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모님은 건강관리에 더욱 유념해서 백 장군님께서 끝내 보지 못하셨던 남북통일을 꼭 보셔야 합니다”
백선기 경북 칠곡군수는 지난 12일 고(故) 백선엽 예비역 대장의 빈소가 마련된 서울 아산병원 장례식장을 찾았다.
이날 백 군수는 헌화를 마치고 상주인 아들 남혁 씨와 장례식을 주관한 서욱 육군참모총장에게 위로의 말을 건넸다. 이어 내실로 이동해 백 장군의 부인 노인숙(94) 여사와 대화를 이어갔다.
백 군수는 “친 아버님 같은 분이 돌아가셨다. 황망하기 그지없다”며 “꿈에서도 그리던 부하를 만나 70년 만에 이야기 꽃을 피우겠다는 생각으로 위안을 삼고 있지만 마음은 계속 아려온다”며 붉게 충혈된 눈으로 큰절을 하자 노 여사도 참았던 눈물을 쏟아냈다.
노 여사는 “남편도 백 군수를 아들처럼 무척이나 아꼈다”며 “적어도 다부동 전투가 벌어졌던 칠곡군에서는 남편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날 내실에서 30분 동안 대화를 이어갈 만큼 백 군수와 백 장군 내외의 관계는 남달랐다.
백 장군 유족도 백 군수가 보낸 조화를 눈에 가장 잘 띄는 장례식장 복도 입구에 놓아두며 친밀감을 드러냈다.
백 군수와 백 장군 내외의 인연은 201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백 군수가 2011년 칠곡군수에 당선되고 그 이듬해인 2012년 11월 다부동 전투를 승리로 이끈 백 장군에게 감사 인사를 전하기 위해 사무실을 방문했다.
이들은 일면식도 없었지만 다부동을 소재삼아 이야기를 이어가며 이내 부모와 자식처럼 친밀감이 쌓여갔다. 백 군수는 2019년까지 한해도 거르지 않고 호국보훈의 달인 6월과 백 장군 생일이 있는 11월이면 케익과 노 여사가 좋아하는 절편을 준비해 상경했다. 매번 짧은 만남을 뒤로하고 이별을 고할 때는 장수를 기원하며 큰절을 올렸다.
특히 지난해 10월에는 지역의 정체성과 호국보훈에 대한 확고한 신념을 지키며 백 장군에게 ‘칠곡군 명예군민증’을 수여하기도 했다. 또 백 장군의 장수를 기원하며 직접 접은 종이학 100마리와 사진 앨범을 선물했다. 이에 백 장군도 고령임에도 휠체어에 의지한 채 2015년과 2019년 칠곡군에서 열린 ‘낙동강 세계평화 문화대축전’에 참석하는 것으로 화답했다.
지난 6월에도 또 한 번의 만남을 준비했지만 건강상태가 악화돼 무산됐다.
백 군수의 간절한 바람에도 백 장군은 지난 10일 향년 100세의 나이로 타계했다.
백 군수는 “신이 아닌 이상 인간은 누구나 공과(功過)가 있기 마련”이라며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대한민국을 구한 백 장군의 공은 존중받고 기억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진보와 보수를 떠나 국가의 존립을 위해서는 호국보훈의 가치가 올곧게 정립돼야 한다”며 “백 장군님의 위국헌신 정신이 계승발전될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기울일 것”이라고 밝혔다.
칠곡=김재산 기자 jskimkb@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