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븐 비건 미 국무부 부장관이 북·미 비핵화 협상의 북한 측 핵심 실무자인 최선희 외무성 제1부상을 이례적으로 맹비난했다. 최 제1부상이 낡고 부정적인 생각에 사로잡혀 창의적 해법 모색을 방해했다는 것이다. 최 제1부상을 북한이 매우 싫어하는 대북 강경파 존 볼턴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에 빗대기도 했다. 미국과 마주할 생각이 없다는 최 제1부상을 비판함으로써 북한의 대화 복귀를 촉구한 것으로 해석된다.
한국을 방문 중인 비건 부장관은 8일 오후 주한 미국대사관을 통해 배포한 입장문에서 최 제1부상과 볼턴 전 보좌관을 겨냥해 “두 사람 모두 낡은 사고방식에 갇혀 있고 오로지 부정적인 것과 이뤄낼 수 없는 일에만 집중하고 있다”며 “무엇을 이뤄낼 수 있을지 창의적으로 생각하지 않는다”고 비난했다. 북·미 비핵화 협상이 교착 상태에 빠진 책임을 사실상 최 제1부상과 볼턴 전 보좌관 두 사람에게 돌린 것이다.
앞서 비건 부장관은 오전 외교부 청사에서 이도훈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과 한·미 북핵수석대표 협의를 마친 후 약식 기자회견을 가졌다. 비건 부장관은 미리 준비했던 입장문을 외워서 거의 그대로 발언했으나 최 제1부상 비난 등 일부 문장을 생략했다. 이후 비건 부장관은 약 3시간 뒤 회견 당시 누락했던 발언까지 포함한 입장문 전문을 미국대사관을 통해 한국 언론에 배포했다.
비건 부장관이 최 제1부상 비난 발언을 현장에서 읽지 않고 사후에 문서로 공개한 배경은 알려지지 않았다. 일각에서는 북한을 지나치게 자극하지 않기 위해 육성이 아닌 서면 방식을 택한 것 아니냐는 추측이 나왔다. 비건 부장관이 기억에 의존해 입장문을 발표하다가 실수로 누락했을 가능성도 없지 않다. 비건 부장관은 “대화는 행동으로 이어질 수 있지만 대화 없이 행동이 있을 수 없다”는 문장 역시 현장에서 발언하지 않았다.
최 제1부상은 지난 4일 담화에서 “조(북)·미 대화를 저들의 정치적 위기를 다뤄나가기 위한 도구로밖에 여기지 않는 미국과는 마주앉을 필요가 없다”고 말한 바 있다. 비건 부장관은 기자회견에서 최 제1부상의 발언에 대해 “우리는 북한에 만나자고 요청한 적이 없다”고 반박했다. 비건 부장관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내 카운터파트로서 잘 준비돼 있고 충분한 권한을 갖춘 사람을 지명한다면 우리는 언제든 대화에 응할 준비가 돼 있다”고도 말했다. 이 발언 역시 최 제1부상에 대한 불만을 우회적으로 표출한 것으로 해석된다.
한편 김정은 위원장은 할아버지 김일성 주석의 26주기를 맞아 금수산태양궁전을 참배했다. 조선중앙통신은 “김정은 동지께서 민족 최대의 추모의 날에 즈음해 금수산태양궁전을 찾았다”고 전했다. 김 위원장이 금수산태양궁전을 참배한 것은 지난 2월 이후 처음이다. 정확한 참배 날짜·시간은 공개되지 않았지만 북한 보도 관례를 고려하면 7일 밤 또는 8일 자정에 참배했을 가능성이 높다. 김 위원장은 별다른 대미 메시지는 내놓지 않았다.
조성은 손재호 기자 jse13080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