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원 댓글 사건에 빗댄 추미애… ‘편파 수사’ 앙금은 남았다

입력 2020-07-09 17:47

윤석열 검찰총장이 9일 추미애 법무부 장관의 수사 지휘를 사실상 받아들이면서 한동안 얼어붙었던 양측의 갈등이 표면적으로는 봉합되는 모양새다. 그러나 앙금은 여전히 남았다. 이번 사태를 겪은 검찰 구성원들은 채널A 기자와 한동훈 검사장의 유착 의혹 수사에 대해 ‘검·언 유착’ ‘권·언 유착’ 등 각자의 시각을 제시하며 서로를 비판했고, 검찰 안팎에서는 결과적으로 “검찰 조직에 생채기를 남겼다”는 자조 섞인 목소리가 나온다.

윤 총장이 이날 추 장관의 수사 지휘를 수용함에 따라 개인적으론 지난 2013년 국정원 사건 수사팀장 때 직무배제를 당한 뒤 또다시 사건에서 배제되는 경험을 하게 됐다. 추 장관은 입장문에서 “국정원 사건 수사팀장 당시 총장이 느꼈던 심정이 현재 이 사건 수사팀이 느끼는 심정과 다르지 않다”며 서울중앙지검 수사팀을 두둔했다. 그러면서 “총장이 깨달았다면 수사의 독립과 공정성을 훼손하지 않도록 함이 마땅하다”고 강조했다. 검·언 유착 의혹 사건 처리를 두고 대검찰청과 수사팀의 입장이 첨예하게 대립해온 상황에서 추 장관이 끝내 한쪽 손을 들어준 셈이다.

그간 검·언 유착 의혹 사건 수사가 진행되면서 검찰 내부는 둘로 갈라졌다. 수사팀과 대검의 ‘동상이몽’이 시초였다. 지난달 채널A 이모 전 기자의 구속 영장 청구 방침과 전문수사자문단 소집 결정 등을 두고 양측의 의견은 극명히 엇갈렸다. 대검은 “지휘에 불응하고, 증거를 대지 못한다”는 입장인 반면, 수사팀은 “대검의 지휘를 받아 사전·사후 보고가 이뤄지고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수사 편파성 논란에 대해서도 수사팀은 “치우침 없이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는 입장인 반면, 대검 등에선 “편파적이다”고 보는 시각이 많았다.

수사팀과 지휘부 간의 이견은 검찰 전체의 내홍으로 번졌다. 검찰 내부망엔 실체 규명을 촉구하는 구성원들의 목소리가 터져나왔다. 수사를 직접 담당하는 정진웅 서울중앙지검 형사1부장과 지휘부 실무진인 박영진 대검 형사1과장은 수사 관련 견해를 이례적으로 이프로스에 적기도 했다.

향후 수사에서 실체 규명은 당면 과제로 남았다. 윤 총장이 지휘에서 손을 떼고 서울중앙지검에서 수사를 맡도록 했으나 공정성 시비는 여전히 남아 있어서다. 검찰의 한 관계자는 “한 검사장과의 공모 증거를 밝히라는 지휘부의 말에 수사팀은 응답이 없었는데, 과연 이 전 기자 영장 청구의 근거가 무엇인지 검찰 내 설득도 필요해 보인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끝까지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에게 이 사건을 맡기는 이유가 무엇인지 모르겠다”고 했다.

검찰 내부 분위기를 다잡을 만한 동력이 필요하다는 견해도 나온다. 기수를 막론하고 검찰 내부에선 “정의가 무엇인지 모르겠다” “조직을 떠나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는 탄식이 흘러나온다. 한 검찰 출신 변호사는 “변호사 업계 상황을 묻는 동기, 후배들이 부쩍 늘었다”며 “무력감을 느낀 이들이 많아졌다”고 씁쓸함을 드러냈다. 한 검찰 관계자는 “내홍 속에서 주요 사건 처리가 늦어지고 있다”며 우려를 표했다. 유상범 미래통합당 의원은 이날 “법무부 장관은 검찰이 어떠한 외압에도 굴하지 않고 소신껏 수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며 추 장관을 직권남용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구승은 기자 gugiz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