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볼lab] “눈뜨자 아침바다였다” 접촉 ‘0’ 차박여행의 발견

입력 2020-07-11 08:34 수정 2020-07-11 08:34
부산 기장에서의 여행 첫째 날 잠을 잤던 칠암항의 모습. 오른쪽은 둘째 날 갔던 일광해수욕장.

코로나 공포만큼 휴가에 대한 갈증도 컸다. 여름은 점점 다가오는데, 감염 확산세는 더해갔다. 주변에 휴가 계획을 물어봐도 대답은 “글쎄” 또는 “아마 제주도?” 정도. 요즘 트렌드라는 언택트(Untact·비대면) 여행은 대체 어떤 걸 말하는지 감도 안 잡혔다.

검색해보니 언택트 여행을 크게 3가지로 구분할 수 있었다. 차에서 숙식을 해결하는 ‘차박’, 차박과 비슷하지만 잠은 텐트에서 자는 ‘오토캠핑’, 호텔에서 여유를 즐기는 ‘룸콕’. 이렇게 하면 정말 접촉을 최소화하면서 휴가도 갈 수 있는 걸까. 이 셋 중 해본 적 없던 차박을 시도하기로 했다.

‘완벽한 비대면’을 추구하는 극한의 언택트 여행을 콘셉트로, 15년 지기와 함께 1~2일 부산 기장을 찾았다.

여행 일정표. 그래픽=전진이 기자

운전만 6시간…쉴 새 없이 떠들었다

벌써 3시간째 친구의 입은 쉴 줄을 몰랐다. 오전 9시 서울 중랑구 집에서 출발할 때부터 수다는 시작됐다. 각자 생활에 바빠 공유하지 못한 이야기가 많았다. 평일이라서 고속도로는 뻥 뚫려 있었고, 날씨도 맑았다. 친구의 목소리를 라디오 삼아 운전에 집중했다. 부지런히 달려야 저녁 전에는 도착할 터였다.

떠나기 전 세운 목표는 ‘대면접촉 제로(0)’였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 위험에서 완벽하게 벗어난 휴가를 꿈꿨다. 검색 결과 기장이 적합한 듯 보였다. 꽤 많은 음식점이 드라이브스루(DT) 판매를 도입했고, 차박 명소인 ‘칠암항’도 있었다. 칠암항은 바다와 가깝고 한적한 데다, 인근에 공중화장실도 있어 부산의 여러 차박 추천지 중 하나로 꼽힌다. 기장 철마면에 위치한 ‘치유의 숲’은 한국관광공사에서 선정한 ‘언택트 관광지 100선’에 들기도 했다. 또, ‘일광’ ‘임랑’ 등 유명 해수욕장까지 있으니 휴가지 분위기가 날 것 같았다.

부산까지 운전할 엄두가 안 났지만 그것도 여행 중 일부로 생각하기로 했다. 달리다 좋은 풍경이 나오면 속도를 늦췄다. 오랜만에 휴게소에서 식사도 했다. 대신 사전 주문 앱인 ‘오더헬프’를 사용했다. 휴게소 진입 전, 미리 앱으로 결제한 뒤 매장에서 음식을 받는 방식이다. 제휴 휴게소가 많지 않고 푸드코트 메뉴만 이용할 수 있다는 단점이 있지만 비대면 주문이 가능한 데다 대기할 필요도 없었다. 기장까지 약 6시간의 여정 동안 접촉한 사람은 0명. 시작이 좋았다.

1일 오후 부산으로 가던 중 이용한 휴게소 간편 주문 앱 '오더헬프'. 대기 시간을 줄일 수 있는 게 큰 장점이다.

1일 오후에 들어선 경주휴게소(부산방향) 푸드코트에는 10명 남짓한 사람이 있었다. 의자는 '거리두기'를 지킬 수 있도록 마주보지 않고, 한줄로 배치됐다. 이용객 모두 한칸씩 띄워 앉으며 접촉을 최소화했다.

고단했던 저녁식사…밥 좀 먹자!

