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자의 진술이 일관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무죄를 선고받았던 남성이 대법원에서 유죄 취지 판단을 받았다. 피해자가 모텔 화장실 문 등을 실제와 달리 설명한 점 등이 무죄 이유가 됐었지만, 대법원은 이 같은 사정 등에 대해 “일부 모순되는 점이 있더라도 부수적이라면 전체 진술의 신빙성을 부정해선 안 된다”는 취지로 판결했다.
대법원 1부(주심 박정화 대법관)는 강간, 감금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A씨의 상고심에서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부산고법으로 돌려보냈다고 13일 밝혔다. A씨는 2017년 7월 소개팅 어플리케이션으로 만난 B씨를 차에 태운 뒤 감금하고 숙박시설로 데려가 성폭행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A씨는 “합의 하에 성관계를 가졌고 감금하지 않았다”고 주장했지만, 1심은 A씨에게 징역 3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피해자가 직접 경험하지 않고서는 알기 어려운 구체적인 내용까지 진술하고 있다”며 “피해자의 진술에서 모순되는 부분을 찾을 수 없다”고 했다.
그런데 2심은 B씨의 피해 진술에 일관성이 없다는 이유로 A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B씨의 진술 중 사실과 다르거나 번복되는 부분이 있다는 것이다. B씨는 사건이 발생한 숙박업소 화장실 문이 잠기지 않는 유리문이라고 진술했지만, 경찰 조사 결과 잠금장치가 있는 나무문이었다. 또 B씨는 A씨가 목을 졸랐다고 진술했는데, B씨의 목 부근에 멍이나 상처 등 흔적은 없었다. B씨가 사건 이후 A씨와 함께 식당에 갔음에도 식당 종업원 등 주변인에게 도움을 요청하지 않은 점과 숙박업소 주인이 이상한 점을 느끼지 못했다고 진술한 점도 진술 배척의 근거가 됐다.
하지만 대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대법원은 “피해자가 진술을 번복했어도 공소사실과 직접적 관련이 없는 부수적 사항에 불과하다”며 “성폭행 피해자가 처해 있는 특수한 사정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은 것이 아닌지 심히 의심이 든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재판부는 “피해자가 상당한 시간 두려움을 느끼는 상태에 있었던 점에 비춰 구체적인 상황에 대해 세밀하게 기억하지 못할 가능성을 감안해야 한다”고 했다.
허경구 기자 nin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