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치는 비싸게, 관리는 초라하게…흉물 전락한 거리 조형물

입력 2020-07-10 06:00
#1. 지난 9일 낮 서울 종로구 을지로. 한 빌딩 뒤에 쓰레기봉투가 산더미처럼 야적돼 있다. 바로 옆에는 돌과 강철을 재료로 한 추상 조형물이 세워져 있다. 조형물이 마치 쓰레기를 버리는 ‘전봇대’ 취급을 받고 있는 셈이다.
9일 서울 중구 을지로의 한 빌딩 뒷편에 설치된 조형물에 쓰레기가 야적돼 있다. 최현규 기자

#2. 전날 저녁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프라자 앞. 추상 형태의 조형물 옆에 바짝 붙은 채 형광색 광고판이 몇 개씩 설치돼 있다. 심지어 광고판 한 개는 좌대 안까지 침범해 조형물을 가리고 있다. 조형물에는 광고 스티커를 붙였다 떼어낸 흔적도 흉하게 남아 있다.
지난 8일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의 한 상가 앞에 설치된 조형물 에 상인들이 내놓은 광고판들이 바짝 붙어 있다. 주민 제공

사후 관리 법적 명문화 돼야

거리 환경을 개선하고 예술가들의 창작 활동을 돕기 위해 1972년 문화예술진흥법 9조에 따라 1만㎡ 이상 신·증축 건축물에 대해 건축비의 0.7%를 미술품을 설치하도록 의무화한 ‘건축물 미술작품’ 제도(0.7%법)이 도입된 지 48년이 됐다. 특히 권장 사항이던 미술품 설치는 1995년부터 의무화되면서 이전까지 135점에 불과하던 미술품 숫자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 현재 전국에 1만9326점이나 된다. 문제는 사후 관리가 제대로 안되면서 이처럼 방치되거나 흉물로 전락하는 조형물이 전국 곳곳에 산재해 있다는 점이다.

외국의 경우는 어떨까.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발주한 ‘건축물미술작품제도개선연구’(2014)에 따르면 한국의 ‘0.7% 법’과 비슷한 제도를 시행하는 미국 캐나다 영국의 주요 주와 카운티, 시에서는 처음부터 미술품 제작 금액의 일정 비율을 떼서 유지 보존과 관리 행정 비용에 충당하도록 하고 있다. 우리의 경우 법령에 한번 설치된 미술품에 대한 사후 관리 규정이 없다.

서울시 관계자는 “건축물 미술작품은 공공 영역에 나온 것인 만큼 유지 관리 부담까지 건축주 개인에 지우는 것은 과하다고 판단한다”며 “법령에 이 부분이 명기가 될 수 있도록 문체부에 조례 제정을 건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건물 앞 옹색하게 1점씩…대안은 없나

건축물 미술작품은 대개 좌대 위에 조각을 ‘꽂아두는’ 수직 구조를 취하거나, 회화의 경우도 벽화가 대부분이어서 식상하다는 평가가 많다. 현대미술의 장르와 기법이 다양화되고 있지만 거리 조형물 제작 문법은 48년 전에 비해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조각가 A씨는 “건축주들이 미술품을 설치할 때 4억원을 해야 할 경우라도 몇 개씩 쪼개서 1억원짜리 작품을 하는 걸 선호한다. 대행사와 4:6으로 나누면 6000만원 정도가 작가 몫이다. 작가가 2000만∼3000만원이라도 남기려면 실제 제작에 들어가는 돈은 몇 천 만원 밖에 안 된다”면서 “그런데도 건축주는 웅장한 느낌이 나게 높이 4m 이상을 요구하는 경우가 많다보니 형태나 재료가 뻔해질 수 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공공미술 평론가 박수진씨는 “대개 작품들이 건물 앞에 하나씩 표지석처럼 놓여 있다. 그러다보니 뻔한 느낌을 준다”면서 “건축물 미술작품은 개인 소유라도 공적 공간에 나와 있는 만큼 그 지역과 장소의 특성과 어우러져야 하는데, 그러지 못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어떤 작품은 차라리 없애고 그 자리에 나무를 심는 게 낫겠다 싶은 장소도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조형 작업의 다양화를 위해서는 ‘1 건축물+1 조형물’ 틀에서 벗어나 좀 더 넓게 지역 단위로 조형 물 작업을 할 수 있도록 법령 개정이 이뤄져야 한다”고 제안했다. 건축주가 개인 건물 앞이 아닌 공공용지에 미술품을 설치할 경우 인센티브를 부여하는 등 시행 과정에서 지자체에 재량권을 부여하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다.

미술품은 건물과 ‘백년해로’?…생애주기 필요

부부도 이혼하는데, 건축물과 미술작품은 평생 한배를 타야할까. 현행 법규에는 승인받은 작품이라도 새로운 심의 절차를 통해 위치나 작품 변경은 가능하다. 그러나 철거만 하는 경우는 이것이 법적으로 보장이 되지 않는다. 이에 따라 우리나라에도 조형물 일몰제 혹은 생애주기 제도가 도입돼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미국 워싱턴 주의 경우 미술작품 생애 주기를 단기 (0-5년), 중기(5-15년), 장기 (15-30년)으로 나누어 작품 철거가 가능하도록 하고 있다. 다만 철거 시 그냥 작품을 없애는 게 아니라 '처분 정책(Deaccession Policy)'를 둠으로써 판매와 기증 등 다양한 방식으로 재활용할 수 있도록 유도한다.

정부 책임론도 제기된다. 박삼철 서울디자인재단R&D센터장은 “선진국은 미술을 도시 활성화의 매개로 활용하고자 이 제도를 출발시켰다. 거리 조형물을 미술 작품 그 자체로서만 보지 않는다는 뜻이다. 우리는 공공미술에 대한 정부의 인식이 부족해 정부가 흉내만 내고 민간에 의무만 지워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정부에서 이런 제도가 갖는 장점을 보여줄 수 있는 좋은 사례를 발굴해 민간에 보여줘야 했는데, 거꾸로 정부나 지자체가 발주한 공공 조형물에서 논란을 야기하고 실정”이라고 비판했다. 세종시 국세청의 흉물 논란을빚은 이른바 ‘저승사자’상, 서울 강남구청이 코엑스에 세운 뒤 대중문화를 유치하게 상징했다는 비판을 들은 ‘강남스타일’ 등이 그러한 예이다.
서울 중구 덕수궁 옆 도시건축전시관 옥상광장에 설치한 이른바 ‘첨성대’ 작품. 성공회 성당을 가리는 엄청난 크기와 주변 맥락과 상관없는 뜬금없는 이미지로 인해 구설에 오르기도 했다.

최근에는 덕수궁 옆 도시건축전시관 옥상광장에 설치한 이른바 ‘첨성대’ 작품이 성공회 성당을 가리는 엄청난 크기와 주변 맥락과 상관없는 뜬금없는 이미지로 인해 구설에 오르기도 했다. 이곳은 서울시가 국세청 남대문별관을 허물고 건물터를 시민들에게 돌려준다며 조성했다.

손영옥 미술·문화재전문기자 yosoh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