밥 한 끼 먹기가 이렇게 힘들 줄이야. 어느덧 오후 6시30분을 넘긴 시각, 어두워지기 전에 이 ‘움직이는 숙소’와 ‘간이 부엌’을 뚝딱 만들어야 했다. 앞서 오후 3시쯤 첫 일정이었던 치유의 숲을 거닐 때만 해도 여유로웠다. 풀벌레, 산새 등 숲 소리가 듣기 좋았고 자연의 내음에 마음이 평화로웠다. 30여분 산책하는 동안 지나친 사람도 5~6명뿐이었다. 그런데 불과 3시간 만에 인적이 드문 칠암항의 방파제 앞에서 나와 친구 모두 울상을 짓고 있었다. 이 고난의 발단은 전날 밤이었다.

1일 오후 부산 도착 직후 방문한 기장 '치유의 숲'에서 이번 여행에 동행한 친구가 산책하고 있다. 나와 친구는 나무마다 걸려있는 '이름표'를 읽으며 풀벌레, 새소리, 숲 냄새 등에 대한 대화를 했다.

치유의 숲을 걷던 중 만난 계곡. 작은 돌멩이를 타고 졸졸 흐르는 소리, 큰 바위를 넘어 힘차게 떨어지는 소리가 섞여 산책하는 내내 음악처럼 들렸다.

여행 하루 전, 차박 경험이 많은 이모를 찾았다. 차에서 자는 건 난생처음이었던 터라 용품을 빌리고 유용한 정보도 얻기 위해서였다. 그렇게 ‘득템’한 차박 추천용품은 다음과 같다.

①(에어)매트: 차에서 잘 땐 좌석을 완전히 접고 그 위에 매트를 깔아야 한다. 두툼한 이불이나 일반 매트를 써도 괜찮지만, 에어매트가 있다면 차원이 다른 안락함을 느낄 수 있다.

②트렁크 텐트: 말 그대로 트렁크에 씌우는 텐트. 트렁크 문을 열고 이 텐트를 씌운 뒤, 틈이 생기지 않도록 고정 끈을 바퀴에 걸어주면 된다. 설치 방법에 따라 방충망, 보온 기능이 되고 완전히 닫아 사적인 공간도 만들 수 있다.

③접이식 의자·테이블: 야외에서 식사할 생각이라면 필수다. 특히 의자는 아무 데서나 펼 수 있어 휴식할 때 유용하게 쓸 수 있다.

④기타: 보조배터리는 대용량으로, 220V 소켓이 탑재된 제품을 선택하면 좋다. 휴대용 가스레인지는 꼭 챙겨야 하지만, 휴대용 식기세트나 불판은 필요 시 마련하면 된다. 직접 요리할 경우 아이스박스도 잊지 말자. 늦은 밤까지 깨어있을 생각이라면 차량 실내에 걸어둘 수 있는 전구도 준비할 것. 더위에 약한 편이라면 휴대용 선풍기를, 음악을 사랑한다면 블루투스 스피커를 챙기자. 물티슈도 넉넉히 준비해야 한다. 설거지가 곤란한 장소라면 물티슈로 닦은 뒤 집으로 가져와 마무리하면 된다. 벌레 퇴치 스프레이, 드라이샴푸(물 없이 쓰는 샴푸), 휴대용 테이블 등은 선택사항이다.

사진에 적힌 숫자에서 1번은 에어매트 대신 깐 유아용 바닥 매트. 그 위에 두툼한 이불을 깔아 푹신함을 더했다. 2번은 트렁크 텐트. 여러겹이 지퍼로 연결돼 있는데, 방충망만 남길 수도 있고 보온기능이 있는 면을 덧댈 수도 있다. 3번은 접이식 의자와 테이블. 4번은 기타 중에서 휴대용 가스레인지와 아이스박스다. 아이스박스 옆에 놓인 게 휴대용 테이블.

