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호분의 아이들 세상] 소시오 패스 성향은 유전?

입력 2020-07-16 16:28

H는 초등학교 5학년 남자 아이다. 친구들에게 자주 폭력성을 보인다. 또래보다 조숙하여 친구들이 따르기도 했지만, H는 친구들을 이용하거나 심부름을 시키고 괴롭히기도 한다. 선생님이나 부모님 앞에선 공격적인 모습을 보이지 않고 공손하지만, 집안일을 도와주시는 가사도우미에겐 ‘짤라버린다’는 등 막말과 욕설을 하곤 했다. 언변이 좋아 잘못을 했을 때도 잘 둘러대고 합리화하여 위기를 넘기거나 친구들에게 누명을 씌우기도 한다.

H는 어려서부터 하고 싶은 것을 자제시키면 참지 못했다.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당장 가져야 했다. 그것을 저지하면 저항을 하는데 당해 낼 사람은 아빠뿐이었다. 아빠는 아이가 떼를 쓰면 화를 참지 못하고 아이를 심하게 때리곤 했다. 이런 일이 반복되자 아이는 아빠 앞에선 부리지 못하는 생떼를 엄마 앞에서 더 심하게 부렸다. 집밖에서 친구들을 괴롭히고 규칙을 어기는 행동을 자주 해 엄마는 학교에 자주 불려 가곤 했다. 하지만 엄마는 아빠에게는 이런 사실을 말할 수 없었다. 아빠가 이런 사실을 알면 불같이 화를 낼 것이 뻔하기 때문이었다. 이렇게 아빠의 폭력 앞에 엄마와 아이의 공모는 이어져 왔다.

H의 아빠는 전문직에 종사하는 사람으로 사회적으로는 인정받는 사람이었지만 충동적이고 폭력적이었다. 아내에게는 학대를 일삼았다. 단지 ‘아내의 행동이 너무 답답하고 고리타분하다’는 이유에서였다. 아빠는 사회적인 규칙 뿐 아니라 법도 거스르면서 돈을 벌고 그렇게 성공을 했다. 그런 자신을 정당화했다.

아빠는 요즘 사회면에 자주 등장하는 소시오 패스 (정신의학적으로 반사회적 인격 장애)가 의심되는 사람이다. 소시오 패스는 범죄자에게만 해당하는 것은 아니다. 이들은 사회적인 규칙이나 규범에 대해서 대수롭지 않게 여겨 타인의 자유와 권리에 대해서는 무관심한 반면,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모습을 보인다. H의 아빠처럼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람들 중에도 자신의 성공을 위해 남을 이용하는 것에 거리낌이 없는 소시오패스 성향을 보이는 사람이 많다.

H는 아빠와 여러가지 면에서 닮았다. 충동적인 성향은 아마 유전적으로 물려받은 듯하다. 다른 사람의 감정, 고통을 공감하지 못하고 남을 괴롭히고 속이며 거짓말하는 것은 부모의 불화나 불안정한 가정환경에서 습득이 된 듯하다. 하지만 아직은 어리기에 소시오패스(반사회적 인격 장애)로 진행되는 것은 예방 할 수 있다.

우선 욕구나 화를 참지 못하는 충동성은 생물학적으로, 즉 유전적으로 타고난 면이 있으므로 약물치료를 하여 완화시켜 줄 필요가 있다. 이외에 정서적 환경의 변화가 필수적이다. H는 아빠에게 과도한 처벌과 학대를 받았다 느낀다. 야단을 맞을 때 자신의 잘못을 반성하기 보다는 억울함과 분노를 키워 왔다. 그래서 ‘사회적 규범, 권위’에 반감이 커졌다. 엄마와 자신을 학대하는 아빠의 힘과 권력에 반감을 느끼면서도 동시에 강한 자를 동일시해 아빠를 닮아갔던 거다. 남편의 학대로 위축되고 우울한 엄마는 H의 감정을 읽어줄 만한 심리적 에너지가 없었다. 때문에 H는 남을 지배하면서 자신의 힘을 확인할 할 뿐, 다른 사람의 감정과 고통은 알아차릴 수 없었던 거다.

H가 느끼는 아빠에 대한 분노와 억울함을 누군가 알아주어야 한다. 엄마를 대신해 H의 감정을 공감해 줄 때 H도 남을 공감할 수 있고, 괴롭힘을 중단 할 수 있게 된다.

이호분(연세누리 정신과 원장, 소아청소년 정신과 전문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