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일 오전 고(故) 백선엽 장군의 안장식을 앞둔 국립대전현충원은 백 장군의 현충원 안장을 반대하는 시민단체, 찬성하는 단체 측이 팽팽히 맞서며 긴장에 휩싸였다.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경찰 550여명이 현장에 투입됐지만, 감정이 격화된 찬·반 양측 지지자들과 경찰이 한동안 대치하는 소동이 벌어지기도 했다.
한국전쟁전후민간인희생자전국유족회·열린군대를위한시민연대는 이날 오전 9시30분 대전현충원 정문 진입로에서 백 장군의 대전현충원 안장 반대 시민대회를 개최했다.
이들은 백 장군이 한국전쟁 당시 민간인 학살에 대한 책임을 외면했다며 현충원에 안장돼서는 안된다는 입장을 밝혔다.
신재욱 열린군대를위한시민연대 상임활동가는 “백선엽은 일제강점기 일본 군대인 간도특설대에서 복무하며 독립군들을 탄압·억압하는 반민족적 행동에 앞장섰다”며 “한국전쟁 전 5사단장 시절에는 전남 광양에서, 북진을 하던 1사단 시절에는 충북에서, 1951년 말 빨치산 토벌작전에서 민간인 학살을 자행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럼에도 백선엽은 참혹한 민간인 학살과 관련해 사죄도, 반성도, 그 어떤 책임도 지지 않았다”며 “조국의 독립을 방해한 인물, 자국 국민을 학살한 책임이 있는 인물이 어떻게 현충원에 묻힐 수 있단 말인가. 백선엽의 현충원 안장을 즉각 중단하고 전쟁범죄 가해자로서의 책임을 규명하라”고 규탄했다.
이어서 10시부터 집회를 가진 광복회 대전지부와 민족문제연구소 대전지부는 백 장군의 친일행적을 강하게 규탄하며 현충원 안장에 반대했다.
광복회 대전지부는 “백선엽은 1943년부터 2년 간 간도특설대 만주국군 장교로 근무한 경력이 있으며, 2009년 친일반민족 행위자 명단에 오른 자”라며 “간도 특설대는 독립군 토벌대로서 그 잔악성이 높았다고 한다”고 했다.
또 “이 같은 부대의 장교로 활동하던 자가 건국훈장 수훈자 곁에 버젓이 안식한다는 것은 ‘과거를 잊는 민족이 되자’는 것과 같다”며 “광복회는 친일반민족행위자 백선엽의 안장을 반대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밝히며, 이곳에 묻힌 친일행위자들도 어서 파묘해 순국선열이 편히 잠들길 바란다”고 했다.
이들은 백 장군의 대전현충원 안장을 결정한 국가보훈처에도 날선 비판을 가했다.
윤석경 광복회 대전지부장은 “애국지사를 학살한 인물이 국가보훈처의 결정으로 현충원에 오게 된 것 아닌가”라며 “반민족행위자의 묘소를 파묘하는 국립묘지법이 통과되면 어차피 다른 곳에 가야 할텐데, 굳이 대전현충원에 안장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들 단체가 자리를 잡은 진입로 맞은편에는 백 장군의 현충원 안장을 찬성하는 측이 집회를 가졌다.
우리공화당·재향군인회 등으로 구성된 찬성측 인파는 백 장군의 운구차량이 들어오기 약 1시간 전부터 진입로에 도열했다. “빨갱이는 북으로 가라” “북한으로 돌아가라”는 외침이 곳곳에서 나왔다.
이들은 백 장군을 반드시 현충원에 안장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일부 참석자는 백 장군이 대전현충원이 아닌 서울 동작구에 있는 서울현충원에 안장돼야 한다는 내용의 피켓을 들기도 했다.
자신의 신분을 밝히지 않은 한 찬성측 참석자는 “내가 오늘 안장식을 추모하려 (이곳에) 온 것은 백 장군이 자유민주주의 의지를 지켰다는 그 인연 하나로 온 것”이라며 “백 장군의 얼굴도 모르고, 그가 어디서 사는 지도 모르는 일반 시민이 여기에 왜 왔겠는가. 북한군의 침략에 무릎을 꿇었다면 지금이 없었기에 바로 여기 온 것이다”라고 했다.
이어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감정적인 부분은 제외하고, 그가 누구였든 영혼의 안식을 빌어주는 것이 도리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시간이 흐르며 분위기가 격화되자 일부 참가자와 경찰 간 몸싸움이 벌어지기도 했다. 안장 반대측 가까이에 세워둔 찬성측 차량의 시설물을 경찰이 제지하면서다.
격앙된 반응을 보이던 일부 참가자들은 곳곳에서 서로 언성을 높이며 말싸움을 벌이기도 했다.
팽팽하던 대치 상황은 오전 11시20분쯤 백 장군의 운구차량이 진입하며 다소 완화되기 시작했다. 운구차가 통과하고 시간이 흐르자 참가자들도 곧 해산하기 시작했다. 백 장군의 안장식은 대전현충원 장군2묘역에서 엄수됐다.
대전=글·사진 전희진 기자 heej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