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종착지는 사랑? 이러려고 ‘비혼’ 내세웠나

입력 2020-07-14 16:10

비혼(非婚)을 소재로 한 KBS 월화드라마 ‘그놈이 그놈이다’ 지난주 제작발표회에서 주연 배우들이 이렇게 말했다.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건 사랑이 아닐까” “우리 드라마는 결혼은 연애의 완성이라는 걸 보여준다”. 비혼이란 ‘혼인은 반드시 해야 하지만 아직 하지 않은 상태’라는 의미가 담긴 미혼(未婚)이라는 단어에 대한 비판의식에서 탄생했는데 이 드라마는 개념 자체를 이해하지 못한 듯했다. 결국 인생의 완성이 결혼이라면 비혼주의자들의 인생은 불완전한 상태라는 말인가.

최근 비혼을 소재로 한 드라마 잇따라 등장하고 있지만 전통 로맨틱 코미디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비혼이 사회적 트렌드라는 현실을 짚어준다는데 의의를 찾기에는 교조적 메시지로 이어질 가능성 농후하다는 지적이다.

‘그놈이 그놈이다’의 여자 주인공인 서현주(황정음)는 연애는 물론 임신과 결혼 모두를 거부한 여성이다. 첫 방송에서 그는 하객 앞에서 이렇게 말했다. “죽는 날까지 믿고 사랑하기로 한 반려자는 서현주 나 자신입니다.” 하지만 황지우(윤현민)와 박도겸(서지훈)이 나타나면서 분위기는 반전됐다. 서현주는 이들과 삼각 구도를 연출할 게 뻔하다. 둘 중 한 명과 연애를 할 테고 서서히 비혼에 대한 생각을 바꿀 수도 있다.

제작발표회 당시 배우들이 한 말이 이런 시나리오를 예상할 수 있는 근거다. 김선희 역을 맡은 최명길은 “셰익스피어는 결혼이 연애의 무덤이라고 했지만 우리 드라마는 끊임없이 결혼은 연애의 완성이라는 것을 보여준다”고 했고, 황정음은 “살아가는 방식은 모두 다르지만 그럼에도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건 사랑”이라고 했다. 최윤석 PD는 “모든 비혼 여성을 대변할 수 없지만 30대 여성 시청자가 공감하도록 만들었다”며 “사회상과 로맨스를 아우를 수 있는 드라마”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가벼운 생활밀착형 드라마로, 쉽고 편하고 재미있게 볼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경력단절 등 여러 사회문제와 결부된 비혼주의를 가볍고 쉽고 편하게 표현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최근 종영한 tvN ‘오 마이 베이비’는 어땠나. 노선재 작가는 언론 인터뷰에서 “질문을 던지는 드라마”라며 “3040세대는 비혼, 육아 등 다양한 변곡점을 맞기 때문에 다양한 삶의 방식이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전통적인 로맨스 드라마의 삼각관계를 그대로 차용했고 결국 여자 주인공은 사랑하는 남자를 만나 출산을 했다. 때문에 비혼 트렌드를 반영한 것 치고는 여성의 서사를 고전적으로 그렸다는 비판에 직면했다.

전문가들은 상업 드라마에서 로맨스를 배제하는 것은 아직은 부담스러울 수 있다고 분석한다. 한 드라마 작가는 “로맨스 없이 비혼 소재만으로 이야기를 끌어가는 게 부담스러운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비혼주의를 담으면서도 그 안에 연애와 결혼, 육아를 녹이려다 보면 작품의 방향성이 혼란해질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드라마 ‘미생’이나 ‘나의 아저씨’처럼 주인공 사이 로맨스 없이 사회문제를 녹이면서 작품성과 화제성을 잡을 수 있다”며 “사회문제를 수반한 트렌드를 작품화할 때는 많은 고민이 필요하다”고 전했다.

박민지 기자 pm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