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양심적인가…병역거부 심사, 초등시절부터 쭉 훑는다

입력 2020-07-14 16:55 수정 2020-07-14 19:58
28일 오전 서울 용산구 국방부 브리핑룸에서 이남우 인사복지실장이 대체역의 편입 및 복무에 관한 법률안 입법 예고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2018.12.28. 뉴시스

이른바 ‘양심적(종교적) 병역거부자’에 대한 대체역(대체복무) 심사 기준이 이르면 15일 대체역 심사위원회 회의를 거쳐 확정된다.

심사위 사무국은 병역거부자에 대한 법원 판례를 중심으로 심사 기준 초안을 작성했다. 이는 대체역 심사의 가장 큰 기준을 양심의 일관성에 뒀다는 것이다. 다만 심사위는 제도 시행 초기인 점을 감안해 심사위원의 재량권을 폭넓게 인정하기로 했다. 군 안팎에서는 해당 제도에 그간 논란이 있었던 점을 이유로 법원 판례만큼 엄격한 기준이 적용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대체역에 대한 일각의 우려섞인 시선도 넘어야할 과제다. ‘집총 거부’라는 종교적 신념 등을 가졌다는 이유로 대체역 입영이 쉽게 허가된다면 일단 국가 안보를 저해하는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이는 사법부가 그간 병역거부를 허용하지 않았던 이유이기도 하다. 현역병의 숫자는 갈수록 줄고 있는 상황이다.

정경두 국방부장관이 23일 서울 국방부 육군회관에서 열린 대체역 심사위원 임명 및 위촉식에서 심사위원들과 함께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2020.6.23 mon@yna.co.kr/2020-06-23 13:20:19/

심사위의 기준점은 대법원 판례다. 대법원은 2018년 11월 1일 전원합의체 판결에서 “(입영을 거부해도 처벌받지 않는) 정당한 사유에 해당하는 절박하고 구체적인 양심은, 그 신념이 깊고 확고하며 진실해야 한다”고 밝혔다.

판결문에 따르면 대법원은 신념의 깊이와 그 진실성을 판단하는 기준을 일관성이라고 봤다. 신념은 삶의 일부가 아닌 전부에 영향을 줘야 하고 쉽게 바뀌어서는 안 된다. 상황에 따라 타협적이거나 전략적이지도 않아야 한다.

법원은 이 때문에 양심적(종교적) 병역거부 여부를 판단할 때 성장과정과 학교생활, 종교 및 사회 경험, 가정환경 등을 두루 검증했다. 전과 여부, 신념을 갖게 된 시기, 종교 활동과 병역 거부의 관련성, 폭력 성향에 대한 학교 세부사항기록부 기록, 심지어 총기 게임을 했는지 여부도 구체적인 검증 대상이 됐다.

심사위가 제시한 신청 서류는 양심의 일관성을 검증하기 위한 목적이 뚜렷하다. 병역거부 신청자는 모두 10가지의 서류를 내야 하는데 이 중에는 범죄 경력 및 수사 경력 조회 회보서, 초·중·고등학교 세부사항기록부, 주변인 진술서(3명 이상)가 포함돼 있다. 전과 여부, 초등학교 때부터의 학교 활동, 주변 사람들의 시각 등을 모두 확인하겠다는 의미다.

심사위 사무국은 신청 서류를 바탕으로 현장 조사, 주변인 진술 조사, 신청인 조사, 보강 조사를 거쳐 그 결과를 사전 심사위에 보고한다. 심사위원 5명으로 구성된 사전 심사위는 사무국 조사 결과를 기반으로 사실상 신청인에 대한 대체역 입영 여부를 결정한다. 최종 의결은 심사위 전체회의(위원 29명)에서 이뤄진다. 과반 참석에 과반 찬성이 기준이다.

기존에 법원에서 무죄를 받은 대체역 신청자 35명은 심사위 심사를 거쳐 올해 소집될 전망이다. ‘여호와의 증인’ 신도 또한 심사를 거쳐 대체역 입영이 허가될 가능성이 높다. 그간 많은 여호와의 증인 신도들이 병역을 거부한 전력이 있고 대부분 무죄를 받았다.

