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은행 17곳에 대출 요청해보니… 흑인, 백인보다 금융지원 어려워

입력 2020-07-17 05:00
미국 뉴욕 밸리스트림에서 13일(현지시간) 인종차별 철폐를 요구하는 시위대가 '흑인의 목숨도 중요하다'라고 쓰인 피켓을 들고 행진하고 있다. AP 연합뉴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미국 경제가 흔들리고 있는 가운데 백인 자영업자보다 흑인 자영업자가 정부의 금융지원을 받기가 어렵다는 실험 결과가 나왔다.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15일(현지시간) 한 비영리단체와 대학 연구진이 흑인과 백인 ‘미스터리 쇼퍼’를 시중 은행에 보내 중소기업 고용 유지를 위한 급여보호프로그램(PPP)을 신청했을 때 백인에게 은행이 더 쉽게 금융지원을 승인했다고 보도했다.

미스터리 쇼퍼는 손님으로 가장해 매장을 방문해 서비스와 분위기 등을 평가하는 사람을 말한다.

미국 지역사회재투자연합회(National Community Reinvestment Coalition)은 지난 4월 말부터 5월 말까지 1개월 간 유타대, 뉴저지대 연구팀과 함께 흑인과 백인 한 쌍으로 구성된 미스터리 쇼퍼를 워싱턴 소재 17개 은행에 보내 실험했다.

연구팀은 신용 상태와 자산이 같은 수준인 흑인과 백인을 같은 은행에 보내 ‘두 고객의 차이점은 인종밖에 없다’는 사실이 명백하도록 했다. 심지어 연구팀은 흑인 지원자의 경제 상황을 백인보다 유리하게 설정했다.

연구는 은행이 고객에게 얼마나 더 열심히 대출을 권유하는지, 어떤 종류의 프로그램을 권유하는지, 어떤 정보를 요구하는지 등이 인종과 성별에 따라 달라진다는 점을 드러내고 말았다. 흑인들은 PPP가 아닌 다른 상품을 제공받기도 하고, 백인보다 친절한 응대를 받지도 못했다.

연구팀에 따르면 은행 직원들이 흑인 고객보다 백인 고객에겐 ‘대출 받을 자격이 된다’는 말을 더 자주 했고, 흑인이든 백인이든 여성 고객보다 남성 고객에게 더 대출을 권유했다. 실험에 참여한 사람 중 흑인 여성은 자격 조건을 증명하는 서류를 가지고 있었음에도 단 한 명도 대출 신청을 권유받지 못했다.

흑인인 경우 신청하려던 것과는 다른 대출 상품을 권유받기도 했다. 또 백인 고객은 PPP뿐만 아니라 10만달러(약 1억2000만원)의 추가 대출을 안내받았지만 흑인 고객은 추가 대출을 안내받진 않았다.

연구팀은 “은행이 흑인과 백인을 이처럼 다르게 처우하면 소수 사회의 자영업자들에게 의욕 상실과 허탈감을 안겨주기 때문에 더욱 문제가 된다”고 우려했다.

PPP는 미국의 경기부양책 중 하나로, 코로나19로 급여지급 능력을 상실한 중소기업이 고용을 유지하도록 하기 위해 정부가 세금을 투입해 급여를 지원하는 것이다. 직원 500명 이하 중소기업에 최대 1000만 달러(약 119억원)을 무담보로 대출해주고 일정 기간 직원 고용을 유지하면 대출 상환을 면제해주는 형식이다.

NYT는 “PPP 프로그램을 비판하는 사람들은 흑인들이 신용과 자본을 얻기 위해 고군분투해왔던 금융 체계의 역사적 불평등을 영원히 지속지킬 것이라는 점을 지적해왔다”고 전했다.

임세정 기자 fish813@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