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보육교사 살인사건의 피의자로 재판에 넘겨진 택시기사 A씨(51)에 대해 2심 재판부도 무죄를 선고했다.
광주고법 제주제1형사부(부장판사 왕정옥)는 8일 성폭력 범죄의 처벌 및 피해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강간 등 살인)로 기소된 A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택시기사였던 A씨는 2009년 2월 1일 새벽 제주시 용담동에서 탑승한 피해자 B씨(27)를 성폭행하려다 실패하자 목 졸라 살해하고 제주시 애월읍 고내봉 인근 배수로에 사체를 유기한 혐의로 기소됐다.
당시 경찰은 B씨가 택시를 타 이동한 것으로 보고 도내 택시기사 5000여명의 운행기록과 CCTV 영상을 분석해 A씨를 유력 용의자로 지목했다.
A씨의 이동 경로가 피해자의 이동 경로와 유사했기 때문이다. A씨에 대한 긴장정점검사(POT)와 뇌파 검사에서는 A씨를 범인으로 추정해 볼 유의미한 결과가 나오기도 했다. 택시기사 A씨와 피해자 B씨가 입고 있던 옷에서 상대방 옷의 섬유 흔적이 발견된 점도 A씨의 혐의 입증에 힘을 보태는 듯 했다.
하지만 부검의가 “피해자 B씨의 사망 시간이 시체 발견 시점(2월 8일)과 인접하다”는 결과를 내놓으면서 A씨는 용의선상에서 멀어졌다. 경찰이 CCTV영상 분석 등을 통해 확보한 증거 상당 수가 실종 당일 피해자 사망에 초점 맞춰진 것들이기 때문이다. 경찰은 수사를 종결했다.
사건이 재조명된 건 그로부터 7년 뒤다. 2015년 살인죄의 공소시효가 폐지되면서 이듬해 제주 경찰이 재수사에 착수했다.
먼저 사망시점 재확인에 나섰다. 경찰은 돼지 사체를 통해 배수로 안의 지형적 특성과 시신의 착의 상태가 시체 부패 및 직장 온도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 지 확인했다.
그 결과 사후 7일째 되는 날 사체의 직장 체온이 대기 온도보다 높아진 점을 발견했다. 이를 통해 피해자의 사망 시점이 실종 당일일 가능성이 높다는 결론을 도출했다. 앞서 사체 부검의는 시신의 부패 정도가 적고 직장체온이 대기온도보다 높다는 점을 들어 피해자 사망 시점을 사체가 발견된 2월 8일에서 하루 이내라는 결론을 제시했었다.
다시 말해 2009년 피해자 사망 당시 2월의 낮은 기온과 당시 피해자가 입고 있던 옷과 움푹 파인 배수로의 형태가 냉장 효과와 보온효과를 모두 발생시켜 사후 7일 후에도 직장체온이 대기온도보다 높게 나타날 수 있음을 확인한 것이다.
특히 전문가들은 유기된 시신에 묻어있던 흙이 사고 발생 이틀 후인 2월 3일에 내린 비 때문에 묻은 점을 들어 B씨의 사망 시점을 실종 당일인 1일이나 다음날인 2일로 최종 판단했다.
경찰은 새로 밝혀진 사망 시점을 토대로 당초 유력한 용의자였던 A씨에 대한 체포영장과 압수수색 영장을 법원으로부터 발부받는 등 본격 수사에 나섰다.
그러나 재수사 후 1심 판단은 무죄였다.
증거로 제출된 미세섬유는 대량으로 생산·사용되는 것이기 때문에 피해자에게 발견된 섬유가 A씨가 입었던 옷이라고 단정 지을 수 없고, CCTV 영상 속에 찍힌 차량을 A씨의 택시라고 확신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특히 검찰 측이 제출한 미세 섬유 증거 건에 대해 “압수수색 영장없이 위법하게 수집된 증거는 증거능력이 없다”고 밝혔다.
2심 재판부도 1심 판단을 대부분 그대로 유지했다.
광주고법 제주제1형사부는 8일 1심 무죄 판결에 대한 검찰의 항소를 기각하면서 “살인죄 입증은 엄격한 증거에 의해 이뤄져야 한다. 검사가 제출한 증거만으로는 합리적인 의심을 배제할 정도로 입증됐다고 볼 수 없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앞서 검찰은 1심과 2심 모두 무기징역을 구형했다.
이처럼 법원이 경찰과 검찰이 유일한 용의자로 주목해 수집한 증거를 입증 자료로 인정하지 않으면서 이번 제주 보육교사 살인 사건은 영구 미제로 남을 가능성이 커졌다.
재판이 끝난 직후 피고인 A씨는 “지난 10년 재판부와 언론 모두 저에게 족쇄였고 생활을 할 수 없을 정도로 힘들었다”며 “판결이 확정되면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진행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제주=문정임 기자 moon1125@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