이 모든 용품을 차에 실을 때까지만 해도 자신 있었다. 차종별 좌석 폴딩(접기)법은 검색하면 자세히 나오지만, 가서 헤매지 않도록 이모부와 미리 연습도 했다. 이 과정에서 이번 차박여행에 쓰일 르노삼성 QM3는 앞좌석이 완전히 접히지 않는다는 것을 발견했다. 소형SUV라서 공간도 좁았다. 이모의 에어매트는 크기가 안 맞아 유아용 바닥 매트를 겹쳐 깔기로 하고, 이리저리 누워 최적의 자세도 찾았다. 이 정도면 숙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현실은 예상과 달랐다. 비릿한 냄새가 풍기는 항구의 구석에 차를 대고 보니 하늘이 흐릿했다. 바람과 파도가 거셌고, 쌀쌀하기까지 했다. 차 앞으로 바다를 막아선 방파제가, 뒤로 소박한 항구마을이 있었다. 그 가운데 길 위에는 우리와 낚시꾼 2명뿐이었다. 서둘러 좌석을 접고, 이불을 깔고, 트렁크 텐트를 설치하고, 의자와 테이블을 폈다. 장거리 운전 때문인지 금세 피곤해졌다.

차량 내부를 정리하던 중 촬영한 사진.

정리가 완료된 모습.

휴대용 의자와 테이블, 각종 저녁재료까지 꺼내놓은 모습.

저녁 준비를 시작하기 전 촬영한 사진. 주변에 드문드문 다른 차량이 세워져 있기는 했지만, 사람은 낚시꾼 2명을 빼면 전혀 없었다.

저녁 메뉴는 목살 바비큐와 김치볶음밥이었다. 대면접촉 제로라는 목표에 충실하게 식재료는 배송앱으로 준비해왔다. 이후 찾아온 휴식시간. 주변이 어두웠다. 마을 어귀에 있던 가게들이 하나둘 문을 닫고, 허름한 식당 한곳에서만 불빛이 새어 나왔다. 낚시꾼은 사라졌고, 길고양이 한 마리가 주위를 맴돌았다. 벌레를 쫓다가, 하늘 사진을 찍다가, 이모의 조언대로 물티슈로 불판을 닦고, 공중화장실에서 세수와 양치를 마쳤다. 쓰레기는 빈 상자에 모두 담은 뒤 집으로 돌아가 분리수거 하기로 했다. 차박 초보였던 터라 즐길만한 여유는 없었던 듯하다. 오후 8시40분에 불과했지만 졸음을 이기지 못하고 차에 누웠다.

저녁 메뉴였던 목살 바비큐와 소시지.

어두워진 칠암항의 모습.

어두워진 뒤 전구를 켠 차량 내부의 모습은 이렇다. 잠들기 전까지 이렇게 전구를 켜둔 채 책을 읽거나, 영화를 보는 등 여유시간을 즐기면 된다.

그 뒤로 1시간쯤 잠들지 못했다. 무서웠다. 주변에 사람이 한 명도 없었던 터라 온갖 생각이 들었다. 누가 차 안을 들여다보면 어쩌지, 문이 열리면 어떡하지…. 친구와 이런저런 걱정을 주고받다가 돌연 웃음이 터졌다. 종일 고생한 데다, 좁은 곳에서 몸을 부대끼며 그런 걱정을 하고 있는 상황이 어이없다 못해 웃기게 느껴졌다. 배가 아플 만큼 웃다가 잠들었던 것 같다. 늘 붙어 다녔던 15년 전처럼.

아침 파도에 모든 게 용서됐다

차에서는 늦잠을 잘 수가 없다. 해가 뜨고 나면 앞뒤 창문으로 빛이 쏟아져서다. 오전 6시30분쯤 원치 않게 눈이 떠졌다. 몸이 찌뿌둥했고, 머리가 아팠다. 트렁크를 열었다. 가장 먼저 파도소리가 들렸다. 언제 왔는지 모를 트럭 운전사가 분주히 짐을 싣고 내리는 소리도 들렸다. 그것 빼고는 사방이 조용했다. 파도가 방파제에 부서지는 모습을 한참 바라보다가 어제의 고단함이 눈녹듯 사라졌다. 그럴 수밖에 없는 풍경이었다.

여행 둘째 날 아침, 눈을 뜨자마자 트렁크를 열고 촬영한 풍경. 어슴푸레한 하늘과 방파제에 부딪히는 파도, 고요한 주변의 상황이 인상적이었다.

