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시모 자네티(58) 경기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상임지휘자는 지난달 30일 한국에 입국해 곧장 경기도 수원의 한 레지던스로 향했다. 한국 관객과의 음악적 교감을 위해서라면 2주 간의 자가격리쯤은 감수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는 그는 질병관리본부와 수백통의 전화를 주고받으며 오는 18~19일 경기필 대면 공연 성사에 총력을 기울였다.
자네티는 “움직이지 못하고 2주 동안 갇혀 있다는 게 쉽지는 않다”면서도 “경기필이 관객과 약속한 공연을 무사히 마치기 위해 한국에 왔다. 내가 두려워하는 것은 (바이러스 보다) 우리 삶에서 예술의 가치가 완전히 잊히는 것”이라고 힘줘 말했다.
이 같은 이야기가 풀어진 곳은 9일 유튜브로 진행된 경기필 온라인 기자간담회 자리였다. 14일 정오 자가격리가 해제되는 자네티는 코로나19 확산 이후 경기필의 첫 대면공연에 관한 비전을 공유하기 위해 간담회 자리를 마련했다. 지명도 높은 해외 아티스트들이 최근 공연을 위해 입국한 사례는 더러 있었으나 이처럼 자가격리 중 간담회를 연 사례는 자네티 감독이 처음이다.
이탈리아 출신 자네티는 베를린 콘체르트하우스 오케스트라, 영국 버밍햄 심포니 등 유럽 유수의 심포니에서 활약해온 세계적 명장이다. 경기필 창단 21년 만의 첫 외국인 상임지휘자로 그가 취임한 2018년 9월 이후 경기필은 단원 기량과 레퍼토리 모두 풍성해졌다는 평가를 받았다. 자네티 감독은 “바이러스 전파 위험을 낮추면서 공연을 올리기 위해 이탈리아에서 3일 내내 도서관에 틀어박혀 오케스트라 규모를 줄일 방법을 연구했다”며 “우리 팀(경기필)과 나 모두 (코로나19를 이겨내고) 공연을 올릴 준비가 됐다”고 자신했다.
18~19일 각각 경기아트센터와 서울 예술의전당 무대에 오르는 ‘모차르트&베토벤’에도 이런 노력들이 배어있다. 거리두기 좌석제를 적용한 데 이어 당초 70명의 합창단이 출연하는 말러 교향곡 3번 대신 모차르트·베토벤의 소규모 편성곡으로 프로그램을 대체했다. 팀파니 트럼펫 클라리넷을 뺀 간소한 규모의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27번과 베토벤의 현악 4중주 16번을 오케스트라 버전으로 선보일 예정이다. 자네티는 “두 곡은 모두 모차르트와 베토벤의 음악인생 마지막을 장식한 곡이라는 공통점이 있다”며 “삶과 죽음의 대비를 통해 새로운 의미의 평안을 드릴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1월 베를린 공연을 끝으로 반년 넘게 무대에 서지 못했다는 자네티는 현재 경기필의 야외 공연과 온라인 스트리밍 공연 등을 여러 방안을 강구 중에 있다.
그렇다면 세계적인 마에스트로가 생각하는 코로나19 시대 ‘음악’의 역할은 무엇일까. 자네티는 베토벤 최후의 작품 4악장에 적힌 메모, ‘괴로워하다 힘들게 내린 결심(Der Schwergefasste Entschluss), 그래야만 할까(Muss es sein)?, ‘그래야만 한다(Es muss Sein)’를 인용해 답을 갈음했다.
“제게 이 문장은 ‘음악이어야 하는가?’ ‘그렇다. 음악이어야 한다’는 의미로 다가옵니다. 음악은 곧 삶일 수밖에 없어요. 우리는 (음악을 통해) 일상으로 돌아가고 우리 영혼의 필수적인 양식을 채울 수 있습니다.”
강경루 기자 ro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