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뭉갰나 누가 유출했나, 수사로 기우는 박원순 사건

입력 2020-07-14 17:31 수정 2020-07-14 17:58
한 시민이 13일 오후 경남 창녕군 고 박원순 서울시장 생가에서 유족들이 들고 나오는 박 시장 영정을 만지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박원순 전 서울시장은 영면에 들었지만 성추행 피해자 측은 두 가지 사안에 대한 진상규명이 필요하다고 호소하고 있다. 피해자가 서울시 내부에 성추행 피해를 호소했지만 조치가 이뤄지지 않았다는 것과 고소 사실이 박 전 시장에게 유출된 경위를 밝혀야 한다는 것이다. 법조계에서는 성추행 의혹 자체는 ‘공소권 없음’으로 종결되지만 두 의혹은 모두 수사가 가능하다고 본다.

시민단체 활빈단은 14일 고소사실 유출 의혹과 관련해 경찰과 청와대의 ‘성명불상 관계자’를 대검찰청에 고발했다. 서울시 관계자들도 강제추행 방조 혐의로 고발했다. 판사 출신의 한 변호사는 “원칙적으로는 주범이 사망해도 방조범은 고소인 진술에 근거해 수사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피해자 측은 시청 내부에 피해를 호소했지만 ‘시장은 그럴 사람이 아니다’라는 등의 반응이 나왔다고 주장한다. 통상 강제추행 방조는 추행 자리에 동석해 도운 경우 적용된다. 조직의 관리자가 추행 방조로 처벌받은 사례는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 다만 피해자가 상급자에게 추행 사실을 알렸지만 묵살 당했을 경우 직무유기 혐의가 적용될 가능성은 있다. 앞서 대법원은 교사의 학생 강제추행 사실을 보고받고도 묵살한 교장에 대해 직무유기 혐의를 유죄로 인정했었다.

수사와는 별개로 시청 차원의 진상조사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관계자들에 대한 징계 및 손해배상이 이뤄질 수 있기 때문이다. 박 전 시장은 과거 ‘서울대 우 조교 성희롱 사건’ 당시 피해자를 대리해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진행했었다. 법무법인 씨케이 최진녕 대표변호사는 “당시 국가 책임은 인정되지 않았지만 그간 여성인권에 많은 변화가 있었다”며 “서울시에 불법행위가 있다면 배상 책임을 져야 하는 사안”이라고 말했다. 서울시는 공식 창구로는 피해 사항이 접수되지 않았다는 입장이다.

추행 의혹과 별개로 고소 사실 유출 과정도 밝혀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경찰은 청와대에 박 전 시장의 피고소 사실을 보고했지만 박 전 시장에게 유출한 적은 없다고 주장한다. 청와대도 고소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는 입장이다. 피고소인에게 고소 사실이 흘러갔다면 공무상 비밀누설에 해당할 수 있다. 고소인의 주장 및 어떤 증거가 확보됐는지 유출됐을 가능성도 있다. 이는 수사기관이 본격적인 수사에 나서기 이전 피고소인이 회유·협박 및 증거인멸에 나설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고법 부장판사 출신의 한 변호사는 “중대범죄에 해당할 수 있는 사안”이라고 말했다.

경찰은 박 전 시장의 휴대전화에 대한 디지털포렌식 작업을 진행할 계획이다. 서울지방경찰청 관계자는 “사회적 관심이 집중된 사건인 만큼 사망 경위를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박 전 시장이 쓰던 휴대전화는 신형 아이폰이다. 포렌식 과정에서 고소 사실 유출 경로가 드러날 수도 있다. 경찰은 통화기록 및 문자메시지 등에서 유출 경위의 실마리를 찾을 계획이다.

나성원 정현수 기자 na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