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중분석]재단법인화 뭐길래… 부천필, 고소 사태 이어 지휘자 병가

입력 2020-07-08 06:00 수정 2020-07-08 06:00
부천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무대 위 장면. 부천시립예술단 제공

국내 대표적인 오케스트라 가운데 하나인 부천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부천필)가 ‘재단법인화’ 문제로 깊은 내홍에 휩싸였다. 부천필과 부천시립합창단으로 구성된 부천시립예술단의 운영 주체가 부천시에서 재단법인으로 바뀔 가능성이 대두되면서 새롭게 생겨난 오케스트라 노조와 부천시의 갈등이 불붙은 것이다. 노조가 최근 부천시장과 오케스트라 지휘자를 부당노동행위 혐의로 고소한 데 이어 지휘자가 두 달간 병가에 들어가는 등 사태는 악화 일로를 걷고 있다.

내홍은 2022년 준공 예정인 부천문화예술회관(예술회관)을 둘러싸고 불거졌다. 부천시청 민원실 앞 부지에 들어서는 예술회관은 부천시가 추진하는 1458석의 콘서트홀과 300석의 소극장 등을 갖춘 클래식 특화 복합공연장이다. 파이프오르간까지 갖추는 등 규모와 시설 면에서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이나 롯데콘서트홀 등 전국적인 공연장에 견줄만한 수준이어서 시립예술단과 시너지를 낼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됐다.

갈등은 예술회관 운영에 관한 연구용역 과정에서 부천시 직영·부천문화재단 위탁 운영과 함께 재단법인 설립에 관한 이야기가 한 방편으로 거론되면서 점화됐다. 노조는 본래 시립합창단에만 있었으나, 지난 2월 11일 단원 88명 중 83명이 가입한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예술단지회가 부천필에 새로 생겨났다. 지난 1일에는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문화예술협의회가 성명을 내고 “재단법인 소속이 되면 예술단이 상업성에 치중하게 돼 공공성이 훼손되고 단원 처우도 저하된다”며 재단법인화 계획을 강도 높게 비판했다.

부천시와의 이 같은 대립은 예술단지회와 오케스트라 지휘자 A씨의 갈등이 더해지면서 더 불이 붙었다. 전국공공운수사회서비스노동조합과 경기문화예술지부, 예술단지회는 지난주 장덕천 부천시장과 A씨를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 조정법 위반 혐의로 고용노동부 부천고용노동지청에 고소했다.

본보가 입수한 고소장에 따르면 노조 측은 “A씨는 카카오톡 메시지와 전화통화, 페이스북 등을 통해 노조 설치 및 (재단법인화 등을 반대하는) 활동을 비난하고 적대적 인식을 드러냈다”며 “그간 실시하지 않았던 실기 평정 예고 등 인사상 불이익을 위협하는 발언을 서슴지 않았다”고 적었다. 예술단지회 관계자는 7일 국민일보와 통화에서 “법인화 사안은 지휘자가 개입할 부분이 아니다. A씨는 재단법인화 반대 활동을 하는 노조 간부에게 ‘암적인 존재’ 등의 발언을 했다”며 “지난 2일 연습 때는 지휘자석 앞에 설치된 투명 가림막 4개를 단원들 앞에서 객석 쪽으로 던져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기도 했다”고 주장했다.

지휘자 A씨는 “2015년부터 예술회관 설계와 자문 단계를 지켜보면서 부천시의 노력을 봤고 콘서트홀이 가진 의미에 대해서도 공감했다”며 “‘시스템을 개선하기 위해 재단 법인화가 나쁘지 않을 수 있다’는 비전을 단원들과 공유하자는 차원에서 얘기한 것이었고, 지금까지 노조와 호흡을 맞추려 노력해왔는데 일련의 일들이 강제적 행위로 받아들여진 것에 대해서 유감”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지휘자로서 감정적으로 대응한 것에 대해서는 사과를 전했다”고 덧붙였다. 추가 취재 결과 A씨는 7일부터 심리적인 이유 등으로 두달 간 병가에 들어가는 것으로 확인됐다.

