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거돈 전 부산시장에 이어 박원순 전 서울시장까지 성 추문 의혹에 휩싸이며 핵심 광역단체장 두 곳이 공석이 됐다. 유례없이 판이 커진 4·7 재보궐선거에 더불어민주당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당헌에 소속 선출직 공무원이 중대한 잘못으로 직위를 상실해서 재보궐 선거가 치러지는 경우 후보를 공천하지 않도록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박 전 시장 영결식이 치러진 13일 김종인 미래통합당 비상대책위원장은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내년 보궐선거는 안 할 수가 없는 것 아니냐”며 “그에 대한 준비를 전체적으로 해나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속내가 복잡해진 민주당은 말을 아끼고 있다. 당헌 96조 2항에는 ‘당 소속 선출직 공직자가 부정부패 사건 등 중대한 잘못으로 그 직위를 상실하여 재보궐 선거를 실시하게 된 경우 해당 선거구에 후보를 추천하지 아니한다’고 명시돼 있다. 지난 4월 오 전 시장 사태 당시 당 내부서는 차기 후보군을 거론하는 것이 적절치 않다며 조심하는 분위기였다. 일부 의원들 사이에서는 여론을 고려해서라도 후보를 내지 않고 책임지는 게 맞는다는 의견도 나왔다.
여기에 3개월 만에 또다시 서울시장까지 공석이 되면서 부담은 더욱 커졌다. 서울·부산 지역의 유권자는 지난 총선 기준 총 1143만명에 달한다. 이재명 경기지사와 김경수 경남지사의 재판까지 진행 중인 것을 고려했을 때 결과에 따라 재보궐 선거판이 더 커질 수도 있다. 이들 지역 총 유권자 수는 1390만명이다.
2015년 당헌 개정 이후 2018년 성폭력 폭로로 안희정 전 충남지사가 제명되는 일이 벌어졌지만, 같은 해 6·13지방선거에는 양승조 현 충남지사가 공천돼 당선됐다. 직위 상실로 인한 재보궐 선거가 아닌 통상의 지방선거였기 때문이다. 당에서는 ‘직위 상실’을 어떻게 해석할지를 두고도 이견이 분분하다. 사법부 판단에 의한 직위 상실로 봐야 하는지, 사퇴나 사망으로 인한 공백도 직위 상실로 봐야 하는지 등이다.
민주당 유력 당권 주자인 이낙연 의원과 김부겸 전 의원에게도 복잡한 과제가 주어졌다. 공천권을 가진 당대표로서 서울·부산시장 후보 공천 여부를 결단해야 한다. 후보를 낸다면 집권여당에 대한 중간평가 성격이 짙어진 재보궐 선거에서 최대한의 성적을 내야 한다.
당대표 당선 시 임기 완주를 내건 김부겸 전 의원과 달리, 2022년 대선 출마로 재보궐 선거 한 달 전 사퇴해야 하는 이낙연 의원의 당권 레이스에는 적신호가 켜졌다.
이 의원 측은 고심하고 있다. 국난극복의 대의와 책임 있는 당대표를 세워 임기 문제를 돌파하려 했지만 여기에 재보궐 선거 지휘 공백이라는 부담까지 안게 됐다. 이 의원 측은 임기 문제로 공방이 확대되지 않도록 재발 방지 대책 등 당 혁신에 초점을 맞출 것으로 보인다.
임기 문제로부터 자유로운 김 전 의원은 상대적으로 유리한 국면에 놓였다. 하지만 김 전 의원은 지난 9일 출마 선언 기자간담회에서 부산시장 재보궐 공천 관련 “당헌은 지켜져야 한다”며 무공천 가능성을 시사한 바 있다. 김 전 의원 측 관계자는 “원론적인 수준의 언급이었다”며 “상황을 구체적으로 보고 다시 이야기해야 한다”며 입장을 유보했다.
이가현 기자 hy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