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현이가 힘들어 할 때마다 김규봉 감독과 장 선수의 말만 믿고 이겨내 보라고 잔소리하고 타이른 것이 한으로 남았습니다.”
고(故) 최숙현 선수의 부친 최영희씨는 묵살됐던 딸의 절규를 남은 평생에서 가슴속 깊숙한 곳으로 묻고 살아야 한다. 최씨는 10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어디 하나 호소할 곳도 없이 극단적으로 선택을 할 수밖에 없던 비극적 사건이 더 이상 발생하지 않아야 한다”며 스포츠팀 내 폭력·학대 피해자 보호 제도 마련을 촉구했다.
최 선수의 죽음을 세상에 알린 미래통합당 이용 의원은 국민체육진흥법을 개정한 ‘최숙현법’ 발의를 약속했다.
최씨는 이 의원과 동석한 국회 소통관 단상에서 “숙현이가 어릴 때부터 스포츠에 대한 의지와 열정이 강했다. 경북체고를 졸업하고 경주시 트라이애슬론팀에 입단해 각 대회에서 메달을 획득했고, 트라이애슬론 청소년대표와 국가대표까지 지낼 만큼 스포츠를 사랑했다”며 “자식이 좋아하고 잘하는 것을 하지 말라고 막을 수 있는 부모가 어디에 있겠는가. 그저 뒤에서 받쳐주는 것이 바로 부모의 마음이다. 딸이 좋아하는 것을 보고 사는 게 삶의 유일한 낙이자 행복이었다”고 기억했다.
이어 “경주시 트라이애슬론팀이 숙현이에게 지옥과 같은 세상이었다는 사실을 진작 알았더라면 절대 보내지 않았을 것이다. 숙현이가 힘들어할 때마다 김 감독과 장 선수의 말만 믿고 이겨내 보라고 잔소리하고 타이른 것이 가슴에 한이 맺힌다”며 “숙현이의 비극적인 선택 이후 하루하루 끓어오르는 분노를 참느라 밤잠을 설치고 있다. 미안하다는 사과조차 없이 가혹행위를 한 적이 없다고 부인하는 가해자들은 엄중한 법적 처벌을 받아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최씨는 “이 의원에게 간절히 부탁드렸던 것이 바로 숙현이와 같은 억울한 피해자가 두 번 다시 발생하지 않도록 법을 만들어 달라는 것이었다”며 “‘숙현이법’이 반드시 국회에서 통과될 수 있도록 힘을 모아 달라”고 호소했다.
최씨는 가해자에 대한 처벌 이외에 경주시 트라이애슬론팀 선수 모두에게로 향하는 일부 비판 여론을 경계했다. 최씨는 “숙현이를 벼랑 끝으로 몰고 간 가해자들을 제외하고 팀 전체에 책임을 물어 해체하라는 것이 절대로 아니다”라며 “국가의 지원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열악하게 훈련하는 대표적 비인기종목인 트라이애슬론의 활성화를 위해 경주시청팀은 건재해야 한다. 숙현이도 대한민국에서 세계적인 트라이애슬론 선수가 나오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을 것”이라고 했다.
최 선수는 생전 소속팀 중 하나였던 경주시 트라이애슬론팀에서 자신에게 가해진 폭행·폭언·학대를 호소하며 지난 6월 26일에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긴급현안 질의 자료를 보면 최 선수와 가족은 지난 2월 경주시청, 3월 대구지방경찰청·검찰청, 4월 대한체육회 클린스포츠센터, 6월 대한철인3종협회에 피해를 호소했다. 최 선수의 극단적인 선택은 어느 기관·단체로부터 스스로를 보호를 받고 가해자를 처벌할 수 있다는 확인을 얻지 못한 결과로 볼 수 있다.
대한철인3종협회 스포츠공정위원회는 지난 6일 최 선수를 죽음으로 내몬 핵심 가해자로 지목된 경주시 트라이애슬론팀 김 감독과 주장 선수 장모씨를 영구제명 조치했다. 가해 혐의를 받고 있는 같은 팀 선수 김모씨에 대해서는 10년간 자격정지의 중징계를 내렸다. 하지만 이 징계들은 최 선수가 세상을 떠나고 열흘 만에 이뤄졌다.
이 의원이 대표 발의를 준비하는 ‘최숙현법’은 피해자 보호를 강화하는 안을 담고 있다. 이 의원 역시 2018 평창동계올림픽 봅슬레이·스켈레톤 국가대표 감독을 지낸 체육인 출신이다.
이 의원은 “현행 국민체육진흥법상 체육계 성폭력 및 폭력 문제 전담기관인 스포츠윤리센터 설립에 관한 규정이 제20대 국회에서 통과돼 오는 8월부터 운영될 예정이지만, 피해자 보호와 권한이 매우 제한적”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대표 발의할 국민체육진흥법 개정안을 통해 긴급 보호를 요하는 신고자나 피해자를 위해 임시 보호시설을 설치·운영하고, 2차 가해를 금지하게 하겠다”며 “폭력이나 성폭력 신고에 대해 지체 없이 피해자를 보호 조치하고, 즉시 조사에 착수하도록 할 것이다. 체육단체 및 사건 관계자에게 조사 권한을 주고, 방해할 경우 징계를 요구할 수 있도록 조치하겠다”고 설명했다.
김철오 기자 kcopd@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