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스팅 와중 한국의 심은경 배우가 일본에서 활동하고 있다는 이야길 듣고 섬광이 스쳤습니다. 처음 만난 심은경 배우는 유머에 달관한 어른 같기도 하고 순수한 어린아이 같기도 한 유일무이한 매력이 있었어요.”
22일 국내 개봉하는 영화 ‘블루 아워’의 하코타 유코 감독은 최근 국민일보와 진행한 서면 인터뷰에서 심은경의 첫인상을 이렇게 전했다. 지난 3월 초 후지이 마치히토 감독의 ‘신문기자’로 한국 배우 최초 일본 아카데미 최우수 여우주연상을 거머쥔 심은경은 보름 만에 이 영화로 다카사키 영화제 최우수 여우주연상을 받으며 국내외 영화 애호가들을 놀라게 한 바 있다. 하코타 감독은 “심은경 배우가 일본어를 한창 배우는 중이었음에도 대본 분석능력이 훌륭했다”고 떠올렸다.
2004년 데뷔해 ‘써니’(2011) ‘수상한 그녀’(2014) 등에서 활약한 심은경은 2017년 일본 매니지먼트사와 전속 계약을 맺고 작품성 뛰어난 현지 콘텐츠에 얼굴을 비추며 입지를 다졌다. CF감독 스나다(카호)가 자유로운 영혼을 지닌 친구 기요우라(심은경)와 여행을 떠나며 벌어지는 일들을 그린 ‘블루 아워’도 공개 직후 현지는 물론 해외 영화계에서 두루 호평받은 수작 중 하나다.
허위로 가득한 도시 생활에 “반쯤 죽은” 생활을 하던 스나다는 감추고 싶었던 “촌스러운” 고향에 가게 되면서 오히려 커다란 위로를 얻는다. CF감독 출신인 자신의 자전적 이야기를 영화에 투영한 하코타 감독은 “시골은 ‘살아있다는 것’을 체감할 수 있는 장소”라며 “등장인물들이 ‘날것’처럼 보이도록 했다. 투박한 일상을 ‘제트 코스터’처럼 일렁이는 리듬으로 그려냈다”고 자평했다. 하코타 감독은 이 영화로 상하이국제영화제 아시아신인부문 최우수감독상을 거머쥐었다.
여러 매력 중에서도 두드러지는 건 역시 심은경과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바닷마을 다이어리’로 친숙한 배우 카호의 앙상블이다. 특히 서사 흐름을 보면 자유로움의 상징인 기요우라 역할이 매우 큰데 의상과 대사 등 많은 캐릭터 특성이 심은경이 직접 낸 아이디어에서 비롯됐다. 하코타 감독은 “기요우라 의상인 흰 점퍼 슈트도 심은경 배우가 메일로 보내준 ‘어린왕자’ 이미지를 참고해 만들었다”며 “애드리브를 포함해 기요우라는 은경 배우와 상의해가며 만든 캐릭터”라고 전했다. 근래 극장가 ‘여풍’에도 힘을 보태는 극은 전통 가부장제 가족 안에서 공명하는 여성들의 이야기를 섬세한 시선으로 풀어낸다.
화면 너머로 청량한 시골 내음이 전해지는 이 영화는 놀랍게도 하코타 감독의 데뷔작이다. 시세이도, 닛산 등 대기업 광고를 만들던 그는 “보고 싶은 영화가 적어 직접 감독이 되기로 했다”고 한다. 러닝타임 내내 감각적인 시퀀스와 음악이 이어지는데 CF감독 경험을 살린 압축적이고 은유적인 장면들이 백미다. 칸 국제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받은 ‘어느 가족’ 제작진이 스태프로 참여했다.
하코타 감독은 문화예술의 교류가 경색된 한일관계를 푸는 실마리가 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한국 영화를 즐겨 본다는 하코타 감독은 “이창동, 홍상수 감독의 작품을 좋아한다. 특히 윤가은 감독의 ‘우리들’은 고마움에 스크린에 고개를 숙였을 정도로 최고의 영화 중 하나”라며 “사회 문제를 뛰어넘어 타인과 감정을 연결해준다는 게 영화의 특권”이라고 강조했다. 하코타 감독이 생각하는 코로나19 시대 영화가 해야 할 역할도 바로 ‘연결’이었다.
“바이러스로 타인과 거리를 두게 됐고 예술도 점점 배제되고 있어요. 사소한 이야기의 소중함을 다시 한번 느끼는 나날들입니다. 서로를 이어주는 멋진 영화와의 만남을 포기하지 마세요.”
강경루 기자 ro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