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국대 글로컬캠퍼스의 한 사업단에서 계약직 교수로 근무하는 30대 김상수(가명)씨는 지난 5월 자신의 귀를 의심해야 했다. 자신의 부인이자 함께 재임용을 위해 노력해온 이성실(가명)씨가 재임용에 탈락했다는 소식을 전한 사업단 총괄 A교수로부터 엉뚱한 말을 들었기 때문이다. A교수는 김씨에게 “아침에 (이씨와 함께) 출근한다고 하던데 ‘동거를 한다’는 등 구설수에 오르고 싶느냐?”라고 물었다고 한다.
김씨는 8일 “재임용 결과에 이의를 제기했는데 사업단 측은 더 어이없는 얘기를 꺼냈다”고 했다. 사업단 소속 B교수도 이씨에게 점심식사를 남편과 하지 말고 다른 교수들과 돌아가면서 하고, 남편과 함께 출근하지도 말라는 취지로 말했다. 부부 사이인 이들 계약직 교원에게 갑질을 가한 정황이 여럿 포착돼 논란이 일고 있지만 학교 측이 개최한 심의위원회에선 ‘직장 내 괴롭힘으로 볼 수 없다’는 통보만 내려진 상태다.
A교수의 인권침해성 발언은 이 뿐만이 아니었다. 그는 지난 5월 난임을 겪는 김씨 부부에게 “재임용이 된다 하더라도 아이가 생기면 거의 누워있어야 한다”며 “여자는 출산이 전부이고, 여자는 직장보다 100% 출산이 중요하다”고 말했다고 한다. 또 “남자는 사랑의 온도가 짧다”는 취지의 발언도 했다고 김씨는 주장했다.
이씨는 무조건적인 복종도 요구받았다고 한다. A교수는 이씨에게 “재임용을 위해서라면 부서장에게 ‘엎드려 간, 쓸개 내주고 다 하겠습니다’라고 말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태클 걸 거면 나가라. 남편과 동거하는 게 다른 직원들이 볼 때 얼마나 쪽팔리냐”며 면박을 줬다고 한다.
이들 부부는 지난 5월 교내 갑질피해 신고 지원센터에 사건을 접수했다. 하지만 돌아온 건 업무 배제였다. 이씨는 지난 4월 부서 내 사업단 위원으로 편성됐지만 신고 후인 5월 27일 갑자기 명단에서 제외됐다.
김씨는 학교의 재임용 평가 과정에서도 문제점이 있다고 주장한다. 사업단의 ‘3차 연도 실적보고서’ 작성에 집필위원으로 참여해 전체 보고서의 20%를 담당한 이씨는 누락됐는데, 보고서 작성에 참여하지도 않았던 교원은 재임용됐다는 것이다. 건국대는 이 보고서로 외부 기관으로부터 50억원을 지원받았다.
이들 부부는 우여곡절 끝에 결국 지난달 29일 재임용됐다. 하지만 벌써부터 내년 재임용에 대한 불안감을 느끼고 있다. 김씨는 “최근 난임수술을 위해 휴가를 요청했는데 업무공백을 이유로 휴가가 불허됐다”며 “내년이 더 걱정”이라고 했다.
학교 심사위원회는 직장 내 괴롭힘을 인정하지 않았다. 학교 관계자는 “(사건 정황에 대해서) 해당 교수들도 인정하긴 했지만 상담 과정에 있었던 일이고, 녹취록만 있지 녹취파일은 제출되지 않았다”며 “공정하지 않은 결과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 사건을 잘 아는 한 노무사는 “녹취원본 제출이 중요한 게 아니다. 사생활 간섭과 부당한 업무지시만으로도 직장 내 괴롭힘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최지웅 기자 woo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