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진핑 국가주석 체제의 중국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세계적인 창궐과 미·중 디커플링(탈동조화) 흐름 속에서 국영기업 중심의 국가 경제 시스템을 강화하기로 했다.
미국은 막대한 정부 보조금 혜택을 받는 국영기업 개혁을 줄기차게 요구해 왔으나 중국은 코로나19 등을 빌미로 오히려 국영기업에 힘을 실어주면서 그런 요구와 배치되는 노선을 고수하는 것이다.
9일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 등에 따르면 중국의 개혁 작업을 총괄하는 공산당 중앙전면개혁심화영도소조는 지난달 30일 시 주석 주재로 회의를 열고 중국 경제에서 국영기업의 역할을 강화하는 3개년 계획을 승인했다.
이는 미국과 유럽연합(EU), 일본 등 선진국들이 국영기업 보조금은 불공정한 무역관행이라며 개혁을 줄기차게 요구하고 있음에도 중국은 이를 중단할 계획이 없다는 분명한 의지로 해석된다.
영도소조는 회의에서 “향후 3년은 중국의 국영기업 개혁에 중요한 시기가 될 것”이라며 “우리는 국영기업에 대한 당의 총체적인 지도력을 강화하고 사회주의 시장경제라는 이념을 고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국영기업은 중국 특색 사회주의의 중요한 물질적·정치적 기반으로, 당의 통치와 국가 부흥을 위한 핵심 축이자 힘”이라며 “우리는 국영기업들의 경제적 경쟁력, 혁신 능력, 리스크 통제 및 극복 능력을 향상시킬 것”이라고 밝혔다.
중국 국영기업들은 비효율적인 운영으로 개혁의 대상이었으나 코로나19 사태를 겪으면서 바이러스 확산을 통제하고 비상 응급 물자 공급과 공공인프라의 원활한 운영 등에서 신뢰를 얻어 위상이 높아졌다고 SCMP는 전했다.
중국은 또 미·중 무역 및 기술 전쟁에서 국영기업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중국 국유자산감독관리위원회(SASAC) 국영기업들이 미국과의 치열한 기술 경쟁에 맞서기 위해 총체적인 국가 혁신 메커니즘의 최전선에 나섰다고 지난달 밝혔다. 위원회 관계자는 “중앙정부 소유 기업은 높은 수준의 기술혁신 달성을 목표로 삼아야 한다”고 말했다.
중국의 국가 경제는 정부의 지원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효율성이 떨어진다는 분석이 나온다. 중국 국영기업들은 지난해 총 1조5000억 위안(256조원)의 순이익을 올렸는데 자산 수익률은 0.7%에 불과했다.
중국 지방정부들은 ‘혼합 소유제 개혁’을 통해 민간자본과 외국인 자금을 국영기업에 끌어들이려고 애를 쓰지만, 부분 민영화로 국영기업의 효율성이 향상되기는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시카고 폴슨 연구소의 쑹허우저 연구원은 “시 주석의 국영기업 강화 계획은 국영기업의 효율성을 높일 어떠한 대책도 담지 못했다”며 “중국 정부는 여전히 국영기업을 회생시킬 효과적인 방법을 찾지 못했고 혼합 소유제가 도움이 된다는 증거도 없다”고 평가했다.
상하이 사회과학원의 량중탕 연구원은 정부의 2013년 개혁 청사진에서 제시된 것처럼 국영기업의 진정한 개혁은 시장 지향적이어야 하는데 코로나19와 미·중 무역전쟁으로 그 속도가 느려졌다고 지적했다.
중국은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산하에 약 13만 개의 국영기업을 소유하고 있는데, 그중 페트로차이나, 국가전망공사, 차이나모바일 등 97개 대기업은 SASAC에 직접 보고하는 주요기업으로 지정돼 있다.
국유은행 등을 제외한 중국 국영기업은 2018년 말 자산총액 210조 위안(29조9000억 달러)으로 이 중 80조 위안은 중앙정부가, 나머지는 지방정부가 관할하고 있다.
중국 국영기업들은 정부 인허가나 은행 융자, 토지 이용 등에서 혜택을 누리기 때문에 외국 기업 뿐아니라 중국 내 민간기업과의 불공정한 경쟁을 유발한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앞서 중국 공산당 지도부인 중앙위원회는 올들어 국영기업 내 당 조직 결성을 의무화하고, 국영기업 경영과 관련한 당 조직의 권한과 책임을 규정하는 등 당의 국영기업 지배를 강화하는 내용의 문건을 작성해 발행했다.
문건에 따르면 모든 국영기업은 회사 정관에 당 조직 건설을 명시해야 하며, 3명 이상의 당원을 고용한 국영기업은 반드시 당 조직을 설립해야 한다.
경영상의 중요한 결정은 이사회나 경영진에 회부되기 전에 당 조직의 논의를 거치도록 했다. 당 서기와 이사회 의장은 동일 인물이어야 하고 주요 경영진 내에는 당 부서기가 포함되도록 했다.
베이징=노석철 특파원 schro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