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한 법정에서 그분 향해 하지말라, 소리치고 싶었다” [전문]

입력 2020-07-13 14:51 수정 2020-07-13 15:23
고(故) 박원순 서울시장의 영정이 13일 오전 영결식이 열리는 서울시청에 도착하고 있다. 연합뉴스

고(故) 박원순 서울시장을 성추행 등 혐의로 고소한 전직 비서 A씨가 대리인을 통해 입장을 밝혔다.

A씨의 변호인단은 13일 서울시 은평구 한국여성의전화 사무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A씨의 입장문을 대독했다.

고소인은 입장문에서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수 있다고 생각했다. 미련했다. 너무 후회스럽다”면서 “처음 그때 저는 소리 질렀어야 하고 울부짖었어야 하고 신고했어야 마땅했다. 그랬다면 지금의 제가 자책하지 않을 수 있을까 수없이 후회했다”고 운을 뗐다.

그는 “긴 침묵의 시간 홀로 많이 아팠다. 그저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세상을 꿈꾼다”면서 “거대한 권력 앞에서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공정한 법의 보호를 받고 싶었다. 안전한 법정에서 그분을 향해 소리 지르고 울부짖고 싶었다. 용서하고 싶었다. 법의 심판을 받고 인간적인 사과를 받고 싶었다”고 토로했다.

고소인은 “죽음 그 두 글자는 제가 그토록 괴로웠던 순간에도 입에 담지 못한 단어”라며 “너무나 실망스럽다. 아직도 믿고 싶지 않다. 고인의 명복을 빈다. 많이 망설였다. 50만이 넘는 호소에도 바뀌지 않는 현실은 제가 그때 느낀 위력의 크기를 다시 한 번 느꼈다. 숨이 막힌다”고 말했다.

끝으로 그는 “저는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하지만 저는 사람입니다. 저는 살아있는 사람입니다. 저와 제 가족의 고통의 일상과 안전을 온전히 회복할 수 있길 바랍니다”라고 호소했다.

이날 기자회견에 동석한 고미경 한국여성의전화 상임대표는 “피해자는 본 사건이 정의롭게 해결되리라는 믿음으로 용기 내 고소를 했으나, 피고소인이 부재한 상황이 됐다”며 “그렇다고 해서 사건의 실체가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이어 “현재 경찰에서는 고소인 조사와 일부 참고인 조사를 통해 사건의 실체를 파악한 것으로 알고 있다”며 “경찰은 현재까지의 조사 내용을 토대로 사건에 대한 입장을 밝혀 달라”고 요구했다.

다음은 박원순 고소인의 입장 글 전문.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미련했습니다. 너무 후회스럽습니다. 맞습니다. 처음 그때 저는 소리 질렀어야 하고, 울부짖었어야 하고, 신고했어야 마땅했습니다. 그랬다면 지금의 제가 자책하지 않을 수 있을까, 수없이 후회했다. 긴 침묵의 시간, 홀로 많이 힘들고 아팠습니다. 더 좋은 세상에서 살기를 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저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세상을 꿈꿉니다. 거대한 권력 앞에서 힘없고 약한 저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공정하고 평등한 법의 보호를 받고 싶었습니다. 안전한 법정에서 그분을 향해 이러지 말라고 소리 지르고 싶었습니다. 힘들다고 울부짖고 싶었습니다. 용서하고 싶었습니다. 법치국가 대한민국에서 법의 심판을 받고 인간적인 사과를 받고 싶었습니다. 용기를 내어 고소장을 접수하고 밤새 조사를 받은 날, 저의 존엄성을 해쳤던 분께서 스스로 인간의 존엄을 내려놓았습니다. 죽음, 두 글자는 제가 그토록 괴로웠던 시간에도 입에 담지 못한 단어입니다. 저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아프게 할 자신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너무나 실망스럽습니다. 아직도 믿고 싶지 않습니다.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많은 분들에게 상처가 될지도 모른다는 마음에 많이 망설였습니다. 그러나 50만명이 넘는 국민들의 호소에도 바뀌지 않는 현실은 제가 그때 느꼈던 위력의 크기를 다시 한번 느끼고 숨이 막히도록 합니다. 진실의 왜곡과 추측이 난무한 세상을 향해 두렵고 무거운 마음으로 펜을 들었습니다. 저는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하지만 저는 사람입니다. 저는 살아있는 사람입니다. 저와 제 가족의 고통의 일상과 안전을 온전히 회복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상입니다.


권남영 황윤태 기자 kwonn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