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e스포츠 표준계약서안 공개… 독소 조항 대수술

입력 2020-07-16 17:53

정부가 e스포츠 업계에 보급할 표준계약서를 13일 행정예고한 것이 16일 확인됐다. 지난해 말 이른바 ‘그리핀 사건’ 당시 불거진 각종 불공정 문제를 집중 개선한 것이 눈에 띈다. 다만 업계 특수성을 고려한 보완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있다.

지난해 12월 본보는 한국e스포츠협회가 비밀리에 배포하는 표준계약서를 입수·분석해 업계에 불공정 계약 문제가 만연하게 퍼져 있음을 보도했다.(본보 2019년12월2일 8면 보도) 불공정 표준계약서는 그리핀 사건과 맞물려 팬들의 분노를 자아냈다. 해당 사건에 대한 청와대 국민청원이 20만을 넘길 정도로 e스포츠 업계 개혁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터져나왔다. 이후 e스포츠 업계 체질 개선에 정부와 국회, 업계가 뜻을 모으며 e스포츠 표준계약서 연구는 탄력을 받았다. 지난 5월 7일 박양우 문체부 장관은 ‘게임산업 진흥 종합계획’을 발표하면서 “e스포츠 선수를 보호하고 공정한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올해 안에 표준계약서를 마련해 보급하고 선수등록제를 시행하겠다”고 공언했다. 같은 달 15일엔 라이엇 게임즈 코리아가 국내 ‘리그 오브 레전드(LoL)’ 프로 대회인 ‘LoL 챔피언스 코리아(LCK)’ 표준계약서를 발표하며 여름부터 해당 계약서를 의무화하겠다고 공지했다. 닷새 뒤 열린 20대 국회 마지막 본회의에서는 이동섭 전 의원이 대표 발의한 ‘e스포츠표준계약서법’이 통과돼 e스포츠 표준계약서의 법적 근거가 마련됐다.

이번에 공개된 e스포츠 표준계약서 정부안은 프로 선수와 육성군 선수, 청소년 선수로 계약사항이 세분화되어있다. 주무부처인 문체부는 내달 3일까지 국민 의견을 수렴하고 이를 바탕으로 재정비해 오는 9월 10일 본격적으로 표준계약서 보급을 시행한다.


정부안의 면면을 살펴보면 지난해 말 본보에서 지적한 ‘노예 계약’ 강요 조항이 대부분 수정·보완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눈에 띄는 건 제14조 ‘권리 등의 양도’다. 지난해 밝혀진 기존 표준계약서에서는 게임단이 선수 동의 없이 선수를 마음대로 이적시킬 수 있는 독소 조항이 있었다. 정부안에서는 ‘게임단은 권리 등의 양도가 발생하기 이전에 선수에게 해당 사실을 고지하고 선수의 서면동의를 얻은 후’라는 표현이 삽입됐다. 이적 후 계약 내용을 변경할 수 없게 한 조항 또한 정부안에서 삭제됐다. 상금 분배의 경우 종목사나 대회주최자가 정한 기준을 따르거나 사전 합의된 비율에 따라 금원을 선수에게 분배하도록 했다. 선수 초상권 등에 관한 상업권은 계약기간 종료 후 선수에게 돌아가도록 의무화했고, 선수의 의사에 반하는 불필요한 비용 부담도 하지 못하게 했다. 이 외에도 대부분의 조항에 게임단과 선수의 서면합의를 중요한 원칙으로 명시하며 게임단이 일방적으로 선수에게 위력을 행사할 수 없게 예방책을 마련했다.

e스포츠 산업의 특수성을 고려한 보완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있다. 한국법조인협회 e스포츠연구회 소속 윤현석 변호사는 “지난해 문제가 된 조항들을 상당부분 신경쓴 것으로 보인다”면서도 “e스포츠는 대부분 선수들이 어린 나이에 짧은 기간 활동을 한다. 군복무도 대부분 하지 않은 상태다. 유망주들은 계약기간이 길어지면 족쇄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에 계약기간 상한선을 문구로 추가하고, 군복무 시 병역 기간에 대한 보수 및 계약기간 연장 여부 등도 명시화할 필요가 있다”고 평가했다.

이번 e스포츠 표준계약서 연구를 맡은 정부의 관계자는 “현재 공개된 표준계약서안은 게임단과 선수의 의무와 권리에 대한 최소한의 내용을 담은 것”이라면서 “확정안이 아니다. 각계 의견을 수렴해 보완할 계획이다”고 전했다.

이다니엘 기자 dn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