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체위서 드러난 문체부·체육회 ‘무책임’…“본질적 개혁 없인 희망 없어”

입력 2020-07-06 18:55 수정 2020-07-20 23:50
6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전체회의가 정회되자, 경주시청 트라이애슬론(철인3종경기)팀 감독과 선수들이 밖으로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

“운동을 그만두지 않는 이상 대회에서 볼 가해자들에 보복당할 것이 두려워 고소를 하지 못했고, 경찰 조사 이후엔 훈련을 못할 정도로 불안감을 느꼈습니다.”

6일 국회 소통관에서 추가 피해를 증언한 고(故) 최숙현(23)씨의 경주시청 트라이애슬론 팀 동료 선수들은 감독·선수들의 폭행·폭언을 쉬쉬하는 체육계 내외부의 폐쇄성 탓에 제대로 된 문제제기를 할 수 없었다고 했다. 하지만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까지 수차례 공식적인 경로를 통해 도움을 요청했던 최씨의 경우에도 주무부서인 문화체육관광부와 상급 단체인 대한체육회의 신속한 답변을 듣지 못했던 건 마찬가지였다. 이날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상임위원회의 긴급 현안 질의에선 이런 정부 기관들의 ‘무책임함’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약 3시간50분간 진행된 질의에 참석한 의원들은 체육회 클린스포츠센터에 4월 8일 최씨가 관련 내용을 신고한 뒤 신속하고 정확한 조사가 이뤄지지 않은 점을 추궁했다. 윤상현 무소속 의원은 지난 2일 문체부가 의원실로 보낸 경과 보고서를 예로 들며 “지난달 25일 피해자가 국가인권위원회에 사건을 진정했단 기본적 사실도 누락했다”고 지적했다. 유정주 더불어민주당 의원도 “클린스포츠센터 등 모든 도움 요청 가능한 곳엔 다 SOS 요청을 했는데 최선의 조치를 하지 않은 결과가 이렇게 나왔다”고 말했다.

최씨 등 선수들에 대한 폭행의 주요 가해자로 지목된 팀닥터 안주현씨의 정보를 문체부와 체육회가 전혀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점에 대해서도 의원들의 강한 질책이 이어졌다. 박양우 문체부 장관은 안씨에 대해 묻는 의원들의 질문에 “개인적인 신상에 대해서는 잘 파악을 (못했다)”거나 “저희는 이 부분에 대해서 정보가 전혀 없다”고 답했다. 이날 추가 피해 선수들이 제기한 안씨의 성추행 의혹에 대한 도종환 문체위원장의 질문에 대해 최윤희 문체부 2차관도 “팀닥터에 대한 정보는 저도 없습니다”고만 했다.

심지어 문체부는 사안이 불거진 이후인 지난 2일 국회로 보낸 경과 보고서에서 최씨의 자살을 개인 문제로 돌리는 듯한 문구들을 포함시키기도 했다. 윤 의원은 “이 보고서는 피해자의 자살이 개인적인 문제고 문체부와 대한체육회는 전혀 잘못이 없다는 사전 결론을 갖고 만든 보고서”라고 지적했다. 실제 보고서엔 ‘피해자는 고등학교 시절부터 공황장애 및 우울증 증세가 있었고 16년부터 정신과 치료 시작’ ‘피해자 측 연락 두절, 비협조’ 등 면피성 문구가 다수 포함돼 있다.

이기흥 대한체육회장(왼쪽)이 6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전체회의에 참석해 앉아있다. 연합뉴스

박 장관은 사죄하며 재발 방지를 약속했지만 피해자가 나온 뒤에야 개선책을 모색하는 이들의 ‘사후약방문’식 대처가 체육계의 고질적인 폭력문제를 시정할 수 있을지에 대해선 의문이 제기된다. 박 장관은 이날 다음달 출범하는 스포츠윤리센터의 재정비 계획을 밝혔다. 윤리센터에 특별사법경찰제도를 도입해 강제력 있는 조사를 할 수 있게 하고 현재 25명인 인력을 더 보강하며 현재 비상근으로 규정돼있는 센터장을 상근으로 바꾸겠다는 게 골자다.

하지만 이는 지난해 빙상계 성폭력 사건을 계기로 출범한 스포츠 혁신위원회가 마련한 권고안에 애초 담겨있던 내용이다. 혁신위에 참여했던 정용철 서강대 교육대학원 스포츠심리학 교수는 “원래 권고안에 있던 스포츠인권센터가 입법 과정에서 윤리센터로 바뀌며 변질됐다”며 “상근 센터장이 비상근으로 바뀌고 사무국장·팀장엔 문체부 공무원이 임명되도록 했는데 공무원들이 자신들의 입맛대로 센터를 좌우할 수 있도록 만든 것”이라 지적했다.

이기흥 대한체육회장의 말 뿐인 ‘사죄’도 지난해 빙상계 성폭행 문제가 터졌을 때와 다를 바가 없었다. 이 회장은 당시 사퇴 요구에도 자리를 유지한 채 ‘안타깝다’는 제3자 화법을 썼다. 이날도 이 회장은 “참담한 심정으로 철저히 조사하고 지도자들을 교육하겠다”고 말하면서도 체육회에서 올림픽 기능을 분리하는 개혁에 대해선 “단순하게 판단할 수 없다”고 했다.

정 교수는 “구조적인 엘리트 스포츠의 본질적 문제를 건드리지 않으면 한 두 달 시끄럽다가 엎어진다”며 “이번엔 밑에서부터 갈아엎어야 희망이 있다”고 조언했다.

이동환 기자 huan@kmib.co.kr