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은 목사
서울 마라나타 교회
본문 : 요한복음 18장 28~19장 16절
빌라도는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의 현실적인 총책임자였습니다.
모든 결정은 빌라도의 최종 승인하에 이루어지는 일들이었습니다.
빌라도는 예수님에게서 아무 죄도 찾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은 빌라도에게 자신이 왕이신 것을 밝히셨습니다.
왕은 진리에 대해서 증언 하기 위해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진리를 알려면 왕의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진리가 무엇인가요? 진리는 많은 사람들에게 ‘자신의 유익에 따라 선택하는 가장 좋은 길’로 오해 받고 있습니다.
빌라도에게는 자기 자리를 지키기 위해서 무고한 자에게 죄를 씌우는 것이 진리였습니다.
빌라도는 결국 유대인들의 성화에 못 이겨서 예수님을 데려가서 채찍질을 했습니다.
당신에게 진리는 무엇입니까? 진리는 예수님의 말씀 안에서만 나오는 것인데 그 말씀이 없는 세상에는 당연히 진리가 없습니다.
진리가 없으니 자기의 생각대로 유익대로 그리고 죄와 악을 따라 행합니다. 힘없이 무력한 하나님의 아들은 포악하고 더러운 군인들의 손에서 유린 당하셨습니다.
악에게 내던져진 예수님의 몸은 온갖 수모와 수치로 너덜 너덜 해질 때 까지 다 짓밟히셨습니다. 이것이 악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처참한 광경을 보면 인간의 죄의 참상이 보입니다.
사람이 어디까지 잔인할 수 있는가?
죄에 대한 형벌을 이렇게 당할 정도로 인간의 죄가 무거운 것인가?
진리가 없는 세상이 얼마나 끔찍한지요..
하나님의 아들은 악에게 던져져서 한번도 저항 하지 않으시고 온전히 순종하시면서 묵묵히 죄에 대
한 댓가를 치르는 과정을 다 지나셨습니다.
그리고 불행하게도 빌라도는 현장에서 이 모든 책임을 맡았습니다.
예수님이 죄인이 아닌데 사형을 거세게 요구하는 무리들 앞에서 빌라도는 점점 초조해집니다.
게다가 그들이 사형을 요구하는 이유가 예수님이 스스로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하기 때문이라는 말을 듣고 더 두려워 지기 시작합니다.
선택의 위기 앞에서 초조한 빌라도는 예수님을 관정으로 다시 불러 들입니다.
빌라도는 예수님을 풀어줄 권한이나 십자가에 못박을 권한을 자기가 갖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 권세를 주신 분이 하나님이라고 하십니다.
진리가 빌라도를 옥조이고 숨막히게 합니다. 진리 앞에 서니 자기 위에 하나님이 계시는 것이 느껴질 것 같습니다.
예수님을 십자가형에 사형시키면 안될 것 같습니다. 진리가 빌라도의 양심을 건드리면서 그 영혼을 두렵게 합니다.
빌라도는 자기가 할 수 있는 권세를 써서 예수님을 놓으려고 힘썼습니다. 그때 항의하는 유대인들의 소란 속에서 빌라도를 더 두렵게 하는 한 마디의 말이 들려옵니다.
“이 사람을 놓으면 가이사의 충신이 아니니이다”
자기를 왕이라 하는 자는 가이사를 반역하는 것이지요. 이 말이 마치 진리처럼 다가옵니다.
“가이사 외에는 우리에게 왕이 없나이다”
결국 그 진리 같은 악 앞에서 빌라도는 더 이상 선택의 여지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에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도록 그들에게 넘겨 주니라 (요 19;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