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적수사태 1년만에 ‘벌레 수돗물 사태’ 왜 이러나

입력 2020-07-15 16:04 수정 2020-07-15 16:23
인천시 관계자들이 15일 인천시청 중앙기자실에서 열린 기자간담회를 열고 있다. 인천시는 "활성탄(여과지)에서 민원이 발생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며 14일 71건, 15일 19건 등 지금끼지 101건의 유충 민원이 발생했다고 발표했다. 인천=정창교 기자



‘붉은 수돗물’ 사태가 발생한 지 1년여 만에 인천에서 또다시 ‘벌레 수돗물’ 사태가 전개돼 시민들의 불안감이 확산되고 있다.
15일 인천시에 따르면 지난 9일부터 14일까지 서구에서 23건이 신고된 데 이어 부평구와 계양구에서도 이날까지 14건이 추가 접수되는 등 모두 101건의 민원이 국민신문고 등에 접수됐다.
시와 관계기관은 현재까지도 조사결과 등을 볼 때 활성탄 여과지에서 발생한 깔따구 유충이 수도관을 통해 가정으로 이동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정수처리과정에서 0.8~1.2ppm농도의 염소를 투입하고 있어 곤충이 소멸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나. 일부 개체가 수용가까지 수도관을 타고 이동한 것으로 보고 있다.

공촌정수장과 연결된 배수지 8곳을 모니터링한 결과 배수지 2곳에서 유충이 발견됐다.

부평구 갈산동 저층아파트 6층에서 발견된 ‘벌레수돗물’을 확인한 부평정수사업소와 북부수도사업소 관계자는 “정수장에서는 활성탄 등을 확인했으나 벌레가 나오지 않았다”면서 “배수지에서 저수조없이 아파트로 연결되는 직수방식이어서 수도꼭지에 깔따구가 알을 낳았다가 한여름에 부화된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저층아파트 100여가구 중 민원이 제기된 6층 집에서만 ‘벌레수돗물’이 나왔다는 것이다.

그러나 부평구와 계양구에서는 6월부터 수돗물에서 깔따구가 나왔다는 신고도 들어오고 있어 근본적인 대책이 나와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국수자원공사 사장을 지낸 최계운 인천대 교수는 “깔따구는 팔당원수에서는 발견되지만 정수장에서는 발견되지 않기 때문에 문제가 되려면 같은 원수를 쓰는 서울과 경기도에서도 ‘깔따구’가 나와야 한다”고 주장했다.

전문가들은 “잔류 염소를 넣는 경우 벌레들이 내성이 생겨 유충이 발생할 수도 있다”며 “인천시상수도사업본부도 문제가 발생한뒤 염소투약농도를 높이고, 오존농도도 높여 살균하는 등 뒤늦게 대책을 마련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수돗물은 냄새가 나더라도 잔류염소 0.1ppm 이상을 넣어 벌레 등을 죽이기 때문에 이를 제대로만 지켰다면 문제될 것이 없다. ‘벌레 수돗물’ 사태가 잔류염소를 적게 넣어 발생했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강화도의 한 주민은 “신생아가 있는데 샤워기 필터에 붉은 수돗물과 함께 벌레가 기어다니고 있다”며 “벌레 나오는 물로 어떻게 갓난아기의 목욕을 시킬 수 있겠느냐”고 분통을 터뜨렸다.
영종도 주민들도 “아직도 아파트에서 ‘붉은 수돗물’이 나와 샤워기 흰색 필터가 황토색으로 변하고 있다”며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차기 시장선거때 다른 사람을 뽑겠다”고 입을 모았다.

‘적수사태’ 이후 맘카페의 영향력도 커졌다. ‘적수사태’를 경험한 이후 ‘벌레 수돗물’ 사태가 터지자 사진을 찍어 카페에 올리며 문제를 제기했다. 수돗물에서 유충이 발생했다는 민원은 지난 9일 서구 왕길동 모 빌라에서 처음 접수됐으나 맘카페에서 이슈를 제기한뒤 지난달부터 ‘벌레수돗물’이 나왔다는 신고전화가 부평구와 계양구에서 각 지역 수도사업소로 쇄도하고 있다는 것이다.
당용증 북부수도사업소장은 “지난해 적수사태 이후 긴장을 늦추지 않고 지난 9일 최초 신고 직후 박남춘 인천시장에게 보고하고 대책마련에 나서고 있다”면서도 “같은 팔당원수를 쓰는 정수장 업무가 서울 및 경기도와 다르지 않는데도 유독 인천에서만 ‘벌레수돗물’까지 등장해 곤혹스럽다”고 말했다.

시는 서구 왕길동·당하동·원당동·마전동 3만6000가구에 직접 음용을 자제하라고 당부했다. 인천시교육청도 14일부터 서구 관내 유치원과 초·중·고교 및 특수학교 39곳의 급식을 중단했다.
시는 한국수자원공사, 국립생물자원관 등과 함께 조사에 착수했으나 유충 발생 원인은 아직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다.

앞서 붉은 수돗물 사태는 지난해 5월 수계 전환 중 기존 관로 수압을 무리하게 높이다가 발생해 26만1000가구, 63만5000명이 적수 피해를 겪었다. 결국 박남춘 시장은 지난해 6월 기자회견을 통해 시민들에게 공식 사과하는 수모를 겪어야 했다.

인천시는 이날 오후 4시 공식 브리핑을 통해 “공촌정수장 여과지 1개 개체에서 유충이 확인됐다”며 “즉시 여과지 공정을 중단하고 표준공정으로 전환했다”고 발표했다. 인천시당국에서는 ‘벌레 수돗물’에 대한 매뉴얼은 아직까지 없다고 밝혔다. 공촌정수장이 아닌 부평정수장 등에서는 정수장에서 유충은 발생한 것은 없는 것으로 잠정결론이 나왔다.

인천=정창교 기자 jcgy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