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멕시코에 살던 만삭의 임신부 A씨가 남편 없이 홀로 입국했다. 출산이 임박했던 A씨는 남미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이 확산하자 멕시코에서 안전한 분만이 어렵다고 판단, 경기도 부천에 있는 친정엄마 집에 머물며 한국에서 출산하기로 결정했다.
해외입국자에 대한 방역지침에 따라 14일간 자가격리에 들어간 A씨는 격리해제 3일을 남기고 진통을 느꼈다. A씨는 전담공무원에게 연락했고, 보건소에서 급히 파견한 구급차를 타고 인근 대학병원으로 이송됐다. 부천시청 관계자는 15일 “자가격리자는 일반인이 있는 분만실에 들어갈 수 없어 A씨는 음압병실에서 출산했다”며 “평소 병실 등을 확보해 놓은 터라 즉각 대응이 가능했다”고 말했다.
코로나19 유행 국면에서 확진자 못지않게 중요하게 관리되는 사람들이 자가격리자다. 확진자와 접촉하며 감염됐을 가능성이 있어 이들의 지역사회 활동을 차단하는 게 방역당국의 주요 업무 중 하나가 됐다. 자가격리 이탈자에게 채운 ‘안심밴드’는 사우디아라비아에 10만개 수출되는 등 K-방역의 성과로도 자리 잡았다.
자가격리는 부모의 임종을 지키지 못하는 안타까운 상황도 연출한다. 어머니가 위독하다는 연락을 받은 아들 B씨는 지난 4월 초 캐나다에서 급하게 귀국했으나 방역지침으로 인해 입국과 동시에 자가격리를 해야 했다. 박원순 전 서울시장 아들 주신씨의 경우 영국에서 입국하면서 자가격리 면제를 받아 아버지 장례를 치를 수 있었지만 B씨가 입국할 당시에는 해외공관 근무자에 한해서만 격리면제서가 발급됐다.
B씨는 조문객과 접촉하지 않을 뿐 아니라 방호복을 입고 어머니를 보내드리겠다고 했지만 장례식장이 협의해주지 않았다. 결국 집에 머물며 어머니를 떠나보낸 B씨는 격리를 끝낸 뒤 어머니를 모신 장소에 갈 수 있었다.
관리망이 허술한 틈을 타 범죄를 저지른 경우도 있다. 지난달 1일 한국에 들어온 필리핀 국적의 20대 여성 C씨는 자가격리 앱의 주소를 서울 강남구로 설정한 뒤 자신의 본래 거주지인 광주 서구로 이동했다.
자가격리 앱은 전담공무원의 아이디를 입력해야 하기 때문에 자동으로 지역이 바뀌지 않고 보건소끼리 인수인계 한 뒤 지역을 재등록하는 방식으로 설정돼 있다. 강남구 보건소가 C씨의 이동 사실을 서구 보건소에 알리지 않았고, 서구 보건소가 C씨에게 앱을 새로 깔아 주소지를 재등록하라고 했지만 C씨는 앱을 설치하지 않았다. 모텔을 전전하며 관리망 밖에 있던 C씨는 마약에 취해 차를 훔쳐 운전하다가 경찰에 붙잡혔다.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지난 14일 오후 6시 기준 자가격리자는 3만7005명으로 해외 입국자가 3만2015명, 국내 격리자가 4990명이다. 중앙사고수습본부는 15일 재난지원금 신청, 식당 방문 등의 사유로 2명이 무단이탈해 경찰에 고발됐다고 전했다. 현재까지 격리조치 및 집합금지 위반 등으로 총 1255명이 수사를 받았고 562명이 기소됐으며 이 중 10명은 구속됐다.
김영선 기자 ys8584@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