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일부터 본격 시행된 ‘홍콩 국가보안법’(홍콩보안법)에 따라 경찰이 법 집행과 관련해 ‘무소불위’의 권한을 쥐게 된 것으로 드러났다.
법원의 영장 없이도 압수수색이 가능하고, 행정장관의 승인만으로 보안법 피의자에 대해 도청·미행을 할 수 있다. 포털이나 소셜미디어 등이 경찰의 콘텐트 삭제 명령을 거부하면 최고 2년 징역이나 1500만원 벌금형에 처해질 수 있다.
7일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 등에 따르면 홍콩보안법에 따라 설치된 국가안보위원회는 전날 캐리 람 홍콩 행정장관, 율정사장(법무국장), 보안국장, 경무처장 등이 참석한 가운데 회의를 열어 홍콩보안법 집행과 관련한 7개 시행규칙을 제정했다. 회의에는 뤄후이닝 홍콩 주재 중앙정부 연락판공실 주임이 고문 자격으로 참석했다.
이 규칙에 따르면 홍콩 경찰은 ‘특수한 상황’에서 법원의 수색영장 없이도 내부 승인을 받아 홍콩보안법 사건과 관련된 장소에 들어가 압수수색을 할 수 있다. ‘특수한 상황’이 뭔지는 구체적으로 명시하지 않았다.
경찰은 행정장관의 승인을 받으면 법원의 영장 없이도 보안법 피의자에 대해 도청, 감시, 미행 등을 할 수 있다. 법원 영장을 받아 피의자의 여권을 압류하거나, 피의자의 재산을 동결·몰수도 할 수 있다.
홍콩 보안법 사건 관련 재산을 알게 되면 즉시 경찰에 신고해야 하며, 수사에 영향을 끼칠 정보를 다른 사람에게 누설해서는 안 된다.
인터넷 기업이나 개인은 국가안보에 위협으로 여겨지는 메시지나 정보를 삭제하고, 다른 사람의 접근을 차단해야 한다. 이를 따르지 않으면 전자장비를 압수당할 수도 있고, 벌금 10만 홍콩달러(약 1500만원)의 벌금이나 1년 이하의 징역에 할 수 있다.
대만이나 해외에 있는 정치단체는 홍콩 내 조직의 활동, 구성원, 자산, 수입원, 지출 등 관련 정보를 제출하라는 명령에 따르지 않으면 벌금 10만 홍콩달러와 6개월~2년의 징역형에 처해질 수 있다.
이에 대해 변호사 앤슨 웡은 “홍콩보안법 시행 규칙은 보안법 본문보다 훨씬 경악스러운 수준으로 사법부의 권한을 경찰에 부여해 인권과 표현의 자유를 심각하게 침해한다”며 “홍콩보안법 위반으로 ‘여겨진다’는 이유만으로 인터넷 정보를 삭제하라는 것도 말이 안 된다”고 비판했다.
프란시스 퐁 홍콩 정보기술협회 명예회장은 “이제 홍콩 경찰은 홍콩 내의 모든 기업에서 정보와 데이터를 얻을 수 있게 됐다”며 “일부 기업들은 고객 보호를 위해 저장된 정보를 폐기할 것”이라고 말했다.
캐리람 홍콩 행정장관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홍콩보안법은 다른 나라의 국가보안법보다 온건하고, 적용 범위가 다른 나라 심지어 중국 본토보다 넓지 않다”며 “홍콩보안법은 관대한 법”이라고 주장했다.
람 장관은 “(홍콩에 설립되는) 중국 본토 기관이 관여할 사건은 드물 것”이라며 “홍콩보안법은 홍콩에 긍정적인 역할을 해 홍콩을 다시 세계에서 가장 안전한 도시로 만들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언론도 홍콩보안법을 위반하지 않는 한 자유롭게 취재 활동을 할 수 있을 것”이라며 “다만 홍콩보안법은 넘지 말아야 할 ‘드라인’으로, 홍콩 정부는 법 위반자에게 엄중한 책임을 물을 것”이라고 말했다.
람 장관은 홍콩보안법 43조의 세부 시행규칙에 대해 “43조의 내용은 홍콩 정부가 인권을 존중한다는 것을 보여준다”며 “사람들이 홍콩보안법을 위반할 일은 없을 것이고, 이 법이 매우 엄격하게 집행되기 때문에 사람들은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그는 또 “해외 매체가 ‘홍콩의 종말’ 운운하는 것은 말이 안 되며, 홍콩보안법 시행으로 일국양제(한 국가 두 체제)에 대한 믿음은 더욱 커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영국 보수당 중진 의원들은 6일(현지시간) 도미닉 라브 외무장관에게 인권탄압과 관련된 홍콩과 중국 관리들을 제재하고, 캐리 람 장관도 규제 대상에 올릴 것을 촉구했다고 SCMP는 전했다.
이에인 던컨 스미스 전 보수당 대표는 “영국 여권의 특권을 갖고 있는 캐리 람 장관 가족부터 시작하더라도 그들이 누구든, 아무리 높은 자리에 있든” 홍콩 정치권 고위 인사들에 제재를 가해야 한다고 요청했다. 캐리 람 장관의 남편과 두 아들은 영국 시민권을 갖고 있지만, 람 장관 자신은 그렇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베이징=노석철 특파원 schro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