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일파” vs “구국영웅” 백선엽 논란에 쪼개진 나라

입력 2020-07-14 14:29
14일 용산구 국방부 앞에서 아베규탄 시민행동 주최로 고 백선엽 장군의 현충원 안장 취소 촉구 기자회견이 열리고 있다.(왼쪽). 12일 서울 광화문 광장에 마련된 고 백선엽 장군 시민분향소에서 추모객이 헌화하고 있다. 연합

지난 10일 세상을 떠난 고(故) 백선엽 장군의 사후처리와 예우를 두고 진부와 보수 시민단체들의 반응이 극단적으로 엇갈렸다.

백 장군은 국립묘지법에 따라 현충원 안장이 결정됐으며, 서울현충원에 장군묘역이 만장돼 대전현충원 장군묘역에 15일 안장된다.

진보진영 시민단체가 모인 ‘아베규탄시민행동’은 14일 서울 용산구 국방부 청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조선인을 토벌하던 반일·반민족행위자 백선엽의 현충원 안장을 즉각 취소하라”고 요구했다.

이들은 “백선엽은 조선인 독립군을 토벌하기 위해 창립된 일본군 간도특설대에서 활동한 사실을 스스로 인정했다”며 “2009년 대통령 소속 친일반민족행위자 진상규명위원회가 ‘친일·반민족 행위자’로 인정한 ‘국가공인 친일파’”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나라의 역사와 영예가 깃든 현충원에 백선엽이 안장되면 미래세대는 친일파 일본군 장교에게 머리 숙여 묵념하게 될 것”이라며 “친일 잔재 청산과 역사 정의를 바로 세우기 위해 백선엽의 국립묘지 안장을 취소해야 한다”고 말했다.

방학진 민족문제연구소 기획실장은 “문재인 대통령은 국군의 뿌리가 독립군과 광복군에 있다고 여러 차례 강조했다. 조선 독립군을 토벌한 백선엽은 적국의 장교일 뿐 결코 영웅이 아니다”라며 “21대 국회가 국립묘지법을 개정해 국립현충원에 안장된 친일 반민족 행위자를 다른 곳으로 이장해야 한다”고 했다.

12일 서울 광화문 광장에 마련된 고 백선엽 장군 시민분향소에서 추모객이 헌화하고 있다. 연합

반면 보수단체 자유대한호국단은 같은 날 여의도 광복회관 앞에서 김원웅 광복회장 규탄집회를 열고 “백선엽 장군은 대한민국을 살려낸 은인”이라며 “백 장군에 대한 망언을 일삼는 김원웅 광복회장은 즉각 사퇴하라”고 촉구했다.

김병헌 국사교과서연구소 소장은 “백선엽 장군이 간도특설대에서 활동한 1943∼44년 만주에는 독립군이 없었다”며 “김 회장이 영웅인 백선엽 장군을 친일파로 몰아가며 대한민국을 분열시키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김 회장은 백선엽 장군이 간도특설대에 복무한 기간 독립군을 토벌했다는 역사적 증거를 대라”고 말했다.

미래통합당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이 12일 서울 아산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고 백선엽 장군의 빈소를 찾아 조문하고 있다. 연합

고 백선엽 장군의 현충원 안장을 두고 지지와 비판 여론이 극명하게 엇갈리면서 정치권 공방도 가열되고 있다.

김종인 미래통합당 비상대책위원장과 주호영 원내대표는 12일 서울 송파구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백 장군 빈소를 찾아 조의를 표했다.

김 위원장은 조문을 마치고 “서울현충원에 안장을 못하고 대전현충원에 내려가야 하는 이유를 납득하기 어렵다”고 했다.

반면 김종철 정의당 대변인은 “일부 공이 있다는 이유로 온 민족에게 말할 수 없는 고통을 안겨준 일제의 주구가 돼 독립군을 토벌한 인사”라며 현충원 안장 자체를 반대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공식적인 논평은 따로 내지 않았다. 이해찬 민주당 대표가 저녁 늦게 빈소를 찾아 조의를 표했다. 이낙연 의원도 오후 조문을 마친 뒤 기자들을 만나 “명복을 빈다는 말씀을 드렸다”고 전했다.

청와대에서는 노영민 비서실장이 서훈 국가안보실장, 김유근 안보실 1차장, 김현종 안보실 2차장과 함께 빈소를 찾아 조문했다. 노 실장은 방명록에 “한·미동맹의 상징이시고, 한국군 발전의 증인이신 백선엽 장군을 애도합니다”라고 적었다.

정세균 국무총리도 빈소를 찾아 “정부는 육군장으로 (고인을) 대전현충원에 잘 모실 계획을 갖고 있다”며 고인에 대한 예우를 강조했다.

최민우 기자 cmwoo1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