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순 전 서울시장을 성추행 혐의로 고소한 피해자 측이 “고소와 동시에 피고소인에게 수사상황이 전달됐다”는 주장을 한 것에 대해 법조계에서는 성범죄 수사 관련 피해자 보호제도가 제대로 작동하지 못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성폭력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은 물론 여러 조사지침 등 개선에도 불구하고 유력자에 대해서는 예외가 됐다는 것이다.
검찰 출신 한 변호사는 14일 “특수성이 있는 성폭력 사건에서 고소인의 수사 상황이 피고소인에게 전달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비판했다. 수사 기관은 성폭력 피해자가 수사 과정에서 권리를 충분히 행사할 수 있도록 보호해야할 의무가 있다는 것이다. 다른 법조계 관계자는 “이 사건은 본질은 유력정치인의 권력형 성범죄”라며 “유출로 인해 회유, 협박 등 피해자에 대한 2차 피해가 발생할 수도 있었다”고 했다.
법조계에서는 성폭력 사건과 관련해 수사 기관의 비밀 유지 의무를 규정한 성폭력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을 언급한다. 이 법률 제29조는 수사기관과 법원 등은 조사 심리, 재판 과정에서 피해자의 인격이나 명예가 손상되거나 사적인 비밀이 침해되지 않도록 주의해야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또 같은 법 24조는 수사 또는 재판 관련자 등이 피해자의 신원과 사생활 비밀을 공개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경찰이 유출했을 경우 해당 조항을 위반한 것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경찰은 본인에게 통보를 하지 않았다고 주장하고 있다.
공무상비밀누설에 해당할 수 있다는 얘기도 나온다. 차장검사 출신 변호사는 “만일 이 고소 내용이 경찰이 아닌 상급 기관에 보고하는 과정에서 유출이 됐다면 공무상비밀누설죄로 처벌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경찰은 “청와대에 보고를 했으나 서울시나 박 시장에게 알린 적 없다”고, 청와대는 “관련 내용을 통보한 사실이 없다”고 각각 주장하고 있다.
유출 의혹과 관련해 시민단체들의 고발이 잇따르고 있다. 활빈단은 이날 오전 박 시장에게 성추행 피소 사실을 알렸다는 의혹을 받는 경찰과 청와대의 ‘성명불상의 관계자' 등을 공무상 비밀누설 혐의로 수사해 달라는 고발장을 대검찰청에 제출했다.
허경구 기자 nin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