비폭력·평화주의 신념을 가진 병역거부자들에 대해서는 보다 까다로운 심사가 적용될 것으로 보인다. 이들은 법원에서 유죄를 받은 경우가 많았다. 종교인의 경우 정기적인 종교 활동 등 양심의 일관성을 증명할 경험들이 많은데 비해, 비폭력 신념을 주장하는 이들은 그런 것들이 상대적으로 적다. 특히 비폭력주의자들은 성인이 된 뒤 신념이 보다 확고해져 일종의 ‘전향’을 하게 된 경우가 있다. 이에 대해 신념의 일관성이 부족하다는 법원 판단이 있었다.

평화주의자 A씨 사례가 단적이다. 그는 성인이 된 뒤 사회복지사로서 제주 강정마을 주민들을 면담하며 평화라는 가치의 중요성을 깨달았다. 이후 평화주의 관련 시민단체에서 활동하기 시작했다. A씨는 사회복무요원으로 병역을 이행했으나 시민단체에서 활동한 뒤 예비군 훈련을 거부했다. 제주지법은 병역법 위반으로 기소된 A씨에게 지난해 8월 유죄 판결했다. 병역 의무 이행 사실이 있으며 시민단체의 주된 목적이 병역거부가 아니라는 게 이유였다.

B씨의 사례도 마찬가지다. 그는 선교단체에서 활동하며 평화라는 가치에 빠져들었다. 이후 군 입대를 하긴 했지만 제대 후 예비군 훈련을 거부했다. 신념이 보다 확고해져 어떤 불이익도 상관없다는 생각을 갖게 된 것이다. 서울남부지법은 지난해 9월 활동 내용이 병역거부와 관련이 없고 군 복무를 이미 했다는 점 등을 들어 B씨에게 유죄를 선고했다.

참여연대와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 군인권센터 등 시민사회단체 회원들이 5일 오전 서울 국방부 앞에서 '정부의 양심적 병역거부 징벌적 대체복무제안 반대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이들은 기자회견에서 '3년 교정시설 합숙 복무, 심사기구 국방부 설치는 양심적 병역거부자에 대한 또 다른 처벌'이라고 주장했다. 2018.11.05. kkssmm99@newsis.com

심사위 사무국 관계자는 14일 “특정 종교 단체에 가입돼 있지 않거나 법원에서 유죄를 받았던 경우라도 심사를 거쳐 대체역 판정을 받을 수 있다”면서도 “양심의 일관성을 입증할 책임은 신청자에게 있기 때문에 철저히 준비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달 30일부터 13일까지 대체역 복무를 신청한 인원은 모두 합쳐 79명이라고 한다. 한 군 관계자는 “제도가 악용되지 않도록 신청자에 대한 철저한 검증이 필요하다”며 “진통 끝에 도입된 제도이기 때문에 더 이상의 논란이 발생해서는 안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제도 도입 초기여서 심사위원들의 재량권이 높다는 점은 변수다. 심사위 내부에서는 기존 판례대로 엄격하게 심사해야 한다는 의견이 있으나 기준을 다소 완화해 적용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대체역을 허용하는 방향으로 도입된 제도의 취지, 대체역 복무에 징벌적 요소가 있다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육군 기준, 현역병의 복무기간은 18개월로 단축됐는데, 대체역 복무기간은 2배인 36개월이다. 복무 장소는 교도소, 구치소 등 교정 시설이다.

한 심사위원은 “대체역 복무 기간은 현역 복무 기간과 비교하면 징벌적 요소가 크다”며 “대체역 신청을 하는 이들은 이미 양심이 어느 정도 검증됐다고 봐야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법원 판례처럼 엄격한 일관성 기준을 적용하는 것이 맞는 것인지 따져봐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다른 심사위원은 “법원 판례엔 근거한 심사위 사무국 기준은 잘 만들어진 것 같다”며 “현역 복무를 한 이들이 박탈감을 느끼지 않도록 엄격하고 치밀하게 판단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심사위는 제도를 6개월 간 시행해 본 뒤 미비점을 보완해 새로운 기준을 마련할 계획이다.

문동성 기자 theMoo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