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덩치 큰 그사람?” 하더니…다들 경주 ‘팀닥터’ 알고 있었다

입력 2020-07-10 00:05 수정 2020-07-10 00:05
고(故) 최숙현 선수 사망 사건의 가해자로 지목된 김규봉 경주시청 트라이애슬론팀 감독이 지난 6일 서울 송파구 올림픽파크텔에서 열린 대한철인3종협회 스포츠공정위원회에 참석하고 있다. 오른쪽 사진은 최 선수가 가족에게 남긴 마지막 메시지. 연합뉴스

경주시체육회가 한국 트라이애슬론(철인3종경기) 국가대표 고(故) 최숙현 선수를 죽음으로 내몬 주요 가해자인 팀 닥터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는 증거가 나왔다. 시체육회 측은 팀 닥터의 존재를 몰랐다고 일관되게 주장해왔다.

국민일보가 9일 전국체육대회(전국체전) 데이터를 관리하는 대한체육회 체전운영시스템을 확인해본 결과 경주시청 트라이애슬론팀 팀 닥터 안모씨는 2018년과 2019년 전국체전에 모두 경북도 소속 임원으로 이름이 등록돼있었다. 경주시는 전국체전 출전 때 경북도에 편입된다. 이 대회에는 안씨뿐만 아니라 최 선수와 가해자로 지목된 김규봉 감독, 주장 선수 장모씨도 참가했다.

시스템에는 안씨의 이름과 철인3종경기 ‘각부주무’라는 직위 정보가 나란히 적혀 있다. 각부주무란 감독·코치 등 지도자 외에 팀을 구성하는 인원을 말한다. 행정직원이나 트레이너, 운동처방사(팀 닥터) 등도 여기에 포함된다.

또 안씨의 이름은 대한체육회가 체전 폐막 후 발간하는 백서인 ‘참가 선수단명단 및 종목별 경기결과’에도 올라가 있었다. 선수, 감독, 코치뿐만 아니라 대회에 참가하는 행정직원들의 이름까지 망라됐다. 책자에도 안씨는 경북도 소속 선수단 일원으로, 직위는 각부주무로 기록돼 있다.

대한체육회 체전참가시스템에 등록된 경주시청 트라이애슬론팀 '팀 닥터' 안씨의 정보. 대한체육회 홈페이지 캡처

체전시스템에 이름을 올리기 위해서는 시·도체육회의 최종 검토와 확인이 필요하다. 안씨의 이름이 등록됐다면 경주시체육회가 안씨의 존재를 모를 수 없는 구조인 것이다. 등록의 최종 승인 권한은 대한체육회에 있지만 지역별 명단은 시·도체육회에서 취합하고 검토해 확정되기 때문이다. 이 과정을 거쳐 ID카드가 발급돼야 경기장 출입이 가능해진다.

시체육회가 안씨 존재를 알았다면 무자격자를 팀 닥터로 체전에 참가시킨 과정을 둘러싸고 비판이 커질 수 있다. 경주팀에서 팀 닥터로 일해온 안씨에게 의사면허나 물리치료사 자격증이 없다는 사실은 확인됐다. 따라서 시체육회에는 자격 확인을 거치지 않은 채 체전 참가명단에 안씨를 포함시킨 책임이 있다. 만약 확인을 거쳐 안씨에게 자격증이 없다는 사실을 알았다면 시체육회가 그를 비호한 셈이라 더 큰 논란이 예상된다.

경주시청팀처럼 무자격 운동처방사를 깜깜이로 채용하는 경우는 체육계에서 극히 이례적인 일로 평가된다. 부산시체육회의 경우에는 계약직 트레이너 4명을 공개채용해 선수 체력관리와 회복을 돕는 것으로 알려졌다.

체육계에서는 시체육회나 협회가 안씨의 존재를 모를 수 없다고 지적한다. 지역의 한 철인3종경기 고위인사는 이날 국민일보와 통화에서 “체전 참가자로 등록됐고 백서에까지 이름을 올렸다면 체육회나 협회가 팀 닥터의 존재를 당연히 모를 수 없다”고 말했다. 또 다른 지역 체육회 관계자 역시 “경북의 트라이애슬론 실업팀은 경주시청팀이 유일하고 선수·감독·팀 닥터까지 10명 수준에 불과하다는 점에서 시체육회가 안씨 존재를 몰랐을 리가 없다”고 밝혔다.

여준기 경주시체육회장이 지난 8일 경북 경주시 동부동 대구지방검찰청 경주지청에서 고(故) 최숙현 선수 사망 사건과 관련해 경주시청 트라이애슬론팀 팀 닥처 안모씨를 성추행과 폭행 혐의로 고발하기 위해 청사로 들어서고 있다. 연합뉴스

반면 사건과 관련된 기관들은 안씨를 몰랐다고 일관되게 주장하고 있다. 시체육회에 팀 운영을 위탁한 경주시 관계자는 “팀 닥터의 존재와 체전참가시스템에 등록돼 있다는 사실을 몰랐다”며 “다만 위탁운영을 하기 때문에 시가 자세한 내용까지 알지는 못하더라도 관리·감독의 책임이 있다는 점을 인정한다”고 말했다.

여준기 경주시체육회장 역시 사건이 불거진 뒤 여러 매체를 통해 안씨를 모른다고 주장해왔다. 여 회장은 지난 3일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도 “(안씨와) 일면식도 없는 관계”라고 밝힌 바 있다.

경주시철인3종협회 관계자는 통화에서 “안씨를 전혀 모른다. 얘기해줄 부분이 없다”면서도 “시합장에서 경주시청팀 유니폼을 입은 덩치 큰 남성을 기억한다. ‘뒤늦게 그 사람이 팀 닥터였구나’ 하고 추측했다”고 덧붙였다.

박장군 기자 genera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