 대해 정확한 추정이 어렵고, 그 시각 고유정이 깨어 있었다고 검찰 측이 제시한 인터넷 검색 기록도 잘못된 것이어서 이를 바탕으로 검찰이 내세운 정황이 살해 혐의를 입증할 증거가 되지 못한다고 결론지었다.

현남편에게 수면제를 먹이고 범행을 했다는 검찰 주장에 대해서도 “수면제 복용 시기가 모발 채취일부터 약 4.5개월 이전까지의 기간으로 대략 추정되었을 뿐이어서 고유정이 수면제 가루가 섞인 차를 마시게 한 사실을 인정할 수 있는 근거로 삼기에 부족하다”고 봤다.

재판부는 “고유정에게 2007년 벌금형 선고 이후 범죄전력이 없는 점과 고유정에게 의붓아들을 살해하고 그 누명을 씌울 만큼 심리적, 정서적 위험 요인이 있었다는 점을 뒷받침하는 특별한 사정도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이어 “살해할 만한 뚜렷한 범행동기가 인정되지 않는 이상 고유정이 현남편에게 적개심을 표현하는 문자 메시지를 보내거나 메모를 작성한 사실만으로는 고유정이 의붓아들을 살해했다는 사실을 추론할 수는 없다”며 고유정의 손을 들어줬다.

이 사건이 대법원으로 갈 경우 고유정에게 의붓아들 살해 혐의가 인정될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다는 게 법조계의 중론이다. 대법원 상고심은 법정 변론 없이 검찰과 피의자 측이 2심까지 제출한 증거와 증언을 담은 서류만으로 법리적 쟁점을 검토해 법률이 제대로 적용됐는지 만을 보기 때문이다.

이번 사건이 이른바 ‘밀실살인’에 해당해 고유정의 고의 살해 또는 현남편의 과실치사 두 가지 경우의 수밖에 없음에도 1·2심 재판부는 결과적으로 ‘포압사’와 ‘살인’ 가운데 명확한 판단을 내리지 않았다. 대법원이 항소심의 결과를 뒤집지 않을 경우 의붓아들 살해 사건은 가해자를 밝히지 못한 채 영구미제가 될 전망이다.

현남편 측의 이정도 변호사는 “대법원 재판이 ‘사실심’이 아니라 ‘법률심’의 특성을 갖기 때문에 항소심 판결에 명확하게 법리오해 부분이 없다면 쉽게 재판 결과가 바뀌진 않을 것 같다”면서 “법리오해 측면에서 대법원 역시 0에 가까운 가능성을 배제하지 못하는 우를 범할 것이 아니라 새로운 법리를 만들어서라도 실체적 진실(가해자)을 밝혀야 할 것”이라고 16일 연합뉴스에 말했다.

권남영 기자 kwonn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