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L ‘왕의 몰락’ 레스터…맨유에 챔스 진출권 내줄까

입력 2020-07-13 15:46
레스터 시티 공격수 하비 반즈가 12일(현지시간) 열린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35라운드 본머스 AFC와의 경기에서 패한 뒤 망연자실한 표정을 짓고 있다. AP연합뉴스

‘킹파워 스타디움’을 홈구장으로 하는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레스터 시티가 리그 재개 뒤 더 급격한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 부상 전력이 돌아와 반전할 가능성도 예상됐으나 어이없는 실수 등이 겹치면서 이른바 ‘위닝 멘탈리티’가 붕괴하는 모습이다. 시즌 막판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경쟁에서도 오랫동안 지켜온 자리를 내줄 모양새다.

레스터는 12일(현지시간) 열린 본머스AFC와의 EPL 35라운드 원정 경기에서 전반 제이미 바디의 선제골에도 불구, 후반 역전을 허용하며 4대 1로 완패했다. 이로써 레스터는 먼저 35라운드 경기를 치러 승점 1점이 앞서있던 첼시를 다시 뒤로 보내지 못하고 순위까지 역전, 4위로 내려앉았다. 같은 라운드 사우스햄턴과의 경기를 13일 치르는 5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승점 차가 겨우 1점으로, 맨유의 최근 기세가 좋은 걸 고려하면 5위까지 떨어질 가능성이 있다.

이날 레스터는 올 시즌 하반기 경기력이 저하됐을 뿐 아니라 정신적 무장까지 흐트러졌음을 단적으로 드러냈다. 리그 득점 단독 선두를 달리고 있는 골잡이 바디가 경기 시작 23분 만에 크로스를 제대로 걷어내지 못한 상대 실수를 틈타 자신의 리그 23번째 골을 집어넣을 때만 해도 경기는 무난히 레스터 쪽으로 기우는 듯했다. 그러나 이후 추가골을 넣지 못한 채 지지부진하다가 캐스퍼 슈마이켈 골키퍼의 골킥 실수로 후반 22분 주니어 스타니슬라스에게 페널티킥 골을 내줬다.

기세를 올린 본머스는 불과 1분 뒤 도미닉 솔랑케가 역습 상황에서 측면 쇄도해 멋진 골을 집어넣었다. 문제는 골을 내준 직후 장면이었다. 공이 골망에 들어간 뒤 서둘러 공을 주우려는 상대 공격수 칼럼 윌슨을 화가 난 레스터 수비수 찰라르 소윤주가 신경질적으로 걷어차면서 퇴장을 당했다. 그러잖아도 어려워진 경기를 주전 수비수 1명이 빠진 채 치르게 된 레스터는 이후 자멸하면서 2골을 추가실점, 어이없이 경기를 내줬다. 경기력 자체보다도 골키퍼와 수비의 연이은 실수가 경기를 망친 셈이다.

시즌 중단 전 레스터가 10경기 4승만을 거두는 등 부진할 때만 해도 현지에서는 중원의 핵인 알프레드 은디디나 강점인 풀백 자원들의 부상 공백을 부진의 중요한 이유 중 하나로 봤다. 그러나 현재는 이 자원들이 모두 복귀하고서도 리그 재개 뒤 단 1승에 그치는 상황이다.

전문가들은 레스터가 무너지게 된 일차적인 이유가 ‘플랜 B’가 없기 때문이라고 봤다. 장지현 해설위원은 “브랜던 로저스 감독의 레스터는 공격 패턴 자체가 바디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경향이 있다”면서 “상대팀들도 리그가 진행되면서 바디의 뒷공간 공략에 대비하기 시작했고, 레스터는 여기 다른 대책을 내놓지 못했다”고 봤다.

사실 레스터의 이 같은 모습은 로저스 감독의 전력을 따지면 묘한 데자뷰이기도 하다. 로저스 감독은 과거 리버풀이 EPL 우승에 근접했던 2013-14시즌에도 당시 공격수 루이스 수아레즈에 의존한 공격 패턴으로 일관하다 후반기 동력이 떨어지면서 결국 한 끗 차이로 우승에 실패한 경험이 있다. 다음 시즌 수아레즈가 이적하자 팀 순위가 곤두박질쳤고 결국 로저스 감독은 경질당했다.

다만 장 위원은 “감독만의 문제라기보다는 베스트일레븐 위주로만 가는 팀이 겪는 문제”라면서 “다음 시즌에도 레스터가 부진할지는 스쿼드 깊이를 빅클럽처럼 보강해낼 역량이 있는지에 달렸다”고 봤다.

조효석 기자 promen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