부천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무대 위 장면. 부천시립예술단 제공

현재 연구용역 결과는 7월 말~8월 초쯤 나올 것으로 전망된다. 부천시는 미정인 사안에 노조의 반응이 과도하다는 입장이다. 문화예술과 관계자는 “연구용역이 진행 중이고 설사 재단설립을 하고자 해도 경기도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며 “아직 아무것도 결정되지 않은 상황”이라고 강조했다. 반면 공공운수노조 경기지역본부 관계자는 “예술회관은 문화재단을 통해 운영하면 되기에 별도 법인화는 필요가 없다”면서 “시 직영 운영 등 다른 선택지가 있는데도 얘기가 나오니 법인화 수순을 밟고 있는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오케스트라를 포함한 국공립 예술단의 재단법인화 문제는 사안이 제기될 때마다 뜨거운 논쟁거리였다. 그동안 국내 도·시립 오케스트라를 비롯해 국공립 예술단체에 대해 세금으로 운영되지만 방만한 조직운영으로 공연 횟수나 완성도 등 공공성과 예술성 면에서 부족하다는 비판이 적지 않았다. 그래서 재단법인화를 반대하는 노조에 대해 공무원에 준하는 안정적 지위를 포기하기 싫어서라는 지적까지 나온다.

이와 관련 공연계 안팎에서는 예산 등 운영에서 자체적 책임을 지는 재단법인화가 예술단 발전의 마중물이 될 수 있다고 보는 시각도 적지 않다. 실제로 공연행정 전문가들은 조직 예술적 기량 향상 등을 포함해 재단법인화의 장점도 상당하다고 평가한다.

국립극장장을 지냈던 안호상 홍익대학원 원장은 “재단법인화가 되면 마케팅·공연기획·행정 등을 장기적 관점에서 조직을 전문화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다”며 “2005년 재단법인으로 새로 출범해 단원평가제 등을 도입한 서울시향을 비롯해 국립극단, 국립발레단, 국립오페라단 등 법인화 이전보다 높은 예술적 위상을 갖추게 된 많은 단체가 이를 증명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2009년 재단법인화 이후 성공적으로 안착했다는 평가를 받는 경기필하모닉 관계자도 “단원들과 운영진의 판단이 다를 수 있겠지만 법인화 이후 공연 기획과 집행의 자율성이 높아진 것은 확실하다”며 “시민 수요에 맞춰 예술의 질적 수준도 올라갔다고 판단하고 있다”고 말했다.

부천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무대 위 장면. 부천시립예술단 제공

반면 예술의 공공적 측면을 이유로 들어 반대하는 노조의 목소리도 강하다. 노조 측은 시민들의 문화생활을 위해 공공 예산을 받아 운영되는 예술단은 대부분 자체적 수익창출이 힘든 구조여서 재단 법인화는 필연적으로 단원들의 고용 불안, 근로조건 저하나 공공성 훼손으로 이어진다고 강조한다.

공공운수노조 경기지역본부 측은 “시립예술단은 4~5년 뒤 단원들의 임금을 120억원으로 추산하고 있고, 금액을 보전하기 위해서는 1400여석 규모의 콘서트홀에서 월 20회 이상 만석으로 공연을 올려야 한다는 계산이 나온다”며 “이는 오히려 오케스트라가 제대로 된 연습이 불가능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다만 다른 공공 예술단체 사례를 들어 근로조건 저하와 공공성 훼손이라는 예술단의 주장에 대해 반박하는 목소리도 있다. 안호상 원장도 “그동안 국내 공연계에서 재단법인화 된 사례들을 보면 예술적 성과를 도출해 재단법인 이전보다 공적 예산 지원이 늘어난 경우가 많다”며 “재단법인화를 하되 급여인상 등에 대해 논의를 하는 것이 대안적 방향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강경루 기자 ro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