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국가보안법(홍콩보안법)이 시행됨에 따라 “나도 처벌받을 수 있다”는 두려움에 이민을 가려는 홍콩인들 줄을 잇고 있다.
특히 영국이나 호주, 대만 등 새 삶터를 원하는 홍콩인을 적극 받아들이겠다는 나라들이 잇따르면서 선택지가 넓어져 이민자가 더욱 급증할 것으로 예상된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홍콩 보안법 시행 전후로 이민을 떠나려는 홍콩인들이 늘어나고 있는 상황에서 이들에게 영주권이나 시민권을 주겠다는 나라가 속속 나타나면서 좋은 조건을 찾아갈 선택의 폭이 넓어지고 있다고 12일 전했다.
우선 영국이 자국의 해외시민(BNO) 여권을 가졌던 모든 홍콩인에게 시민권을 주도록 이민법을 개정하겠다고 밝히자 영국행을 고려하는 사람들이 크게 늘고 있다.
홍콩에서 이민 알선회사를 운영하는 윌리스 푸는 지난 5월 홍콩보안법 제정 계획이 처음 발표된 이후 이민 문의가 급증하긴 했으나 최근 영국의 ‘시민권 부여’ 정책은 일반 홍콩인들에게 큰 기회를 주고 있다고 말했다.
처음에는 이민 문의자 상당수가 홍콩의 여러 병원에서 근무하는 20~40대 간호사들이 대부분이었으나 지금은 다양한 직종의 사람들이 이민 대열에 뛰어들고 있다고 그는 설명했다.
홍콩에서 판매원으로 일하는 레오 찬(26)은 지난해 반정부 시위에 참여해 영국 국기를 흔드는 등 지금은 불법인 시위 경력 때문에 걱정스러워 영국으로 이민을 떠날 준비를 하고 있다.
그는 그동안 외국인들이 1~2년 동안 머물면서 일할 수 있는 워킹홀리데이 비자를 신청하려고 여러 나라를 물색했으나 홍콩인 이민 정책이 발표되자 영국으로 떠나기로 결정했다. 그는 “영국으로 이민 가는데 더 쉬워졌고, 그 곳에서 잘 정착할 더 좋은 기회를 얻을 것 같다”고 말했다.
영국 여권을 갖고 있는 데이비드 리는 홍콩에서 기자로 일하면서 홍콩보안법 때문에 신변에 문제가 생길까봐 두려워하다 자신의 아내와 함께 이민을 떠나기로 했다.
그의 아내는 영국에 가족이 있어 당연히 우선 이민을 고려하는 국가는 영국이지만 혹시 홍콩인에 대해 적극적인 미국도 홍콩인을 위한 이민 정책을 내놓을지 기다리고 있다고 했다.
호주 정부도 지난 9일 홍콩 학생들이 호주에서 대학을 졸업하면 5년 거주 후 영주권을 신청할 자격을 부여하는 정책을 시행하겠다고 밝혔다.
또 호주에서 일자리를 얻은 홍콩 주민들도 정규직이나 임시직에 관계없이 5년 기한의 거주비자를 발급해 주기로 했다.
현재 학생이나 임시 노동자 비자로 호주에 체류하는 인원은 1만명 가량인 것으로 전해졌다.
대만도 홍콩과 가깝고 문화가 비슷해 홍콩인들에게 인기있는 이민 국가였지만 영국이 이민 정책을 발표한 이후에는 상당수가 영국 쪽으로 관심을 돌리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민 컨설턴트인 제이슨 위는 “영국의 발표 이후 대만 이민을 문의하던 사람들 가운데 40세 이하는 거의 사라졌다”며 “현재 대만으로의 이주를 고려하고 있는 연령층은 대부분 노인들로 상당수가 대만의 낮은 물가에 매력을 느낀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에릭 퐁 홍콩대학 교수는 “사람들이 이민을 가겠다고 말하는 것과 실제로 오래 살던 곳을 떠나는 것은 전혀 다르다”며 “홍콩 엑소더스가 일어날 것이라고 단정하기에는 이르다”고 말했다.
베이징=노석철 특파원 schro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