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 많은 분” vs “떳떳지 못한 죽음” 박원순 추모 놓고 분열

입력 2020-07-12 15:51 수정 2020-07-12 17:15
10일 서울시청 앞에서 시민들의 조문을 위한 박원순 서울시장의 분향소가 마련되고 있다. 최현규 기자

고(故) 박원순 서울시장의 장례가 진행되면서 온라인은 고인을 추모하는 데 대한 찬반여론으로 완전히 양분된 모습이다.

12일 친여성향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는 박 전 시장이 무상급식이나 청년수당 시행, 국정농단 사태 당시 집회에 참석했던 시민들을 위해 편의를 제공했던 사실을 떠올리는 게시물이 속속 올라왔다. 서울시청 앞에 운영 중인 시민분향소에 방문해 사진을 찍어 올린 게시물도 보였다. 고인에 대한 장례가 마무리되기 전까지는 추모가 우선돼야 한다는 입장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다.

전우용 한국학중앙연구원 객원교수는 전날 “박 시장이 한 여성(피해자)에게 얼마나 큰 잘못을 저질렀는지는 아직 모른다. 그 만한 ‘남자사람친구’를 다시 만날 수 있을지 모르겠다”면서 “박 시장을 빼고 한국 현대 여성사를 쓸 수는 없을 것”이라고 추모했다. 그러나 ‘남자사람친구’라는 단어가 문제가 되자 “박 시장만큼 여성의 권익과 안전을 위해 노력하고 성과를 거둔 시민운동가를 다시 보기 어려울 것이라는 의미였다”고 해명했다.

고인의 죽음이 사회적 살인이라는 의견도 나온다. 친여 성향이 강한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는 “성추행은 분명 나쁜 범죄이지만 사람이 죽을 일은 아니다.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도, (성추행을 당한) 르윈스키도 잘 살고 있다”고 주장했다. 서울시청 홈페이지에 마련된 온라인 분향소에는 이날 오후 3시 기준 68만3000여명이 추모의 뜻을 밝혔다.

반대로 성추행 혐의로 고소된 박 시장을 추모하는 것 자체가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라는 의견도 만만치 않다.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는 페이스북에 “공7 과3 같은 공과론은 박정희와 전두환을 옹호하던 이들이 펴던 논리”라면서 “고인 등이 주장해 왔던 ‘피해자 중심주의’로 이 사안을 이해해야 하지 공과 과를 구분하는 행위는 의미가 없다”고 말했다.

인터넷 커뮤니티 등에도 “젊은 시절 부천경찰서 성고문 사건, 서울대 우 조교 성희롱 사건 등의 변론을 맡았던 고인이 정작 부하 직원에게 성추문으로 고소를 당했다”며 비판하는 게시물이 많았다. 주말 동안 일부 지지자들이 시도했던 ‘피해자 찾기’에 대해서도 “2차 가해의 전형적인 모습”이라고 지적하는 글들도 있었다.
청와대 국민청원 캡처

박 시장의 장례가 서울특별시장(葬)으로 치러지는데 대한 반감도 강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으로 사회적 거리두기를 권하는 시기에 대규모 인원이 몰릴 수 있는 시민분향소 설치 등은 부적절했다는 지적이다. 극우 성향 유튜버 ‘가로세로연구소’는 전날 서울행정법원에 서울특별시장을 멈춰달라는 가처분 신청을 냈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도 비슷한 내용의 청원이 올라와 이날 오후 3시 기준 53만여명이 동의했다.

서대문구에 사는 취업준비생 김모(30)씨는 “박 시장이 떳떳했다면 적극적으로 구명에 나섰을 것”이라며 “안희정 전 충남지사에 대한 ‘미투’ 재판에서 판사의 소극적인 판결을 문제삼았던 그가 속죄의 기회를 저버린 것이 화가 난다”고 말했다. 반면 노원구에 사는 자영업자 유모(57)씨는 “2004년 뇌물 수수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은 안상영 전 부산시장이 스스로 목숨을 끊자 부산광역시장(葬)을 치른 적이 있다”면서 “다른 방식으로 박 시장의 죄가 드러나기 전까지는 ‘성범죄자’ 딱지를 붙이면 안 된다”고 주장했다.

황윤태 기자 trul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