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부차기까지 이어지는 진땀 승부 끝에 ‘독수리’가 5년 만에 만난 ‘황새’를 이겼다. 최용수 감독이 이끄는 FC 서울이 맞수 황선홍 감독의 대전 하나시티즌을 만나 피 말리는 연장 혈투 끝에 FA컵 8강에 진출했다.
서울은 15일 대전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2020 하나은행 FA컵 16강전 경기에서 전반 일찍 대전 바이오에게 프리킥 선제골을 내줬으나 후반 박주영이 헤딩 동점골을 넣은 데 이어 승부차기 승부에서 마지막 키커로 나선 박주영의 마무리로 진땀승을 거뒀다.
이번 경기는 일찌감치 양 감독의 사이, 또 구단과의 관계 때문에 주목을 받았다. 1990년대 말의 대표적 공격수인 둘은 서로가 대표팀 포지션 경쟁자이자 동료로 월드컵 예선·본선 등에서 희비가 엇갈렸다. 감독으로서도 최용수 감독의 후임으로 황선홍 감독이 서울을 맡았다가 좋지 않을 결말을 맞았고, 이후 그 자리를 다시 최 감독이 메우는 등 묘한 인연이다.
이날 경기는 시작부터 예상 못한 방향으로 흘렀다. 전반 4분 만에 공을 몰고 서울 골문 방향으로 공을 몰고 돌진하던 대전 김세윤이 페널티박스 왼쪽 앞에서 수비에 걸려 넘어지며 파울을 얻어냈다. 프리킥 기회에서 바이오가 서울 유상훈 골키퍼가 버티고 있던 골문 오른쪽으로 낮고 빠른 슈팅을 시도, 이를 미처 예상 못 한 골키퍼 옆 골망으로 공이 빨려 들어갔다.
불의의 일격을 당한 서울은 양 측면을 고루 써가며 대전을 압박해나가기 시작했다. 전방에서 알리바예프가 패스를 양옆으로 벌리는 한편 중거리 슛을 기회마다 때렸고, 스리백의 왼쪽 수비수로 나온 오스마르가 부지런하게 전방으로 오버래핑하거나 공간에 크게 공을 띄워 찌르는 경우가 잦았다. 왼쪽의 고광민과 오른쪽의 김진야도 부지런하게 측면을 오갔다.
그러나 서울은 마지막 순간 세밀한 마무리가 아쉬웠다. 전반 알리바예프의 중거리가 골대 옆을 아슬아슬하게 스쳐 지나간 데 이어 20분에도 크로스를 활용한 결정적 슈팅 기회가 연속해서 찾아왔으나 김근배 대전 골키퍼의 선방에 막혔다. 김진야, 고요한도 연속해서 중거리 슛을 시도했지만 골대를 크게 빗나갔다. 대전도 단순히 뒤로 물러서기만 하지 않고 ‘대전 루니’ 안드레를 후반 투입해 기회를 엿봤다.
후반에 박주영과 윤종규를 교체로 넣은 서울은 다시 절호의 기회를 맞았다. 후반 30분 조영욱이 왼쪽으로 자리를 옮긴 김진야의 패스를 받고 상대 골문 가까이 돌진하다가 대전 수비 이지솔에게 뒤에서 밀려 넘어졌다. 이지솔이 너무 가혹한 판정이라며 항의했으나 VAR 판독이 없는 FA컵의 특성상 그대로 경기가 진행됐다. 그러나 키커로 나선 박주영의 디딤발이 잔디에 미끄러지며 공을 골문 위로 크게 넘어갔다.
박주영은 그대로 침묵하지 않았다. 후반 36분 고광민이 왼쪽 측면 멀리에서 때린 얼리크로스를 골문으로 쇄도하다가 특유의 수비보다 한참 타점 높게 뛰어올라 박아넣는 헤딩 슛으로 상대 왼쪽 골망에 공을 넣었다. 골키퍼가 반응하기도 어려웠던 골이었다.
그러나 동점이 된 뒤 서울 수비 김남춘이 경고누적으로 퇴장당하면서 대전 역시 상대 빈틈을 찾을 실마리가 생겼다. 후반 추가시간 서울 공격수 조영욱이 상대 골문 바로 앞 오른 측면에서 수비로부터 공을 빼앗아 페널티지역 정면에 연결, 골키퍼와 맞서는 찬스를 만들어줬지만 공을 받은 한찬희가 다소 허무하게 실축하면서 경기는 연장에 접어들었다.
연장 들어서는 1명이 많은 대전이 흐름을 주도했으나 위협적인 기회가 좀체 나오지 않았다. 연장 후반 5분 교체투입된 대전 최재현이 페널티박스 안 골대 정면에서 섬세한 터치로 서울 수비진을 젖히고 골키퍼와 일대일 상황을 만들어 슈팅을 했으나 서울 유상훈 골키퍼가 막아냈다. 유상훈은 연장 후반 12분에도 대전 정희웅이 골대 정면에서 공을 받아 감아차기 슈팅한 것을 손을 뻗어 튕겨냈다.
혈투 끝에 진입한 승부차기도 막상막하였다. 서울의 첫 키커 고요한의 슈팅을 김근배 골키퍼가 막아낸 데 이어 대전 박진섭의 슈팅도 유상훈 골키퍼에 막혔다. 그러나 대전의 4번째 키커로 나선 황재훈이 왼쪽 골포스트에 공을 맞히면서 실축, 이어 서울의 마지막 키커 박주영이 킥을 성공하면서 서울의 승리로 경기가 끝났다.
조효석 기자 promen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