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경찰,영장없이 수색 ‘무소불위’…캐리람 “보안법은 관대한 법”

입력 2020-07-07 16:15
지난 1일 시위대를 체포하는 홍콩 경찰.EPA연합뉴스

지난 1일부터 본격 시행된 ‘홍콩 국가보안법’(홍콩보안법)에 따라 경찰이 법 집행과 관련해 ‘무소불위’의 권한을 쥐게 된 것으로 드러났다.

법원의 영장 없이도 압수수색이 가능하고, 행정장관의 승인만으로 보안법 피의자에 대해 도청·미행을 할 수 있다. 포털이나 소셜미디어 등이 경찰의 콘텐트 삭제 명령을 거부하면 최고 2년 징역이나 1500만원 벌금형에 처해질 수 있다.

7일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 등에 따르면 홍콩보안법에 따라 설치된 국가안보위원회는 전날 캐리 람 홍콩 행정장관, 율정사장(법무국장), 보안국장, 경무처장 등이 참석한 가운데 회의를 열어 홍콩보안법 집행과 관련한 7개 시행규칙을 제정했다. 회의에는 뤄후이닝 홍콩 주재 중앙정부 연락판공실 주임이 고문 자격으로 참석했다.

이 규칙에 따르면 홍콩 경찰은 ‘특수한 상황’에서 법원의 수색영장 없이도 내부 승인을 받아 홍콩보안법 사건과 관련된 장소에 들어가 압수수색을 할 수 있다. ‘특수한 상황’이 뭔지는 구체적으로 명시하지 않았다.

경찰은 행정장관의 승인을 받으면 법원의 영장 없이도 보안법 피의자에 대해 도청, 감시, 미행 등을 할 수 있다. 법원 영장을 받아 피의자의 여권을 압류하거나, 피의자의 재산을 동결·몰수도 할 수 있다.

홍콩 보안법 사건 관련 재산을 알게 되면 즉시 경찰에 신고해야 하며, 수사에 영향을 끼칠 정보를 다른 사람에게 누설해서는 안 된다.

인터넷 기업이나 개인은 국가안보에 위협으로 여겨지는 메시지나 정보를 삭제하고, 다른 사람의 접근을 차단해야 한다. 이를 따르지 않으면 전자장비를 압수당할 수도 있고, 벌금 10만 홍콩달러(약 1500만원)의 벌금이나 1년 이하의 징역에 할 수 있다.

대만이나 해외에 있는 정치단체는 홍콩 내 조직의 활동, 구성원, 자산, 수입원, 지출 등 관련 정보를 제출하라는 명령에 따르지 않으면 벌금 10만 홍콩달러와 6개월~2년의 징역형에 처해질 수 있다.

이에 대해 변호사 앤슨 웡은 “홍콩보안법 시행 규칙은 보안법 본문보다 훨씬 경악스러운 수준으로 사법부의 권한을 경찰에 부여해 인권과 표현의 자유를 심각하게 침해한다”며 “홍콩보안법 위반으로 ‘여겨진다’는 이유만으로 인터넷 정보를 삭제하라는 것도 말이 안 된다”고 비판했다.

프란시스 퐁 홍콩 정보기술협회 명예회장은 “이제 홍콩 경찰은 홍콩 내의 모든 기업에서 정보와 데이터를 얻을 수 있게 됐다”며 “일부 기업들은 고객 보호를 위해 저장된 정보를 폐기할 것”이라고 말했다.
캐리 람 홍콩 행정장관.AP연합뉴스

캐리람 홍콩 행정장관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홍콩보안법은 다른 나라의 국가보안법보다 온건하고, 적용 범위가 다른 나라 심지어 중국 본토보다 넓지 않다”며 “홍콩보안법은 관대한 법”이라고 주장했다.

람 장관은 “(홍콩에 설립되는) 중국 본토 기관이 관여할 사건은 드물 것”이라며 “홍콩보안법은 홍콩에 긍정적인 역할을 해 홍콩을 다시 세계에서 가장 안전한 도시로 만들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언론도 홍콩보안법을 위반하지 않는 한 자유롭게 취재 활동을 할 수 있을 것”이라며 “다만 홍콩보안법은 넘지 말아야 할 ‘드라인’으로, 홍콩 정부는 법 위반자에게 엄중한 책임을 물을 것”이라고 말했다.

람 장관은 홍콩보안법 43조의 세부 시행규칙에 대해 “43조의 내용은 홍콩 정부가 인권을 존중한다는 것을 보여준다”며 “사람들이 홍콩보안법을 위반할 일은 없을 것이고, 이 법이 매우 엄격하게 집행되기 때문에 사람들은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그는 또 “해외 매체가 ‘홍콩의 종말’ 운운하는 것은 말이 안 되며, 홍콩보안법 시행으로 일국양제(한 국가 두 체제)에 대한 믿음은 더욱 커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영국 보수당 중진 의원들은 6일(현지시간) 도미닉 라브 외무장관에게 인권탄압과 관련된 홍콩과 중국 관리들을 제재하고, 캐리 람 장관도 규제 대상에 올릴 것을 촉구했다고 SCMP는 전했다.

이에인 던컨 스미스 전 보수당 대표는 “영국 여권의 특권을 갖고 있는 캐리 람 장관 가족부터 시작하더라도 그들이 누구든, 아무리 높은 자리에 있든” 홍콩 정치권 고위 인사들에 제재를 가해야 한다고 요청했다. 캐리 람 장관의 남편과 두 아들은 영국 시민권을 갖고 있지만, 람 장관 자신은 그렇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베이징=노석철 특파원 schro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