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 최숙현 사건으로 드러난 체육계 민낯…‘근본적’ 개혁 절실

입력 2020-07-07 16:29 수정 2020-07-20 23:51
박양우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6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대회에서 볼 가해자들의 보복이 두려워 고소를 못했습니다.”

6일 국회 소통관에서 추가 피해를 증언한 고(故) 최숙현(23)씨의 경주시청 트라이애슬론 팀 동료 들은 폭행·폭언을 쉬쉬하는 체육계 폐쇄성 탓에 문제제기를 할 수 없었다고 했다. 하지만 공식적 경로로 수차례 도움을 요청했던 최씨의 경우에도 신속한 답변을 듣지 못했던 건 마찬가지였다. 체육계의 폐쇄성을 개혁하기 위해선 관계 기관들의 근본적 개혁이 필요하단 분석이 나온다.

이날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상임위원회의 질의에선 정부 기관들의 ‘무책임함’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의원들은 4월 8일 최씨의 클린스포츠센터 신고 뒤에도 신속한 조사가 이뤄지지 않은 점을 추궁했다. 지난 2일 문화체육관광부가 국회에 보낸 보고서엔 지난달 25일 피해자가 국가인권위원회에 사건을 진정했단 기본적인 사실도 누락됐던 것으로 밝혀졌다. 최씨의 자살을 개인 문제로 돌리는 듯한 문구들이 포함돼있기도 했다. 윤상현 무소속 의원은 “문체부와 대한체육회는 전혀 잘못이 없다는 사전 결론을 갖고 만든 보고서”라고 지적했다. 심지어 관계기관들은 주요 폭행 가해자로 지목된 팀닥터 안모씨의 정보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박양우 문체부 장관은 재발 방지를 약속했지만 피해자가 나온 뒤에야 개선책을 모색하는 ‘사후약방문’식 대처가 고질적인 문제를 시정할 수 있을지에 대해선 의문이 제기된다. 박 장관은 이날 다음달 출범하는 스포츠윤리센터의 재정비 계획을 밝혔다. 윤리센터에 특별사법경찰제도를 도입하고 25명인 인력을 더 보강하며 비상근으로 규정돼있는 센터장을 상근으로 바꾸겠다는 게 골자다.

하지만 이는 스포츠혁신위원회가 지난해 5월 7일 발표한 1차 권고안에 애초 담겨있던 내용이다. 입법 과정에서 부처의 입김이 작용하고 정당 간 합의가 늦어지면서 원래 의도가 퇴색된 것. 혁신위에 참여했던 정용철 서강대 교육대학원 교수는 “권고안에 있던 내용이 입법 과정에서 변질됐다”며 “상근 센터장이 비상근으로 바뀌고 사무국장·팀장엔 문체부 공무원이 임명되도록 했는데 입맛대로 센터를 좌우할 수 있도록 한 것”이라 지적했다.

체육계 내부 절차가 작동하지 않은 만큼 사무국장·팀장 등 주요 보직에 외부 인권 전문가를 공개 모집해야한다는 의견이 많다. 최동호 스포츠문화연구소장은 “스포츠공정위원회에서 일할 때 징계 당사자들이 지인들을 동원해 청탁하는 모습을 많이 봤다”며 “인권 업무를 하는 조직인 만큼 외압에 굴하지 않을 외부 인력이 필요하다. 사건 성격이 폭행 횡령 등이기에 스포츠 전문성이 꼭 필요한 것도 아니다”고 조언했다.

이기흥 대한체육회장이 6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잠시 생각에 잠겨있다. 연합뉴스

이기흥 대한체육회장의 말 뿐인 ‘사죄’도 지난해 빙상계 성폭행 사건 때와 다를 바가 없었다. 이 회장은 당시 사퇴 요구에도 자리를 유지한 채 ‘안타깝다’는 제3자 화법을 썼다. 1년도 안 돼 같은 문제가 반복됐지만, 이날도 이 회장은 “참담한 심정으로 철저히 조사하겠다”고만 했다.

이에 체육회 구조개혁과 인적쇄신 요구가 거세다. 정 교수는 “체육회가 국가올림픽위원회(NOC)와 통합돼있기에 때려서라도 메달 따면 다 용서되는 문화가 생겼다”며 “NOC를 떼어내 체육회는 ‘모두를 위한 스포츠’를 확립하는 데에만 집중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허정훈 중앙대 스포츠과학학부 교수도 “체육회가 매번 사과하고 근본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하는 게 양치기 소년같다”며 “잠잠해지면 다시 메달과 성적에만 몰두할 것이기에 NOC는 분리가 필요하다”고 했다.

이동환 기자 hua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