1시간쯤 지나 10여분 거리의 일광해수욕장으로 이동했다. 시내를 달리다 좁은 일방통행로로 들어서니 갑자기 해변이 펼쳐졌다. 잔잔한 바다와 모래사장, 음식점이 길게 늘어선 해수욕장의 모습은 바람이 거칠던 칠암항과 다른 분위기였다. 전날 막 개장해서인지 한적했지만, 캠핑 중인 텐트 2개가 보였다. 튜브나 파라솔 대여시설도 있었다. 공용샤워장도 열려 있어 차박 입문자에게 적합한 장소 같았다.

일광해수욕장은 서둘러 온다면 모래사장의 바로 앞에 차를 댈 수 있어 좋다. 짐을 꺼내기도 편하고, 잠시 차 안으로 들어가 휴식을 취할 수도 있다. 나는 모래사장에서 의자에 앉아, 친구는 차 안에 누워 개인 시간을 보냈다.

일광해수욕장의 모습. 이곳에서 휴대용 가스레인지와 주전자를 꺼내 아침으로 컵라면을 먹었다.

따뜻한 날씨가 반가웠다. 의자부터 펴고, 눕다시피 앉아 햇살을 온몸으로 받았다. 발가락 사이로 모래의 까슬한 감촉이 느껴졌다. 발장난을 치다가, 또다시 수다를 떨다가, 라면으로 허기를 달랬다. 이어진 개인 시간. 친구는 차에서 낮잠을 자고, 나는 읽고 싶던 책을 꺼냈다. 태양이 검은색 바지 위로 쏟아져 다리가 뜨거웠지만, 그래도 한참 동안 모래사장에 있었던 것 같다. 캠핑객 2팀뿐인 해변을 마음껏 누리는 기분이 좋았다. 그때만큼은 하늘과 바다가 전부 내 것이 된 것 같았다.

점심은 지역 맛집 중 한 곳으로 꼽히는 ‘어느 멋진 날’에서 DT 방식으로 전복밥 등을 구입해 해결했다. 기장군에서 ‘사회적 거리두기’ 기간 음식점·카페 등을 상대로 DT 판매를 독려했고, 그중 몇 곳은 아직도 그 방식을 유지하고 있었다. 전화로 주문한 뒤 음식점 주차장에서 대기하면, 종업원이 나와 카드 또는 현금을 받아간다. 매장 이용도 가능하다. 우리는 대면접촉을 피해야 했던 만큼 일광해수욕장으로 돌아와 바다를 보며 먹었다. 이후 오후 1시쯤 서울로 출발했다.

'어느 멋진 날' 주차장에서 음식을 받는 모습. 음식을 들고 나온 직원은 카드를 받아가 매장 안에서 결제한 뒤, 다시 카드를 가져다줬다.

'어느 멋진 날'에서 주문한 전복밥. 이때는 접이식 테이블 대신, 침대 등에 올려둘 때 사용하는 휴대용 테이블을 꺼냈다. 이렇게 작고 가벼운 테이블이 있으면 간단히 아침이나 간식을 먹을 때 편하다.

일광해수욕장에서 점심 식사를 마치고, 서울로 출발하기 전 들렀던 드라이브스루 카페인 'HB커피앤커피공방'. 이곳도 전화로 미리 주문한 뒤, 카페로 가 음료를 받으면 된다. 음료를 받는 장소는 사진 아래쪽에 노란색 점선으로 표시된 곳.

노란색 점선 속 손님들이 서 있는 곳이 커피 받는 위치.

우리의 여행은 느리고 잔잔했지만, 이야기로 가득했다. 다른 사람과 접촉할 수 없어 오롯이 서로에게 집중한 시간이었다. 서로의 일거수일투족을 알던 때처럼 실없는 농담을 주고받다가, 추억을 꺼내다가, 말 못 했던 고민을 털어놨다. 힘쓰는 걸 유독 힘들어했던 친구는 ‘언택트 차박’을 적극 추천할진 모르겠다고 했지만, 나는 꼭 가보라고 말하고 싶다. 혼자라도 좋다. 바이러스 공포로 인한 고립 속에서 새로운 즐거움을 만끽할 테니까.

[해볼lab]은 ‘해볼까?’라는 말에 ‘실험실’이라는 뜻의 ‘lab’을 조합해 만든 단어입니다. 국민일보 기자들이 직접 체험해보고, 그 감상을 솔직히 담았습니다.

글·사진=박은주 기자 wn1247@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