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 대한민국 축구를 대표했던 공격수 출신 감독 둘이 FA컵 무대에서 맞붙는다. 구단과의 인연까지 겹쳐 한층 이야기가 풍성한 승부다.
‘독수리’ 최용수 감독이 이끄는 FC 서울과 ‘황새’ 황선홍 감독의 대전 하나시티즌은 15일 오후 7시 대전 홈구장인 대전월드컵경기장에서 2020 하나은행 FA컵 16강전 경기를 치른다. 앞서 대전은 세미프로인 춘천 시민축구단과 같은 K리그2 소속 안산 그리너스를 각각 꺾고 무난하게 16강 무대에 진출했다. 프로 최상위 리그인 K리그1 팀 자격으로 16강에 오른 서울은 이번 경기가 대회 첫 경기다.
두 감독의 인연은 주로 대표팀 무대 활약으로 설명된다. 90년대 말 김도훈 울산 현대 감독, 이상윤 해설위원 등과 함께 대한민국 대표팀의 대표적인 스트라이커로 활약했다. 최용수 감독은 비록 두 차례 월드컵 무대에서는 큰 활약을 하지 못했으나 1998년 프랑스 월드컵 예선에서 엄청난 활약으로 본선 진출의 1등 공신이 됐다.
당시 부상으로 대표팀에서 장기간 빠져있던 황선홍 감독은 복귀한 직후 펼쳐진 한일전에서 결승골을 넣으며 최용수-황선홍 투톱을 향한 기대치를 한껏 끌어올렸다. 그러나 월드컵 본선 직전 열린 중국과의 평가전에서 상대의 악의적인 태클로 중상을 입어 본선 활약이 좌절됐다.
4강 신화를 썼던 2002년 월드컵에서 두 감독은 함께 선수명단에 포함됐지만 이번에는 상황이 바뀌었다. 황선홍 감독은 첫 경기인 폴란드전부터 자신의 대표팀 경기 50번째 골을 터뜨리며 만개했다. 그러나 당시 최용수 감독은 미국과의 경기에서 결정적인 기회를 놓친 뒤 선발에 들지 못했다.
감독으로서 두 사람의 인연도 묘하다. 최용수 감독은 2011년까지 서울에서 코치 생활을 하다 당시 황보관 감독이 성적 부진으로 사퇴하면서 팀을 맡았다. 전술적으로 유연하고 실리적인 축구를 구사하며 서울의 전성기를 이끌었다. 유머 넘치고 때로 강단 있는 모습으로 선수단을 장악하는 면모는 팬들에게도 널리 알려진 장점이다. 2012년 리그 우승과 2015년 FA컵 우승을 일궈냈고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 준우승이라는 업적을 쌓았다.
황선홍 감독은 포항 스틸러스에서 2012년 FA컵을 우승한 데 이어 2013년 외국인 선수 하나 없이 리그와 FA컵 우승으로 ‘더블(2관왕)’을 일궈내며 일약 리그를 대표하는 명장으로 발돋움했다. 포항 구단의 재정적 한계에도 불구하고 세련되면서도 조직적인 축구를 펼쳤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후 중국에 진출했다가 2016년, 역시 중국에 진출한 최용수 감독의 후임으로 귀환해 서울의 사령탑에 앉았다.
그러나 황선홍 감독과 서울의 동거는 결국 좋지 않게 끝났다. 첫 시즌 전북 현대를 누르고 극적인 우승을 차지했으나 이후 선수단의 불만 누적, 구단의 투자 삭감 등 여러 요인이 겹치면서 전력도 흔들렸고 2018년에는 팀이 강등 위기까지 겪으며 결국 중도 경질됐다.
이를 이어받은 건 다름 아닌 중국에서 돌아온 최용수 감독이었다. 최 감독은 팀을 추슬러 K리그1에 잔류시켰고 지난해에도 온갖 악재 속에 리그 3위와 챔피언스리그 진출이라는 준수한 성과를 거뒀다. 전임 황선홍 감독의 좋지 않은 결말과 최 감독의 호성적이 비교될 수밖에 없었다.
올 시즌에 황 감독은 K리그2에서 대대적 투자를 감행한 대전의 사령탑으로 부임, 현재 리그 2위로 승격을 노리고 있다. 최 감독은 시즌 초부터 구단을 둘러싼 외부악재가 터지고 전력 누수까지 겪으며 K리그1 10위라는, 명성에 걸맞지 않은 성적을 거두고 있는 상태다. 두 사람의 맞대결은 지난 2015년 11월 29일 황 감독의 포항이 서울에 2대 1 승리를 거둔 게 마지막이었다.
조효석 기자 promen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