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례없는 ‘조문정국’에 정치공방…“공 기리는 것” “2차 가해”

입력 2020-07-12 16:55
12일 서울 중구 서울시청 앞 서울광장에 마련된 고(故) 박원순 서울특별시장 분향소를 찾은 시민들이 조문하고 있다. 권현구 기자

박원순 서울시장의 죽음은 정치권에서도 모든 이슈를 집어삼키며 여야 공방의 중심으로 떠올랐다. 빈소에 조문을 가는 것 자체가 어떤 정치적 메시지로 비칠지, 서울특별시장(葬)이 적절한지 등 여야는 여론의 향방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여당은 박 시장이 시민운동과 정치사에 남긴 공(功)은 기려야 한다는 태도를 보인 반면 야당은 ‘대대적인’ 장례식이 피해자에 대한 공식 가해가 될 수 있다며 날선 비판을 내놨다. 다만 여야 모두 장례 기간에는 박 시장의 성추행 의혹에 대해서는 직접적인 언급을 자제하는 분위기다.

더불어민주당은 성추행 의혹을 둘러싼 사실관계가 명확하지 않은 상황에서 우선 추모에 전념하는 것이 인간적 도리라는 입장이다. 민주당 관계자는 12일 “장례는 장례대로 치르고 애도의 시간을 가진 후, 고소인의 목소리를 어떤 편견이나 사심 없이 들어주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민주당 일각에서는 야당이 박 시장 죽음을 정치 쟁점화하고 있다는 불만도 나왔다. 미래통합당이 당 차원의 조문을 보류하고, 정의당 장혜영·류호정 의원이 “차마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애도할 수 없다”며 조문을 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것이 적절하지 않다는 지적이다. 민주당 중진 의원은 “사람의 죽음도 모멸하고 능멸하는 정치는 좋지 않은 정치”라며 “범죄 의혹이 제기되고 진영이 다르면 죽음 앞에서조차 최소한의 예의와 도리를 갖추지 않아도 된다는 과정으로 가는 것 같아서 씁쓸하다”고 했다.

통합당은 ‘약자와의 동행’을 당 기치로 내건 만큼 피해자에 대한 고려가 우선돼야 한다는 목소리에 힘을 실었다. 김은혜 통합당 대변인은 구두 논평에서 “이해찬 대표와 민주당 대변인의 발언, 서울특별시장 5일 장례까지 모두가 그 분들의 고인과의 관계만 몰두해서 나온 현상이다. 피해자를 단 한 번이라도 생각했다면 할 수 없는 일”이라며 “대대적인 서울특별시장(葬)은 피해자에 대한 민주당의 공식 가해”라고 밝혔다. 이해찬 대표는 지난 10일 장례식장에서 ‘고인 의혹에 당 차원의 대응을 하느냐’는 취재진 질문에 “예의라고 하느냐. XX자식”이라고 했다 추후 대변인을 통해 사과하기도 했다.

여야는 다만 고소인에 대한 2차 가해가 확산해선 안 된다는 데에는 같은 목소리를 냈다. 장례위원회 공동집행위원장을 맡은 박홍근 민주당 의원은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브리핑에서 “피해 호소인에게도 고인의 죽음은 큰 충격이고 그 이후 그분께도 고통스러운 시간이 이어지고 있으리라 생각한다. 고인을 추모하는 누구도 피해 호소인을 비난하거나 압박하고 가해하는 일이 없도록 호소한다”고 강조했다. 민주당 안팎에서 피해자를 염두에 두지 않는 듯한 추모 열기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나오자 한 발 늦게 2차 가해 우려를 언급한 것 아니냐는 지적도 있다.

통합당 의원들은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를 중단하라”는 내용의 성명을 발표했다. 이들은 “권력을 가진 자의 성범죄 사건에서 가해자보다는 피해자가 더 큰 고통과 사회적 비난을 감내해야 하는 상황을 여러 번 겪어왔고 지켜봤다. 용기를 낸 약자에게 또 다른 상처를 주는 일이 발생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통합당은 오는 20일 진행되는 김창룡 경찰청장 후보자 인사청문회에서 박 시장의 성추행 의혹에 대한 진상규명 필요성을 집중 제기하겠다는 계획이다.

심희정 이가현 기자 simcit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