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통합당이 백선엽 예비역 대장의 별세 소식에 “백 장군님의 인생은 대한민국을 지켜온 역사 그 자체였다”며 “지금의 대한민국을 있게 한 위대한 삶이기도 했다”고 밝혔다. 백 장군은 6·25 전쟁영웅이자 일제강점기 당시 항일독립군 토벌로 앞장 선 간도 특설대의 장교 출신으로 논란에 서왔다.
김은혜 통합당 대변인은 11일 논평에서 “백선엽 장군의 명복을 빈다”며 “노병은 죽지 않는다. 단지 사라질 뿐이다. 백 장군님의 영면을 기원한다”고 밝혔다. 백 장군은 전날 오후 11시쯤 향년 100세로 별세했다.
김 대변인은 “‘살아있는 6.25전쟁 영웅’, ‘살아있는 전설’, ‘역대 주한미군사령관들이 가장 존경하는 군인’. 백 장군을 지칭하는 그 어떤 이름들로도 감사함을 모두 표현할 수 없을 것”이라며 6·25 전쟁 당시 백 장군의 역할을 평가했다.
백 장군은 1950년 6월 25일 전쟁 발발 이후 곳곳에서 전장을 지휘했다. 낙동강 전선을 사수한 다부동 전투, 평양 탈환 등 주요 전투에서 공로를 인정받았다. 1950년 8월 북한군이 남하해 낙동강 전선까지 후퇴한 뒤 치렀던 다부동 전투는 6·25 전쟁 중 가장 치열한 전투로 꼽힌다. 북한군은 경북 칠곡의 다부동에서 미군 부대를 피해 국군을 노렸다. 1사단장이던 백 장군은 회고록에서 “내가 앞장 서 싸우겠다. 만약 내가 물러나면 나를 먼저 쏘라”고 말한 뒤 권총을 들고 병사들과 돌격했다고 썼다. 백 장군은 이 전투에 승리하며 북한군의 대구 진출을 저지했다.
또 그가 지휘하는 1사단은 1950년 10월 미 1기갑사단과 합동작전으로 가장 먼저 평양을 탈환했다. 그는 과거 언론 인터뷰에서 “평양에 입성했을 때가 내 생애 최고의 날이었다”며 “1사단장으로 한미 장병 1만5000여명을 지휘하며 고향(평남 강서)을 탈환했다”고 말했다. 6·25 전쟁 활약으로 백 장군은 미군들 사이에서도 전쟁영웅으로 불렸다.
김 대변인은 “그렇게 대한민국을 지켜낸 전설을 이 시대는 지우려 하고 있다”라고 주장하며 “미래를 향한 전진보다 퇴행의 후퇴를 도모하는, 아픔의 시기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백 장군님의 울림은 크다”라고 덧붙였다.
백 장군이 논란의 중심에 선 이유는 ‘간도 특설대’ 장교 출신 전력 때문이다. 그는 1941년 만주군관학교를 졸업하고 만주군 소위로 임관했다. 1943년부터는 간도특설대에 복무했다. 간도특설대는 일제강점기 당시 반만항일항쟁에 나섰던 동북항일연군과 팔로군 토벌작전을 수행했다.
백 장군은 생전 1993년 일본에서 출간한 ‘대(對) 게릴라전-미국은 왜 졌는가’에서 “우리들이 추격했던 게릴라 중에는 많은 조선인이 섞여 있었다”며 “한국인이, 독립을 위해 싸우고 있었던 한국인을 토벌한 것이기 때문에 이이제이를 내세운 일본의 책략에 완전히 빠져든 형국이었다”라고 썼다. 그는 “그렇다고 하더라도 동포에게 총을 겨눈 것은 사실이었고 비판을 받더라도 어쩔 수 없다”라며 “우리가 전력을 다해 토벌했기 때문에 한국의 독립이 늦어졌던 것도 아닐 것이고, 우리가 배반하고 게릴라가 되어 싸웠더라도 독립이 빨라졌다고 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권중혁 기자 gree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